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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 스님을 기억하십니까?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05.15 20:12
  • 수정 2020.05.18 13:40
  • 호수 1538
  • 댓글 2

10년 전 5월 소신공양
정권 향한 준엄한 질책
스님 큰뜻 잊지 말아야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 포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2010년 5월31일, 낙동강 둑에서 세납 47세의 문수 스님이 스스로를 불살랐다. 소신공양을 위한 장엄한 의식 절차도 없었고,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글을 남긴 것도 아니었다. 휘갈겨 쓴 것 같은 유서는 70여자에 불과했지만 의미는 명확했다. 부정부패의 온상이며 생명을 거스르는 4대강 사업을 당장 접으라는 준엄한 질책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한반도 대운하가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물길이라며 강력히 밀어붙였다. 대운하사업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거세지자 꼼수를 부렸다. 대운하사업을 접고 한국형 녹색뉴딜인 4대강 정비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새누리당과 언론들도 4대강 사업이 홍수예방을 비롯해 수질개선, 일자리 창출 등 친환경 경제 사업이라며 연일 추켜세웠다. 그렇게 대운하사업 변종인 4대강 사업이 시작됐다. 건설역군 출신 대통령의 집요함으로 인해 산천이 헤집어지고 생명들은 신음했다.

문수 스님은 수행자였다. 1986년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한 스님은 선방에서 화두를 붙들고 용맹정진 해왔다. 1998년 강직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스님이 중앙승가대 총학생회장을 맡았을 때 종단 내부 갈등이 심화됐고 폭력사태로 이어졌다. 그 여파가 중앙승가대까지 확산됐지만 옳고 그름이 명확하고 대의를 잃지 않았던 스님 덕에 조속히 정상화될 수 있었다. 중앙승가대 김포학사 건설이 한창일 때에는 방학을 이용해 공사 현장에서 일손을 거들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스님은 다시 참선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소신공양 3년 전부터 절친한 도반스님이 군위 지보사 주지 소임을 맡으면서 이곳에서 하루 한 끼로 연명하며 정진하는 무문관 수행을 이어갔다. 세상일은 종종 들어오는 신문과 시사지로 알 수 있었다. 문수 스님은 4대강 사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았고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가는 현실에 마음 아파했다. 스님은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온 생명을 살리고자 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은 충격이었고 비통함이었다. 조계종 총무원을 비롯해 대한불교청년회,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 중앙신도회, 조계종 종무원조합 원우회, 환경운동연합, 종교환경회의, 민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도 일제히 애도 논평과 성명을 냈다. 무리한 4대강 사업으로 한 수행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정권에 대한 비판과 생명존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스님의 생명과 평화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향소가 마련된 조계사를 찾아 문수 스님을 추모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더욱 거세졌다. 4대강 생명살림 불교연대는 조계사에서 문수 스님 추모재를 개최하고 스님의 뜻을 기리는 추모기간으로 지정, ‘참회와 성찰을 위한 108배 기도정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몸을 심지 삼아 세상을 밝히려는 스님의 뜻은 이명박 정권 내내 저항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이달 31일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이 10주년 되는 날이다. 10년 세월은 4대강 사업이 이 땅을 농단한 사건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한다던 강은 보로 인해 썩어 들어가 ‘녹조라떼’가 됐고,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유지비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과 지역민원을 불러일으켰다. 22조원이 넘는 예산의 상당부분이 민간건설업자 주머니에 들어갔다. 당사자인 이 전 대통령은 다스(DAS) 비자금 횡령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아 구속과 보석을 반복하는 비루한 모습이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에 한없이 눈물을 떨구던 수경 스님이 홀연히 떠나갔던 것도 큰 변화였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의미는 남은 이들에 의해 완성된다. 문수 스님의 이름이 자주 회자되고 떠올려질 때 뭇 생명이 존중받는 상생의 문화도 꽃 피울 수 있다. 그 역할이 불교계에 주어져 있다.

mitra@beopbo.com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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