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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일본 정토진종 개조 신란 스님의 참회와 염불

기자명 고명석

“악인이야말로 아미타불이 구제해야 할 대상이니”

타력염불 신앙 끝까지 참구해 절망 빠진 민초들에게 희망 전해
귀족과 결합한 사찰들과는 달리 ‘전수염불’로 민중의 아픔 치유 
“극한 악인이라도 지극히 부처님 부르라, 여래는 싫증냄이 없다” 

신란의 83세 때 모습을 그린 진영. 하층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신란의 초상화는 니시혼간지에 소장돼 있다.

죄악이 깊고 깊은 인간이다. 욕망이 불길처럼 맹렬히 타오르는가 하면 때로는 자신의 능력과 행위에 대해 한없이 절망하는 ‘나’다. 자력 절망이다. 과연 누가 이 어둠의 늪에서 ‘나’를 구제해 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아미타부처님이요 아미타부처님의 중생 구원에 대한 믿음이다.

이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염불을 강조한 일본의 성인이 신란(親鸞, 1173~1262) 스님이다. 신란은 일본 정토진종(淨土眞宗)의 개조이며 타력염불 신앙을 끝까지 밀고 들어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준 사람이다. 가난한 자, 힘없는 자, 감옥에 갇힌 자, 험한 직업을 가진 자들이 그를 믿고 따랐다. 그 결과 정토진종은 일본불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신란은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에 걸쳐 90년의 생애를 보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전란과 천재지변이 잦고 역병이 유행하여 도처에 죽음과 가난이 넘쳐났다. 그는 교토에서 태어나 4세 때 부친을 여의고 연이어 모친과 사별한다. 극심한 가난과 슬픔으로 그는 9세 때 외삼촌의 손에 이끌려 히에이산(比叡山) 연력사(延暦寺, 엔라쿠지)로 출가한다.

그러나 당시의 사찰은 귀족사회와 결합되어 민중의 고통엔 눈을 감았다. 거기서 신란은 그의 고통과 아픔을 극복할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 29세 때 그는 쇼토쿠 태자의 현몽에 이끌려 스승 호넨(法然)과 만난다. 스승은 잡행(雜行)을 버리고 오직 염불만을 강조하였다. 바로 전수염불(專修念佛)이다. 호넨은 신란에게 법장보살의 본원이 있기에 선인이나 악인, 부자나 빈민, 출가자나 재가자,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그 누구라도 ‘나무아미타불’만 외우면 왕생한다고 했다. 그러나 전수염불은 당시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받고 마침내 조정의 탄압을 받게 된다. 그 결과 호넨과 그의 제자들은 사형죄나 유배를 당하게 된다. 신란의 나이 35세 때였다.

신란은 유배지에서, 그리고 간토(關東) 지방의 엄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어렵고 가난한 삶에 절망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뇌와 마주하고 그들을 향한 구제의 가르침을 베풀게 된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 절망한 사람이었다. 신란은 자신을 가리켜 ‘어리석은 까까머리’라는 뜻의 ‘우독(愚禿)’이라고 고백한다. 

“진실로 알지니, 어리석은 까까머리 신란(愚禿鸞)은 애욕의 넒은 바다에 침몰하고 명리의 태산에 미혹되어서 정취(定聚, 구원이 확정된 지위)에 들어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며 참된 깨달음에 다가가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슬픈 일이어라.”(교행신증 敎行信證)

신란은 이렇게 밖으론 지혜와 덕을 구하지 못하고 안으론 거짓과 허위를 품은 자신에, 자아에 대하여 한없이 절망한다. 그래서 자아의 재량에 남김없이 참회한다. 죄악의 핵심에 이르러 그 죄가 깨어져 자기존재가 파괴되고 방기되는 자기 부정 속에서 아미타 부처님의 중생을 향한 회향 발원에 힘입어 새롭게 사는 길을 간다.

그의 주저는 ‘교행신증’이다. 교(敎)란 ‘대무량수경’의 가르침이며 행(行)이란 염불이다. 신(信)이란 아미타불의 회향발원에 대한 신심이다. 이러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깨달음의 세계에 접어든다. 그것이 증(證)이다. 바로 절대 타력의 행위적 믿음을 통해 깨달음에 참여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교행신증’에서 ‘정신염불게(正信念佛偈)’는 신란 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다. 그 주요 내용을 보자.

“본원의 명호는 정토왕생의 정업(定業)이므로 / 지심으로 명호를 신락(信樂)해야 하네. 깨달음 이루어 대열반에 이르는 것은 / 중생 제도의 부처님 원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네. 석가여래가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 오직 아미타불 본원의 바다를 일러주기 위함이네. 오탁악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 석가여래의 진실한 말씀을 믿어야 하네.
능히 일념으로 기뻐하는 마음을 낸다면 /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어가리. 범부도 성자도 극악한 사람도 믿음의 길로 들면 /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서 한맛이 되듯 모두 구원을 받네.
아미타불 섭취광명 항상 나를 비춰 지켜주셔서 / 이미 무명의 어둠을 깨뜨렸음에도 
탐애, 분노, 증오는 구름과 안개처럼 / 늘 진실한 신심(信心)의 하늘을 덮고 있네.
햇빛이 구름과 안개에 덮여 있다 해도 / 구름과 안개 밑에는 밝고 밝아 어둠이 없듯이
신심을 얻고 부처님을 받들어 크게 기뻐한다면 / 5악취의 세계를 즉시 뛰어넘네.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 염불은 / 사견이 가득하고 교만하며 악한 중생들이 신락(信樂)하고 수지하기란 극히 어려워라 / 어렵기로 어려운 것 중에 이보다 더한 것이 없네.”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이란 법장보살의 제18원으로 모든 중생이 나의 정토에 태어나고자 염불을 하였음에도 그곳에 태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원이다. 이 본원으로 말미암아 이미 세상은, 모든 사람들의 구원은 보증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본원의 명호인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신락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구원과 깨달음이 전개된다. 오직 나의 계교나 사량을 버리게 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순수 무잡한 대자연의 법이 움직여온다. 이를 신란은 자연법이(自然法爾)라 했다. 내가 사라지고 저절로 법이 움직여 제 자리에 있게끔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청정한 마음이 회복된다. 부처님의 광명으로 청정해진 나는 이웃을 향한 감사와 보은의 행위를 하며 아미타부처님의 빛에 싸여 중생구제 활동에 나선다. 그러므로 나무아미타불하고 염불하는 그 순간 번뇌를 끊지 않더라도, 죄악이 깊더라도 열반은 이루어지고 깨달음의 빛과 자비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그 길로 접어들지 못하므로 그 길은 어렵기로 이만한 것이 없다고 한 것이다.

“극한의 악인은 오직 부처님을 부르라. / 우리 또한 아미타여래의 광명에 섭취되어 있어 / 번뇌에 눈이 가려져, 보이지 않더라도 / 여래의 대비는 싫증냄이 없이 나를 비추네.”

신란은 말한다. 

“선인(善人)도 왕생하는데, 하물며 악인(惡人)이랴.”(탄이초 歎異抄)

악인이야말로 아미타 부처님이 구제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도 했다. 믿었던 아들에게서의 의절과 배은망덕한 배신으로 극도로 비참했다. 희망은, 구원은 여래의 대비에 감싸이는 염불뿐이었다. 오직 “나무아미타불!”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37호 / 2020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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