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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20칙 운암남전(雲巖南泉)

“짐작이라면 내 머리에 뿔이 날 것”

남전에게 질문 받은 도오종지
후원을 나와 승당 들어가 버려
언설 넘어서는 진여 도리 보여
운암의 지고지순한 구도 다뤄

도오가 운암과 함께 남전을 방문하자, 남전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도오가 말했다. “종지(宗智)입니다.” “지혜[智]로도 이를 수 없는데 어째 종(宗)이라 했는가.” “그렇게 짐작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짐작으로 말했다면 내 머리에 뿔이 날 것이다.” 사흘 뒤에 도오가 운암과 함께 후원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남전이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보고 또 물었다. “종지두타여, 어제 내가 지혜로도 이를 수 없는데 어째 종이라 했는지를 물었을 때, 그대가 짐작으로 말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면 짐작으로 말하면 내 머리에 뿔이 날 것이라는 말에 걸맞은 행동은 무엇인가.” 그러자 도오는 후원을 나와 승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답의 마지막 대목에서 남전의 질문을 받고 도오종지(道吾宗智, 769~835)가 그 자리를 피한 이유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언설로 표현하지 못하는 진여실제의 도리를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다.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도 마치 이심전심이라도 보여주듯이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운암담성(雲岩曇晟, 782~841)만 홀로 어리벙벙하였다. 잠시 후에 운암이 물었다. ‘남전화상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도오가 말했다. ‘그런 정도는 그대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운암이 남전에게 찾아가 물었다. ‘도오종지 사형은 어째서 스님의 물음에 답변하지 않은 것입니까.’ 남전이 말했다. ‘이류중행(異類中行)이기 때문이다.’ ‘이류중행이 무엇입니까.’ ‘짐작으로 말하면 내 머리에 뿔이 날 것이라는 도오의 말이 곧 이류중행을 말한 것이라네.’ 운암이 이해하지 못하자, 남전이 말했다. ‘그대의 인연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그리고는 약산으로 돌려보내자, 약산이 운암에게 물었다. ‘어디를 다녀온 것인가.’ ‘남전에 다녀왔습니다.’ ‘남전의 가르침은 무엇이던가.’ 운암이 전후 상황을 아뢰자, 약산이 말했다. ‘그대는 그곳의 시절인연이 무엇인지 아는가.’ 운암이 답변하지 못하자, 약산이 껄껄 웃었다. 운암이 물었다. ‘이류중행이 무엇입니까.’ 약산이 말했다. ‘내가 오늘은 피곤하니 다시 찾아오너라.’ ‘제가 돌아온 것은 그 이유를 알고자 한 것입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어서 나가거라.’ 운암이 방장실 밖으로 나오자, 밖에 있던 도오는 운암이 아직 깨치지 못한 줄을 알고서 운암에게 말했다. ‘사제는 다시 가서 물어보는 것이 좋겠네.’ ‘헛수고일 것입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어느 날 운암이 약산에게 물었다. ‘도오사형은 어째서 밖으로 나가버린 것입니까.’ 약산이 말했다. ‘내가 오늘은 등이 좀 아프구나. 도오가 알고 있으니 그한테 가서 물어보라.’ 운암이 도오에게 묻자, 도오가 말했다. ‘내가 오늘은 머리가 아프니 약산스님에게 가서 물어보게.’ 훗날 운암은 입적에 즈음하여 편지를 보내자, 도오가 안타깝게 말했다. ‘운암은 아직도 모르고 있구나. 차라리 이유를 말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약산의 법을 계승하기에는 무난하구나.’

이 공안은 평생 동안 문제의식을 놓지 않은 운암의 지고지순한 구도의 행각을 다루고 있다. 운암의 주도면밀(周到綿密)한 자세는 이후에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조동종의 면밀한 선풍으로 계승되었다. 운암이 고심한 것은 진여의 실제는 지혜로도 이를 수 없으므로 짐작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체험을 중시하는 가풍의 모습이다. 머리에 뿔이 난다는 것은 지혜가 없이 살다가 죽으면 짐승으로 환생하는 것을 말한다. 짐승으로 환생하는 것은 중생의 윤회를 말한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도리어 중생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변역생사(變易生死)의 길을 선택한 보살행으로 이류중행을 의미한다. 사람의 부류가 아닌 짐승이라는 다른 부류로 뒤섞여 보살행을 한다는 의미이다. 운암은 일생을 구도의 생활로 일관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생에 다시 보살행을 계속하리라는 서원을 세웠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로도 성취하기 어려운 깨침의 실천을 자신의 삶에서 구현한 운암의 경계였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39호 / 2020년 5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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