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덕행 ④
10. 덕행 ④
  • 박희택
  • 승인 2020.05.12 09:37
  • 호수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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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론 가르침의 유사점은 사랑

불교 悲와 유교 仁, 도교의 慈
기독교 愛는 달리 표현한 사랑
이들 삼덕록서 빠지지 않는 것
勇德이라는 점도 눈 여겨 봐야

대만 국립 고궁박물관에는 장개석이 대륙을 떠나오면서 가져온 문화재가 즐비하다. 그중에서 청동솥이 많은데, 하나같이 솥발이 셋인 정(鼎)이다. 중국은 새 왕조를 개창하거나 새 천자가 즉위하면 처음으로 하는 일이 청동정(靑銅鼎)의 주조였다. 청동정은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이었다. 새로움으로 채우겠다는 의지표명의 통치행위가 청동정의 주조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정신(鼎新)은 혁신(革新)과 동의어가 된다. ‘주역’ 제49괘는 혁괘(革卦)이고, 제50괘는 정괘(鼎卦)이다. ‘주역’ 십익(十翼)의 하나인 잡괘전에 따르면 혁괘가 낡은 것을 제거하는 거고(去故)를 나타낸다면, 정괘는 새로운 것을 취하는 취신(取新)을 보여준다. 거고의 혁신과 취신의 정신이 연결되면서 상통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정괘의 외괘는 불이고, 내괘는 나무라서 상생하면서 모든 일이 순조로움을 뜻한다. 그래서 정괘의 괘사(卦辭)는 원길형(元吉亨, 크게 길하고 형통함)이다. 취신하면서 원길형으로 이끄는 주역인 삼공(三公)을 정신(鼎臣)이라 부르는 것도 정신(鼎新)과 같은 맥락이다. 삼공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주요한 한 기능이 발휘되지 못한다. 이를 솥발이 부러져 흉하게 된다(鼎折足凶)고 같은 괘 효사(爻辭)는 표현하고 있다. 삼공의 온전한 균형을 통하여 취신과 원길형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삼공의 개념적 근거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라 할 것이다. 천관(天官)이니 지관(地官)이니 하는 직위가 고대로부터 있어 왔으며, 춘하추동 사계절에 맞게 인군(人君)을 보좌하는 인신(人臣)들도 존재하였다. 천지인 삼공의 덕행은 말할 것도 없이 군자의 지인용 삼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삼공이 삼덕에 각각 배대(配對)되는 동시에 각 공이 삼덕을 구족해야 이상적이다. 한편 삼덕이 제대로 현덕(顯德)되려면 시처인(時處人) 삼원(三元)에 조화되어야 함도 자명한 사실이다.

불교의 삼덕인 지비용은 불법승 삼보(三寶)와도, 법보화 삼신(三身)과도 개념체계를 이루고 있음을 앞선 논의에서 살펴본 바 있다. 유교와 불교에 비해 도교의 자검후(慈儉後) 삼덕과 기독교의 신망애 삼덕은 근거를 개념적으로 갖고 있지 못하다. 이 점은 도교와 기독교가 초월론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겠다. 노자의 자연과 바울의 하느(나)님은 초월자로서 위상하면서 모든 것을 통섭한다. 연역의 출발점이고 귀납의 종결점이다.

그렇기에 논리적 설득을 넘어서 대뜸 우리 앞에 삼덕을 제시하는 것이다. ‘도덕경’ 제67장의 자검후와 ‘고린도전서’ 제13장의 신망애는 개념적 필연으로 제시되기보다는 자연을 본받는 대도(大道, 무위)의 삶, 하느(나)님을 따르는 성령(聖靈)의 삶으로 직관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유교와 불교, 도교와 기독교의 삼덕론이 보이는 상이점이다. 도교와 기독교의 삼덕론의 개념적 근거를 굳이 찾자면 초월론이 보이는 자연과 자신과 이웃, 신과 자신과 이웃의 삼관(三關)의 관념이라 할 수 있겠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믿음과 용기와 사랑을 말하기도 한다(16:13-14). 용기와 소망은 서로 통하는 덕행이기는 하나, 바울이 같은 ‘고린도전서’에서 신망애(信望愛)와 신용애(信勇愛)를 혼용하고 있는 것은 그의 삼덕론이 정치(精緻)한 신학으로 제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실제로 앞뒤 맥락을 보아도 논리적 정합성은 크지 않다.

이러한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높고 보편적인 가르침들이 제시하는 삼덕론의 유사점은 사랑이다. 불교의 비(悲), 유교의 인(仁), 도교의 자(慈), 기독교의 애(愛)는 표현을 달리한 사랑이다. 모든 가르침이 사랑을 공통적 덕행으로 하고 있다. 물론 불교의 자비는 자(사랑, 자애, 與樂)와 비(연민, 자비, 拔苦)의 통합개념으로 보다 갖추어진 덕행이나, 타인을 연민하고 사랑하는 개념으로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사가(四家)의 삼덕에서 용덕(勇德)도 빠지지 않는다는 점도 시선을 끈다. 불교와 유교에서는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노자는 자애의 공능으로 용기를 말하였고(도덕경67), 바울은 신망애의 연장선상에서 신용애를 언급하였다(고린도전서16:13).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37호 / 2020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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