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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 총무원장 호명 스님

“원칙·화합 두 축 구동시켜 자긍심 넘쳐나는 역동적 종단 일굴 터”

절에 가면 굶지 않고 공부
10살에 선암사서 삭발염의

고단했던 행자시절 마치고
“나는 복 많고 행복한 사람”

격심한 분규 속 종단 살리려
27대 총무원장에 단독출마

총무원 청사 진입 갈림길서
종법에 근거한 원칙 고수  

종단 재도약 실기 했지만
엄청난 잠재력 품은 종단

종도 목소리 귀담아 듣고 
통합·결속 다지는데 최선

태고종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불자라면 일상에서도 부처님 제자다운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며 “모든 악(惡)은 짓지 말고 모든 선(善)은 받들어 행하라'는 칠불통계게를 가슴에 새겨두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종단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태고종 27대 총무원장으로 선출(2019,6)되고도 총무원 폐쇄로 청사 앞 길거리에서 당선증을 받아야했던 호명 스님의 한 마디가 처연하게 울렸다. ‘한 종단 두 총무원장’ 체제라는 현실만을 탄식한 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의 태고종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갈등’이다. 2000년 19대부터 2017년 26대 총무원장직에 오른 스님들이 약속한 건 한결같이 ‘내분 종식’, ‘추락한 종단위상 회복’이었다. 17년 동안 반목, 비방, 비리, 횡령 등의 사건으로 점철됐음을 반증하는 대목인데 1년 만에 4명의 총무원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기만 해도 불협화음에 벌어진 작은 틈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틈 사이로 알력과 권력이 비집고 들어와 큰 균열을 냈다. 거듭되는 대립·반목 속 잦은 내홍은 종도들을 사산분리시켰고, 그 사이 조계종에 이어 ‘한국불교 제2종단’이라는 명성도 허물어졌다. 

편백운 스님도 총무원장(26대) 당선 직후엔 “태고종의 미래를 짊어질 막중한 선택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한편, 가슴 끝까지 저려오는 무거움을 느낀다”고 했다. 위기에 처한 태고종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취임 1년 4개월 만인 2019년 1월 삼권분립 원칙에 반하는 수준을 넘어선, 사실상의  ‘편백운 총무원장 독주’를 선언했다. 순식간에 종단은 분규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중앙종회와 원로회의로부터 불신임 받은 편백운 스님은 물러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채 총무원 청사를 점거·폐쇄했다. 

20년에 가까운 태고종의 분란을 목도한 호명 스님에게 작금의 종단은 ‘층층이 쌓아올린 계란’과 다름없어 보였을 터였다. 당선증을 받던 그날, 호명 스님은 “누란의 위기”에 이어 의미 깊은 한 마디를 더했다.

“태고종은 이 난관을 반드시 극복할 것입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가을에 추수한 식량은 다음해 이른 봄철이면 거의 바닥났다. 기대할 수 있는 건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의 보리 수확뿐. 어떻게든 그 고비를 넘겨야만 했는데 이를 ‘춘궁기(春窮期)·보릿고개’라 했다. 1962년 봄, 순천에 때 아닌 홍수가 났다. 보리농사를 망쳤으니 이른 봄에 닥쳐온 배고픔은 초여름이 되어도 해결될 리 만무했다. 10살 소년은 알고 있었다. 절에 가면 밥 먹여주고 공부시켜준다는 것을 말이다. 그해 부처님오신날, 조계산 선암사 산문으로 들어섰다.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총무원 청사 앞 길에서 당선증을 받았다.

절에 꽃향기 가득 들어차도 어린 행자는 젖을 수 없었다. 봄맞이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규모는 대단했는데 100여명이 기본이었다. 그들이 먹고 비워낸 그릇들을 씻어내는 것은 절에 갓 들어 온 행자들 몫이었다. 1박2일로 온 단체에게는 다음 날 아침공양과 함께 점심 도시락까지 마련해 주었는데 그 일 또한 행자들에게 떨어졌다. 허리는 끊어지는 듯했고 손에서는 피가 날 정도였다.

