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베르나도 베르돌루치의 리틀 부다’ (1993)
33. ‘베르나도 베르돌루치의 리틀 부다’ (1993)
  • 문학산 교수
  • 승인 2020.05.18 17:31
  • 호수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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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라마 찾는 서사이자 싯다르타 성도기

싯다르타, 생로병사 고통 해결 위해 삭발하고 수행에 나서
마라의 다섯 딸 오만과 탐욕 두려움 등 인간의 욕망 대변
마군 불화살 공격도 자비 통해 꽃잎으로 변화시킨 뒤 정각 
‘리틀 부다’는 환생한 라마 도체를 찾는 서사이자 고타마 싯다르타 이야기가 삽입된 붓다영화. 사진은 영화 스틸컷.

베르나르도 베르돌루치는 부친의 친구인 파졸리니 감독의 조감독으로 입문하여 ‘파리에서 마지막 탱고’로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부각됐다. 그 후 청나라 마지막 황제를 다룬 ‘마지막 황제’(1987)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동양문화에 대한 관심은 ‘리틀 부다’(1993)로 이어졌다. 티베트 불교의 전통은 법통을 환생한 인물로 승계한다. ‘리틀 부다’는 환생한 라마 도체를 찾는 서사이면서 영화 속 영화로 고타마 싯다르타 이야기가 삽입돼 붓다영화(Buddha film)로 귀결된다.

첫 장면에서 양이 전생에 인간이었다는 우화로 환생에 대한 주제를 전면화한다. 윤회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와 육도를 순환하며 환생은 생명체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티베트불교는 환생한 영적 지도자를 찾아서 법통을 이어간다.

라마 로브는 미국의 시애틀로 출장을 떠난다. 사원에서 빌딩 숲의 도시로 출장 목적은 라마 도제가 환생한 제시와 친견이다. 라마 노브는 시애틀에서 모기 탈을 쓴 제시를 만나고 그의 모친에게 석가모니 붓다의 일대기에 관한 동화책을 선물한다. 제시는 엄마가 읽어주는 붓다의 일대기를 통해 불교에 입문한다.

영화는 두 갈래로 분기된다. 한 갈래는 환생한 라마 도제를 찾는 임무와 다른 갈래는 룸비니 동산에서의 탄생부터 보리수 앞에서 유혹을 물리치고 정각을 이룬 수마항마로 펼쳐진다. 마야 부인은 친정으로 가는 도중 태동을 느끼며 아기 코끼리가 집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다음 룸비니 동산에서 싯다르타를 출산한다. 이때 동산의 나무 가지가 내려오는 기적을 보여준다. 태어난 싯다르타의 발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는 신비한 기적도 보여준다. 

탄생 축하연에서 수도자는 아이가 세상의 지도자가 될 것으로 예언한다. 마야 부인은 건강의 악화로 동생에게 아이의 양육을 당부한다. 싯다르타는 어느 날 음악연주를 듣고 성 밖의 세상으로 출행한다. 그는 환호를 받았지만 늙은 노인을 통해 늙음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세상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의 바다임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는다. 싯다르타는 인간의 생로병사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성을 나선다. 숲에서 싯다르타는 머리를 자르고 비단옷을 다른 수행자에게 전하고 낡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머리의 삭발과 옷의 갈아입음은 수행의 입문을 보여준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

수행 과정에서 두 번의 기적으로 성스러움을 암시한다. 싯다르타가 수행을 할 때 큰 코브라가 머리 위에 우산이 되어 비를 막아준다. 싯다르타는 배 위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는다. 싯다르타는 큰 깨달음을 얻고 강에 나아가 몸을 씻는다. 몸을 씻는 행위는 대각을 통해 성인으로 거듭나는 것을 함의한다. 싯다르타는 강물에 떠내려간 발우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을 통해 대각을 입증한다. 시골 아가씨가 전한 발우는 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세 번째 신통력을 보여준다. 싯다르타는 양 극단의 사이에 중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제시와 부친은 라마 노브와 함께 네팔로 향한다. 그들은 네팔의 카트만두에 도착하여 큰 사원을 참관하고 거리의 불교도들이 한번 돌리면 경전 한번 읽는 효과와 같다는 마니차를 돌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들은 대도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교의 문화 속으로 젖어든다. 네팔은 붉은 기운의 색감으로 불교의 세계를 물들이고 시애틀은 고층 건물과 푸른색 톤으로 자본주의의 도시 이미지를 대비시킨다. 제시는 라마 도제의 환생으로 여겨진 라주와 지타를 네팔에서 만난다. 그들은 라마 노부의 안내로 싯다르타가 정각을 이룬 보리수 아래로 향한다. 라마 노부는 싯다르타가 나무 아래서 정각을 이루고 마귀들이 유혹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곳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아래다. 세 어린이들은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서 수행할 때 방해하는 마라의 다섯 딸을 지켜본다. 마라의 딸은 오만과 탐욕 두려움 등 인간의 욕망을 대변한다고 한다. 이 장면은 2500년 전의 수행과 유혹을 현재의 시간에서 어린이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의 중첩을 연출한다. 수행하는 싯다르타 앞에 큰 파도가 밀려오고 번개가 내리친다. ‘만다라’의 바닷가 수행 장면도 파도로 표현되는 번뇌를 이미지로 보여준다. 마음의 평정으로 싯다르타는 시험을 이겨내고 마군의 불화살 공격도 자비를 통해 꽃잎으로 변화시킨다. 그는 결국 정각(正覺)을 이룬다. 불화살에서 꽃잎으로 전환은 번뇌와 악을 자비의 힘으로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이미지를 통해 깨달음을 표현한다. 정각의 장면은 연못에서 자신의 분신이면서 그림자로 최후 유혹을 받지만 가르침으로 물리치고 완전한 자유에 이른다. 싯다르타의 온 몸에서 광채가 발산돼 세상으로 뻗어나가면서 모든 그림자와 번뇌와 고통이 빛에 의해 사라진다. 아이들은 현재의 시간에서 꽃잎을 바라본다. 마음의 환생과 시간의 순환이 꽃잎의 누빔점으로 봉합된다. 

아이들은 라마 도제의 환생 사실을 입증한다. 라마 노부는 세 아이를 라마 도제의 환생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을 마치고 라마 노부는 제시의 부친에게 라마 도제가 탁발할 때 사용한 발(鉢)을 제시에게 전해줄 것을 당부하고 제시의 부친에게는 자신의 시계를 전한다. 이는 선불교에서 의발(衣鉢)을 통해 법통을 전하는 의식으로 라마 노부는 제시에게 법통을 이어주겠다는 의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라마 노부는 결가부좌로 열반에 든다. 새로운 라마가 당도하고 예전의 라마는 떠난다. 도착과 떠남은 시간의 바퀴를 구르게 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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