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바른 참선’의 판단과 ‘종사’의 인증
20. ‘바른 참선’의 판단과 ‘종사’의 인증
  • 선응 스님
  • 승인 2020.05.18 15:50
  • 호수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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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참선의 척도는 ‘언행’에 있다

말과 행동의 상위로 허실 판단
허실은 헛된 참선과 참된 선법
깨달은 후 스승 안 만나면 독약
인증 없는 깨달음을 경계한 것

이전은 ‘참선자’가 ‘호흡’ 사이에 ‘생사’가 있음을 명심하고 ‘마장’을 점검해서 ‘화두’와 하나가 되어 정진해야 한다고 설했다. 23장은 “‘말을 배우는 사람들이 말할 때는 깨친 듯해도 경계를 대하면 도리어 미혹한다’는 것은, 말과 행동이 ‘상위(相違, dvanda)’하다는 것이다”이다. 즉, ‘바른 참선’의 척도는 ‘언행’에 있다. 

‘경덕전등록’에서 서룡(瑞龍幼璋, 841~927)은 “신통하고 괴이한 것으로 ‘나의 일(선법)’을 간섭 말라. 만일 말 배우는 자들이 스스로 자기를 살펴서 잘못을 알지 못하면 바로 허공 속에서 꽃을 꺾고 파도 속에서 달을 건지려고 하는 것인데, 다시 ‘심력’을 집착하겠는가?”한 것과 같이, ‘조사선’에서는 ‘신통’이나 ‘분별’과 ‘사유에 의한 지혜’조차 ‘정법’이 아니다. 

평하시길 “이것은 앞에서 ‘스스로 속인다’는 뜻을 설명해 마치고, 말과 행동이 ‘상위’한 것으로 ‘허실(虛實)’을 판단하게 된다”고 했다. ‘화두’ 참구 중에 대상을 만나서 마음으로 ‘계략’하는 것이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허실’이란 ‘헛된 참선’과 ‘참된 선법’을 말한다. ‘바른 깨달음’은 ‘바른 언행’으로 나타난다. 

24장은 “만일 ‘생사(生死)’를 대적하려면 이 ‘한 생각(화두)’에서 딱 한 번 타파(깨달음)해야 ‘생사’를 마치게 된다”이다. 대혜(1089~1163)의 ‘서장’에서 “만일 ‘직로(활구)’의 이치를 알려면 ‘화두’를 타파해서 깨달아야 한다”고 한 내용으로, ‘생사’는 중생(胎‧卵‧濕‧化)이 ‘3계(물질‧욕망‧정신)’에서 ‘6도(지옥‧아귀‧축생‧수라‧인도‧천도)’를 윤회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생사’ 고통을 해탈하게 하는 법이다.

고봉(高峰原妙, 1238∼1295)의 ‘선요’에서 “‘시체를 지키는 귀신’과 같이 ‘화두’ 들기를 소중히 하여 오고 가다가 홀연히 ‘한 소리’에 ‘의심’을 타파하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게 되니 노력하고 노력하라”고 하니 ‘목석’과 같이 ‘화두’와 하나가 되면 반드시 깨닫게 된다. 

평하시길 “‘폭’이란 ‘칠통’이 타파되는 소리다. ‘칠통’을 타파해야 ‘생사’를 대적할 수 있다. ‘제불’의 ‘인지(因地)’수행 법은 오직 이것뿐이다”라고 했다. ‘벽암록’에서 ‘칠통’이란 깨닫지 못한 ‘미혹’한 사람이다. ‘인지’란 ‘원각경’에서 “여래는 본래 청정 ‘인지법행’에서 기인했다”고 하고, ‘능엄경’에도 “나는 본래 ‘인행’할 때 ‘염불’로 ‘무생법인’에 들어갔다”고 하듯이 ‘생’이 없는 ‘깨달음’을 증득하게 되는 ‘선정삼매’다. 

25장은 “그렇게 ‘한 생각(화두)’에서 ‘한번 타파한(깨달음)’ 후에 반드시 ‘밝은 스승’을 예방해서 ‘바른 안목’을 결택해야 한다”이다. 즉, 깨달았다고 해도 반드시 ‘눈 밝은 스승’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대혜어록’에서 ‘밝고 바른 안목을 가진 스승’을 ‘정법안장’이라 하고, ‘태고(1301~1382)어록’은 “실로 ‘화두 참선’이 깊어지면 홀연히 ‘무명’을 타파하고 밝고 크게 깨닫는다. 깨달은 후에 ‘본색(조사선)’의 ‘종장(선사)’을 친견해서 ‘궁극의 경지’를 판단 받아야 한다. 만일 ‘종사’를 친견하지 않으면 열이면 열 ‘마군’이 된다”고 하였고, 올암(兀菴普寧, 1197~1276)선사는 “만일 ‘밝은 눈’의 ‘밝은 종사’의 ‘인증’을 구하지 않으면 마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알아서 급제는 했지만 관직에 오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한다. 

평하시길 “이 일은 궁극에 쉽지 않다. ‘참괴’를 생해야 한다. ‘참선’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깊어진다. 삼가서 작은 것을 얻어서 만족하지 말라. 깨달은 후에 만일 스승을 만나지 않으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된다”고 했다. 

‘현종론’에 ‘참괴’에 대해서 “‘부끄러움(慚)’은 애욕을 벗어나서 ‘3학(계·정·혜)’에 자재하고, ‘뉘우침(愧)’은 ‘어리석음(癡: 무명)을 벗어나서 ‘불 과위’를 수행한다”고 해석했다. ‘대반열반경’에서 “‘제호’란 ‘불성’이 발현된 ‘불과’이다”라고 했다. 여기서는 ‘선종’의 ‘선법’으로 ‘인증 없는 깨달음’을 경계하신 것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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