‘저 학생들은 복이 많구나!’

행자생활을 마치고 사미가 되어서도 공양간 설거지 일은 지속됐지만 절을 떠나지 않았다. 선암사와 인연이 깊었음이다. 세납 열여덟 즈음에 이른 어느 날 한 생각이 스쳤다.

‘나는 밥·옷·집 걱정 안 하고 산다. 큰 복이다.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승복도 입었다.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 행복을 전하는 전법사가 되겠다는 원력을 품고 보니 환희심이 차올랐다. 선암사 내 11개의 전각을 일일이 돌며 108배를 올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는 스님이다. 신심만큼은 굳건해야 한다!’ 

26대 총무원장 선거 당시에도 후보로 나서야한다는 여론이 있었지만 선암사 주지 역할에 좀 더 무게를 두었던 터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27대 총무원장 단일후보 요청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 휘청거리는 종단을 누군가는 추슬러야 했다.

‘내 희생으로 종단이 바로설 수 있다면 온 몸이 깨져도 좋다!’

애종·공심에 관한한 정평나 있는 신임 총무원장에게 거는 기대는 종단 안팎으로 컸다. 종단의 행정력을 장악하려면 총무원 청사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가 관건이었다. 사법부 판단을 기다려 무혈입성해야 한다는 ‘온건여론’과 무력충돌을 무릅쓰고라도 당장 입성해야 한다는 ‘강경여론’이 맞섰다. 그 갈림길에서 호명 스님은 ‘종헌종법’을 택했다. 급하더라도 원칙에 입각한 행보를 하겠다는 뜻의 다름 아니었다. 종단을 바로 세우려 전면에 나선 스님들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우리는 스님입니다. 어렵더라도 좀 더 인욕하며 중대 사안들을 차근차근 풀어가야 합니다.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면 해결될 것이라 봅니다.”

강경 노선에 섰던 스님들도 이내 공감하며 ‘긴 기다림’을 받아들였다. 

총무원장 호명 스님의 예측은 그대로 적중했다. 12월19일, 사법부 판결에 따라 편백운 스님측이 불법점거·폐쇄해 왔던 총무원 청사에 충돌없이 진입했다. 15대 중앙종회도 종헌종법에 따라 원만히 개원됐다. 태고종은 이날 1년간의 분규가 완전히 종식됐음을 선언했다.

안정 국면 속에서의 태고종은 ‘1년여의 내홍을 겪은 종단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일신한 면모를 보였다. 코로나19 관련 대처가 대표적이다. 종단협의회 소속 종단 중 총무원장 명의의 성명서를 가장 먼저 발표하며 감염확산을 선제적으로 차단했다. 당시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국민 한 분 한 분이 안전한 그날까지 우리 한국불교태고종은 코로나19 퇴치에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성명서 발표 이틀 만에 희생자 추모법회까지 봉행했다. 

총무원장 호명 스님 취임식은 선암사에서 봉행됐다.

총무원이 방역성금 모금 의지를 표명하자 종도들의 답지가 이어졌다. 태고종 비구니회, 제주 반야사, 전북교구종무원, 나누우리 등의 종단 소속 단체와 사찰들도 총무원과 궤를 함께하며 자비활동에 동참했다. 총무원 집행부에 대한 신임과 종도들의 결속력을 실감케 한다.   

궁금했다. 종단이 무너져가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원칙을 고수했던 연유가.

“종단의 크고 작은 혼란은 종헌종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택해야 할지 고민될 때 종헌종법을 열어 보면 길이 보입니다. 위급한 상황에 직면했다 해서 종법을 간과하면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종도들의 지지가 굳건함을 느꼈던 때는 언제였을까?

