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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화’의 진정한 의미

기자명 효탄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0.05.18 11:33
  • 수정 2020.05.18 11:34
  • 호수 1538
  • 댓글 2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봉축 황룡사9층탑 앞을 지나갔다. 저녁 시간 불을 밝힌 초파일 풍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여느 해와 같은 감동적 풍경이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유례없이 봉축행사가 윤 4월8일로 미루어졌고, 전 지역에 걸쳐 행사도 대폭 줄이는 모양새이다. 황룡사9층탑은 선덕여왕을 중심으로 삼국을 통일하고자, 더 나아가서는 주변 9개국을 조복시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표출되어 세워진 것이다. 그러한 상징성을 가진 황룡사9층탑을 지나면서 문득 ‘세계일화’를 떠올렸다. 

내가 출가한 곳은 덕숭산 수덕사 견성암이다. 그 치열했던 행자시절, 견성암 선방에서는 책이란 책은 글자 하나도 볼 수 없다는 암묵적 규율이 엄했다. 

그러나 나는 익혔던 습을 못 버리고 선방에서도 구석구석 책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한 나였기에 견성암의 선풍이 칼날 같아도, 선방에 수좌스님들이 가득 앉아계셨어도 책 한권 손에 들면 그야말로 감로수 만난 행복이었다. 당시 선은 내게 좀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저 조실스님께서 법상에 올라가 법을 설하시고 정월 초면 통알 잡숫는 등 그러한 진기한 선가의 가풍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외심에 숙연해할 때였다. 그때 내 손에 들어온 책이 ‘만공어록’ ‘경허어록’ 등이었다. 선방이니 그러한 서적은 용납이 되었던 것이다. 그 책 가운데 지금도 계속 내게 화두처럼 박혀있는 글자, 만공 스님의 무궁화 꽃으로 쓰신 ‘세계일화(世界一花)’였다. 

만공 스님 말씀의 진정한 의미야 어디로 갔던 ‘세계일화’를 꽃피우려는 듯 우리들은 ‘지구는 하나’라고 외치며 경쟁적으로 전 세계 전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여행을 하고 3분의 1이 지역 이동을 하였다는 말이 있듯이, 거칠 것 없이 지구와 자연을 피곤하게 하고 소비를 최고로 여기고 살았다. 물론 순기능도 있었지만 역기능은 간과되었다. 특히 한국은 지구상에서 아주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남북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속에서 주목받는 나라이다.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작은 나라이기에 더욱 주목받기를 갈망하고 중심에 서기를 원했다. 그래서 좁은 나라에서 탈출해 ‘세계일화’를 실천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분주하게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다. 

나아가 강한 문화강국을 내세운 한류(韓流)에 대한 열망은 K-Pop, K-Food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요즘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서는 K-방역이라는 말조차 생겨났을 정도이다. 그동안 종단의 사찰음식 세계화, 간화선 세계화, 이런 것들도 그 바닥에는 자긍심을 넘어서 세계에서 탑(Top)이 되고자하는 조급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초유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앞만 보고 달려왔던 자신들을 뒤돌아보게 하였다. 또한 이것이 인간의 무한한 욕망에 따른 자연 훼손과 그에 따른 인과응보라고 더욱 자각하게 되었고 지구와 환경을 심각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종 바이러스 앞에 국제사회는 펜데믹 상황이 되었고 공동대응은 무산되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암울한 소식이 넘쳐난다. 코로나19 사태로 또 드러난 현상은 이제는 지구상에서 패권국이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G7>G20>G2 시대는 가고 세계질서는 ‘G0(지제로)’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국가는 언텍트(Untact, 비대면)를 기반으로 새로운 질서로 편성될 것이라 예견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만공 스님께서 말씀하신 ‘세계일화’의 진정한 의미와 ‘일체중생실유불성’을 연결해 생각해 본다. 그 불성의 꽃의 개화는 인간만이 아닌 모든 유정·무정이 한 뿌리이고, 커다란 인드라망의 생명공동체라는 것을 크게 자각할 때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각기 갖고 있는 이 한 송이 꽃, 불성이 발현되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추어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기대비심(起大悲心)이 아닐까 한다. 큰 자비심과 깊은 연민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세계일화는 요원한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효탄 스님 조계종성보문화재위원 hyotan55@hanmail.net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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