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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재가자의 율장 이해

기자명 정원 스님

왜 출가자 외에는 율장 열람하지 말라고 했을까

율장은 출가자 생활방식 규정
재가자에 거리 뒀던 게 전통
율장 알아 과실 자주 들춰내면
서로 수행에 방해된다고 간주

율장은 승단과 출가자의 수행과 생활 방식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가에 따라 효용가치가 드러난다. 어떤 이가 율장은 재가자의 필수과목이라고 주장한 글을 읽고 답답한 마음으로 며칠 지냈는데 한 스님으로부터 이런 주장에 대한 견해를 묻는 문자를 받았다. 부처님께서 제정한 계율의 종류와 재가불자에 대한 계율교육을 간략히 살피고, 재가자의 율장열람에 대한 상좌부불교와 북방불교의 차이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부처님께서는 출가오중(出家五衆)을 위해서 비구계, 비구니계, 식차마나육법, 사미 및 사미니 십계를 만드셨다. 재가이중(在家二衆)인 우바새와 우바이를 위해서는 삼귀의, 오계, 팔관재계를 제정하셨다. 이것은 상좌부불교와 북방불교에 공통적으로 해당한다. 북방불교는 재가불자와 출가자가 함께 받아 지닐 수 있는 범망경보살계 혹은 유가보살계가 보태지는 복층구조이다.

상좌부불교에서는 재가불자들에게 율장을 가르친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실제상황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듯하다. 필자의 부족한 경험으로는 상좌부불교에서도 재가불자들에게 비구계의 계목을 상세히 가르치거나 율장 전체를 다 가르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다. 스님들의 의식주가 재가불자의 외호에 의존하기 때문에 계목 가운데 일부 내용들을 재가불자도 알아야 출가자가 계를 어기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 따라서 출가자가 개인의 수행과 승단의 화합과 청정을 유지할 목적으로 율장을 익히는 것처럼 그리 자세하고 깊이 이해하는 재가자는 당연히 많지 않다.

대만의 경우도 계율도량을 외호하는 신도들의 계율이해가 일반사찰의 재가불자보다 훨씬 깊다. 승단을 외호하는 방식이 율에서 정한 기준에 맞아야 하므로 재가불자들에게도 일정부분 관련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가불자들도 받는 범망경보살계는 음행·살생·도둑질·망어계와 관련한 계상을 세세하게 가르친다. 근본중죄의 범계를 판단하는 기준은 율장의 내용을 준용한다. 홍일율사는 재가불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계율지식을 담은 ‘남산율재가비람’을 지어 재가자 계율교육의 지침을 마련하였는데 지금도 이 책은 재가불자들에게 계율을 가르치는 가이드로 쓰인다.

일전에 어떤 이가 생존해 계신 특정 비구 율사스님의 법명을 언급하면서 그분 때문에 한국불교만 이렇게 재가자의 율장열람을 금지한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면서 계율연구에 일생을 바친 스님을 비방하는 구업을 지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구족계를 받은 비구와 비구니 외에는 율장을 보지 말라는 것은 한국불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북방불교의 보편적 태도로써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북방으로 전래된 율장은 처음부터 비구와 비구니 외에는 열람하지 말라는 입장을 취했다. 유교나 도교가 자리 잡고 있던 상황에서 후발주자로써 유입된 불교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사회문화적 특성을 고려해야 했다. 상세한 계목이나 계율제정의 인연 등이 인도문화를 반영하고 있어서 중국인들의 풍습에 어긋나기도 하고, 재가자가 내용을 앎으로써 자주 출가자의 과실을 들추어내면 자신과 타인의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역대 고승대덕과 조사스님들도 재가자가 출가자의 계율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사미 등 구족계를 받지 않은 이도 열람하지 말라는 입장을 취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율장과 주석서의 근거조항도 있다. 지금은 누군가의 자발적 율장열람을 금할 수도 없는 시대지만 출가자들이 자신의 존재기반인 율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형편껏 실천할 때 어떤 옳은 말도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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