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기녀와의 약속 통해 교화하다
20. 기녀와의 약속 통해 교화하다
  • 이필원 교수
  • 승인 2020.05.18 16:01
  • 호수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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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와 약속 깨지 않자 귀족들 더 감동

붓다의 천하다 귀하다 기준은
사람 행동서 나타난다 가르쳐
직업이나 태생 귀하다고 해도
행동 귀하지 않으면 천한 존재

우리는 흔히 사람에게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건강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는 것과 실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붓다의 마지막 여정을 그린 경전이 ‘디가니까야’에 실려 있는 ‘대반열반경’이다. 붓다의 열반을 향한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왓지국의 수도 웨살리 지역에 있는 암바빨리(Ambapāli) 원림(園林)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이다. 암바빨리는 기녀였는데 인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일설에는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한 나라의 하루 치 세금에 해당하는 막대한 돈이 들었다고 할 정도였다. 암바빨리는 자신이 소유한 망고동산에 붓다가 머물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훌륭한 수레를 마련하여 찾아뵈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받고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시옵소서.”(DN.II, p.95)

붓다는 침묵으로 그녀의 공양을 승낙하셨다. 암바빨리는 다음 날 붓다께 올릴 공양 준비를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한편 릿차위(Licchavi)들 역시 붓다가 암바빨리 원림에 머물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수레를 타고 가고 있었다. 릿차위들은 왓지족의 귀공자들로 왕가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암바빨리는 서둘러 가는 길에 그녀의 마차가 그만 릿차위들이 탄 마차와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자 릿차위들은 그녀를 나무랐다. 그러자 그녀는 “공자들이시여! 정말이지 제가 세존을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에 초대했답니다”라고 답하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릿차위들은 “암바빨리여! 10만 냥에 그 공양을 넘기게”라고 말했다. 하지만 암바빨리는 “공자들이시여! 여러분께서 저에게 웨살리를 영지와 함께 준다고 해도, 저는 이 공양을 넘길 수 없습니다”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릿차위들은 “천한 여인에게 우리가 졌다”고 하면서 붓다가 계신 곳으로 서둘러 갔다. 그들의 행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붓다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비구들이여! 비구들 가운데 도리천의 천신들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릿차위의 무리를 보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릿차위 무리를 살펴보아라. 비구들이여! 릿차위 무리를 도리천의 무리에 비견해 보아라.”(DN.II, p.96)

그 행렬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릿차위들의 행렬이 도리천의 천신들에 비견될 만하다는 것이었다. 릿차위들은 붓다를 찾아뵙고 가르침을 들었다. 그리고는 붓다께 내일 공양을 올리고 싶다고 청하였다. 그러자 붓다는 “릿차위들이여! 나는 내일 암바빨리의 공양을 받기로 승낙했소”라고 답하며 정중히 거절하였다.

왓지국 리차위들은 훗날까지도 그 가문의 고귀함이 특별났던 종족이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도 컸으며 존경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더구나 이들은 신들의 위세에 비견될 만큼 웅장한 행렬을 갖추어 붓다를 찾아뵈었다. 그러나 암바빨리는 그저 한명의 기녀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돈이 많고 대단한 미녀였지만 릿차위들이 말한대로 ‘천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릿차위들은 이미 붓다가 암바빨리의 공양을 받기로 했음을 알면서도 붓다께 공양을 올리고자 했던 것이다. 한낱 천한 기녀보다 붓다께서는 우리와 같은 고귀한 이들의 공양을 받아주실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붓다는 천하다 귀하다는 판단 근거는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지 직업이나 태생이 아님을 누누이 가르치셨다. 또한 그러한 행동은 마음 하나의 씀씀이에서 비롯되기에 누구나 천한 사람도 되고 귀한 사람도 된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지 않은가. 

붓다의 정중한 거절에 릿차위들은 더 감동하게 된다. 붓다는 권위를 앞세우지 않으며 세속적인 권력이나 부를 통한 이익의 기대보다 한 사람과의 약속이 소중함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교화한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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