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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김두량의 ‘삽살개’

기자명 손태호

역동성 포착해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수작

가장 친근한 반려동물…조선 때부터 주인공으로 그림에 등장
함께 수행하고 살아간 견공들 다양한 경전·설화서 볼 수 있어
개는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한 도반…이제는 학대받지 않기를

김두량 作 ‘삽살개’, 지본수묵담채, 35×45cm, 1743년, 개인소장.
김두량 作 ‘삽살개’, 지본수묵담채, 35×45cm, 1743년, 개인소장.

요즘 TV를 보면 반려동물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한두 개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여러 방송국에서 경쟁적으로 개나 고양이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을 많이 방영하고 있습니다. 주변을 봐도 동물병원이나 애견분양소 등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반려인 능력시험’도 있다고 하니 반려동물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가족이 분명합니다.

반려동물 중에서 가장 가까운 동물은 역시 개입니다. 인간이 개와 함께한 세월이 2만년이라 하니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보다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우리나라도 개 모습이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상당히 오래 되었습니다. 안악3호분에서는 대장간 앞에 개가 어슬렁거리고 있고 견우와 직녀 벽화로 유명한 덕흥리 고분에서는 은하수 앞에서 견우가 떠나보내는 직녀를 보호하듯이 옆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개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은 조선시대부터 시작됩니다. 조선 중기 이암(李巖, 1499~?), 후기에서는 김홍도, 김두량, 장승업 등의 개 그림이 유명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의 ‘삽살개’를 감상해 보려 합니다.

개는 금방이라도 누군가에서 달려 나가듯 앞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털이 복슬복슬하지만 얼굴에는 털이 적습니다. 컹컹 짖고 있는 듯 입을 벌리고 있으며 입 안에서 날카로운 이빨도 보입니다. 눈은 검은색으로 크게 뜨고 정면을 쏘아보고 있습니다. 털의 색은 검정색과 흰색이 섞인 얼룩이고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그려 사실성을 높였습니다. 네 발은 튼실하고 발톱은 날카로워 매우 용맹스러운 모습입니다. 꼬리는 털이 많고 둥글게 말아 올려 더욱 동세가 느껴집니다. 

다리의 모습으로 보면 달리는 동작은 아닙니다. 개는 달릴 때와 걸을 때 다리 모양이 다릅니다. 달릴 때는 앞의 두 발이 같이 앞으로 나가고 뒷발도 나란히 따라 갑니다. 걸을 때는 오른쪽 앞다리와 왼쪽 뒷다리, 왼쪽 앞다리와 오른쪽 뒷다리를 번갈아 앞으로 내미는데 바로 그림속의 모습이 보통 속도로 걷고 있는 모습입니다. 걷고 있다고 해도 화가는 개의 순간적 역동성을 포착하여 섬세한 필치로 멋지게 그렸습니다. 화가 김두량은 어린 시절 ‘자화상’으로 유명한 해남의 공재 윤두서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그때 윤두서의 섬세한 필치와 생동감을 잘 이어 받았습니다. 

이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삽살개’인데 제가 그동안 알고 있던 삽살개 모습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삽살개라고 하면 눈을 가릴 만큼 털이 길고 약간 귀여운 모습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그림은 털도 짧고 매서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개가 삽살개로 불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그림은 다른 화가 8명의 그림과 함께 ‘제가명품화첩(諸家名品畵帖)’에 장첩 되어있는데 후대 소장자가 김두량의 개 그림에 대해 “내가 방(尨) 그림 한 본을 구했더니 필세가 발랄하고 묘하다”고 기록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방은 바로 삽살개 방(尨)입니다. 삽살개는 신라시대에 티베트에서 온 긴 털을 가진 개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토종개로 변모했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에는 왕실과 귀족들만 기를 수 있는 신성한 개로 여겨졌는데 신라가 망하면서 경상도 지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삽살개가 우리나라에 정착되면서 털이 짧은 삽살개도 생겼고 그래서 털이 짧은 삽살개가 한국의 토종견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여 저의 의구심이 해결되었습니다. 최근 생명공학 연구자들이 털이 짧고 얼룩무늬의 삽살개를 복원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삽살개 있는 곳에 귀신도 얼씬 못한다’는 속담처럼 삽살개는 악귀를 쫓는 것으로 간주됐습니다. 이름 자체가 ‘없앤다’ ‘쫓는다’를 의미하는 ‘삽’과 귀신 혹은 액운을 의미하는 ‘살’의 합성어라는 점은 삽살개의 상징성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김두량은 이 그림을 그린 후 나름 만족스러웠는지 서화를 좋아했던 임금께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그림을 말없이 바라보던 영조는 붓을 들어 그림 위에다 화제를 적어놓았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네 임무거늘 / 어찌하여 낮에 또한 여기에 있느냐 / 계해(1743년, 영조19) 6월 초하루 다음날 김두량이 그림’

마치 그림 속 개에게 얘기하듯 화제를 적은 영조. 내용은 개에게 하는 말이지만 궁중화원 김두량에 대한 큰 격려이자 칭찬으로 궁중화원으로써는 이런 영광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조선의 르네상스 시기라 불리는 영·정조 시절의 낭만입니다. 

불교에서도 개는 여러 문헌에 등장합니다. ‘해인사 유진(留鎭) 팔만대장경 개간인유(開刊因由)’의 눈이 셋 달린 삼목대왕 이야기, ‘대방편불보은경’에는 성현을 헐뜯어 개로 태어났던 균제 사미의 이야기, ‘구잡비유경’에는 환생을 거듭한 끝에 아라한과를 얻은 개의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또 신라의 왕자였던 중국 구화산의 성자 김교각 스님이 중국으로 수행하러 갈 때 신라의 개(삽살개)도 따라갔고 항상 스님을 따라다니며 곁에서 시봉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알려진 설화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지위고하나 빈부에 상관없이 평등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가치차별의 현장을 목격합니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적 이유로 발생하는 인종차별도 적지 않습니다. 같은 인간에게도 이런 차별을 가하는데 다른 생명체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 학대받고 버려지는 개들이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개는 인간에게 가장 충성스런 동물이자 가까운 동물입니다. 인간의 환생이 그냥 설화에 불과하다해도 아끼고 함께 살아가야할 반려동물입니다. 

요즘은 많은 절에서 견공들이 도량을 지키고 스님들의 수행을 가까이서 지켜주고 있습니다. 늘 불경을 듣고 지내는 절집 견공들이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꼭 인간으로 태어나길 기원합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38호 / 2020년 5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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