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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원문 읽는 시간

기자명 황산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0.05.18 14:30
  • 수정 2020.05.18 14:31
  • 호수 1538
  • 댓글 0

기도 지루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누군가 인생이 달린 막중한 의미
축원은 나와 남을 위한 기도시간

초하루 불공이나 사시불공 등 기도를 집전하다 보면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이 축원할 때다. 기도 올린 모든 분들을 다 축원해 드리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법회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가버리는 분들이 많이 생긴다. 독송이나 정근은 같이 따라 하지만 축원할 때에는 각자 알아서 그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축원은 기도 시간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줄이기도 쉽지 않다.

이런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불자들이 축원의 의미와 기도의 마음가짐을 넓고 크게 가지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기도할 때 축원이란 누군가의 인생이 달려 있는 막중한 의미가 있다. 백일기도든 천일기도든 축원을 올린 분은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올린다. 기도하는 스님은 축원문 한 장을 그냥 읽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소원성취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 간절한 기도는 통하기 마련이다. 스님이 지성으로 축원하면 당사자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 실제로 눈에 띄게 좋아지는 현증가피를 얻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좋아지는 명훈가피가 형성된다.

불자들도 그 이치를 알면 스님이 축원할 때가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된다. 축원하는 스님은 신도들을 위해 보살행을 닦는 수행시간이 되고, 불자들도 정성스런 축원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잘 되도록 빌어주게 된다. 축원기도가 기부나 봉사활동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것은 남을 위한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축원 시간은 나는 물론 남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다. 그러니 축원 시간이 길수록 남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된다. 스님들은 축원문을 읽어주고 불자들은 그 시간에 절을 하거나 경전을 독송하면 기도 올린 분에게 훨씬 더 큰 가피가 생긴다.

이웃종교에는 십일조나 헌금 등을 내서 단체가 운영되지만 사찰은 신도들이 기도금을 올리고 스님이 축원을 해주는 것으로 운영된다. 기도 올리는 마음과 그에 따른 간절한 축원이 서로 상생하여 사찰이 운영되는 것이다. 아무 대가 없이 그냥 기부나 헌금하는 것만 좋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한 기부가 아니고 절대자에 대한 의무감으로 내는 것이라면 기복보다 못할 수 있다.

살면서 잘 되고자 하는 것이 중생의 마음이고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보통사람의 마음이다. 부처님께 복을 달라고 자꾸 비는 기복불교는 저열하지 않다. 성취 여부에 집착해 휘둘리는 것이 문제이지 기복불교도 나중에는 내가 잘되어 남을 돕는 사람이 되려하고, 나중에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소원을 비는 것은 자비심의 근본이 되는 행동인 것이다.

황산 스님

축원문은 중생의 오욕락 때가 많이 묻어 있는 종이쪽지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축원문이 가득 쌓여 있으면 ‘부처님 전에 소원을 빌고자 하는 이들이 저렇게 많다’는 것으로 참으로 훌륭한 인연이다. 자신의 삶을 부처님께 의지하고 귀의하려는 이들인 것이다. 탐욕의 때가 가득한 축원문일지라도 원력으로 성장한다는 것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 법당 천장에 가득한 연등 등표나 법당 벽면에 가득한 인등을 바라볼 때도 그 인등과 연등 등표에 그 사람과 그 가족들의 삶이 그대로 실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참 아름다운 사회,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부처님의 곁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부처님과 같아지는 것이 우리 불교이기 때문이다.

황산 스님 울산 황룡사 주지 hwangsanjigong@daum.net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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