“혼란 당시 저희들은 총무원 청사에 들어갈 수 없었고 종단 기관지인 ‘한국불교신문’도 발행할 수 없었습니다. 총무원 밖에 임시총무원을 마련해 종무행정을 수행했고, ‘총무원 공보’를 발행하며 종단이 가야할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에 따른 재정이 만만치 않았는데 수많은 종도들이 보시해 주어 꾸려갈 수 있었습니다. 저의 취임식은 부득이 선암사에서 치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종단의 한 축을 묵묵히 담당해 오신 스님들이 먼 길을 마다않고 참석해 주셨습니다. ‘종단을 지켜내려는 종도들이 우리 곁에 운집해 있구나’ 직감했습니다.” 

취임식 당시 ‘태고종의 본래면목을 되찾고 새로운 종단의 내일을 열어가겠다’고 천명했다. 태고종의 저력을 믿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1975년 장충체육관에서 선암사 괘불을 모시고 ‘불교중흥대법회’를 거행했는데 장충체육관을 꽉 채운 것은 물론이고 자리가 없어 밖에서 합장하며 서 있는 불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1만명도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태고종 중앙불교회관을 건립(1985)하며 조성한 ‘삼천불 불사’에도 엄청난 호응이 있었고, ‘93 대전엑스포 원만성취를 위한 영산대재’ 역시 1만5000여명의 참여 속에 성대히 회향했습니다. 방생대법회를 열면 기본적으로 5000여명의 불자들이 동참했습니다. 우리 종단은 엄청난 힘을 품고 있습니다. 그 잠재력을 불러일으키고 응집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 혼자의 힘만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습니다.”

종단을 새롭게 도약시키려는 종도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일 터다.

“코로나19로 주춤하고 있지만 3원장(총무원, 중앙종회, 호법원)·주요기관장·시도교구종무원장 연석회의를 정기적으로 가지려 합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전국의 교구종무원을 순회하며 종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입니다. 응집력은 화합에서 비롯되고, 그 화합은 소통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원칙·종법’, ‘소통·화합’ 두 축을 구동시키면 자긍심 넘쳐나는 역동적인 종단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드리자 은사 성월 스님과 전 종정 덕암 스님의 일화를 전했다.

“은사스님을 시봉할 때입니다. 아침 일찍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드렸습니다. 세수하시고, 발 씻으신 후 그 물에 걸레까지 빨으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을 나무에 부으셨습니다. ‘제가 한두 번 더 떠다 드리면 됩니다’ 했더니 한마디 하셨습니다. ‘물 한 방울도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고, 후손에게 빌려 쓰는 것이다.’ 한 절의 법회 때 덕암 스님이 오신다고 하니 많은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법당으로 향하던 덕암 스님께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신발들을 가지런히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법문은 다 했습니다!’ 불자라면 일상에서도 부처님 제자다운 생각을 하고 말을 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모든 악(惡)은 짓지 말고 모든 선(善)은 받들어 행하라'는 칠불통계게를 가슴에 새겨두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다운 생각과 언행! 신심 깊은 불자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원칙·종법’과 ‘소통·화합’을 꿰뚫는 것도 신심일 터였다. 애종심이나 공심도 신심에서 비롯된다. 격랑에 휩싸인 돛단배처럼 흔들리는 종단을 호명 스님에게 맡긴 것도 그 지극한 신심을 종도들은 보았기 때문일 터다. 

호명 스님의 총무원장 취임식 당시 원로의장 덕화 스님이 전한 일언이 떠올랐다.

“태고종도로 53년, 원로의원으로서 17년을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종단의 희망을 기대하게 된 적이 없었습니다.” 

태고종 사부대중의 마음도 그와 같을 것이다. 그 희망은 오늘도 빛나고 있다. 종도들의 신심이 하나로 모아지고 있으니 잠재된 힘은 머지않아 깨어날 것이다. 벌어진 틈도 메워지고 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호명 스님은

1962 선암사에서 삭발염의.
1964 순천 선암사에서 사미계 수지.
1974 서울 봉원사에서 구족계 수지.
1999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수료.
2009 중앙사정원 사정위원.
2013 태고종 총무원 부원장.
2016 선암사 주지.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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