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10.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 박사
  • 승인 2020.05.26 10:29
  • 호수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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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않는 진정한 평등의 눈을 떠라

무심코 판단하고 행동했던 것
고스란히 차별이란 점 알게 해
다양성 없는 보편성은 허상 뿐
부처님, 수많은 다양함 헤아려
‘선량한 차별주의자’

우리 모두는 선량하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차가 없더라도 빨간 불에서 기다리고, 인터넷에서 부당한 폭력을 당한 이의 기사를 보면 분개하는 댓글을 남기고 공유하며, 수입의 얼마라도 기부하고, TV의 인간 다큐멘터리를 보며 눈물짓는다. 악업을 짓지 않으려 경계하고 선업을 쌓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다른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하려 애쓴다. 그런 나를 누구도 “차별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저자는 우리를 정확히 지목해 “차별주의자”라고 부른다. 앞에 ‘선량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했지만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내 얘기는 아니겠지, 하며 읽어보지만 내 얘기 맞다. 읽는 내내 항변과 수긍이 들끓는다. 끝내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부처님의 법과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무심코, 은연중에, 습관적으로, 지레짐작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차별하는 일이었음을 목격한다.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결정장애”라고 부르던 일,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세요”라며 격려하던 일, 유창한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인 다 되었네요”라고 칭찬하던 일, 여자는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를 선택하라고 권하던 일, ‘흑형’은 춤을 잘 춘다고 부러워하던 일, 성소수자라고 핍박받는 이들에게 “왜 굳이 커밍아웃을 했을까? 그냥 살면 아무도 몰랐을텐데”라고 쯧쯧거렸던 일, 이 모든 게 사실은 차별이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에게 “좋게 좋게 말하면 서로 이해하기 좋잖아, 거부감 들게 왜 핏대를 세워”라고 타일렀던 일, 인종의 특징을 들어 우스개 소리를 하고 정색하고 항의하는 사람에게 “농담인데 다큐로 받네”라고 시시덕거렸던 일, 여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모든 사람의 평등”이 더 맞다고 주장했던 일 모두가 차별이었다. 이게 왜 차별인지 모르겠다면 저자의 설명에 귀 기울여보라. 풍부한 예와 당사자의 목소리로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조근 조근 들려준다.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다니. 골치 아프니 아예 아무 것도 구분하지 않는 방법을 제안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차별 자체가 불가능해지니까. 그러나 그것도 쉬운 방법은 아니다. 당장의 차별을 없애려는 시도는 ‘형식적 평등’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려면 ‘실질적 평등’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차이를 무시하면서 실질적 평등을 실현할 수는 없다. 직접적인 원인인 ‘인’의 작용을 억제한다고 복잡하게 이루어지는 ‘연’의 작용까지 통제할 수는 없으니, 이 세상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여실지견한 부처님처럼, 거듭 거듭 들여다볼 수밖에 없겠다. 

저자는 ‘다양성 없는 보편성은 허상이며 눈속임이 되기 쉽’다고 단언한다. 다양성을 모두 포함하는 보편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 현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찾아낸 진리가 모두 그러하듯이, 부처님의 말씀과 닮았다. ‘화엄경’은 수많은 부처님의 등장을 노래한다. 부처님이 전지전능하다면 한 분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오직 한분만으로도 전체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이름과 그토록 많은 모습이 필요할까? 어째서 대흥사에는 천불전이 있고 기림사에는 삼천불전이 있으며 남해 보리암에는 만불전이 있을까? 

부처님은 구체적인 삶의 모습 속에 드러나는 차이를 소홀히 넘기시지 않는다. 수많은 다양함을 일일이 헤아리신다.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개개의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부처님이 있다. 불교가 삶의 종교인 이유는, 보편성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차이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러한 눈이 필요하다. 차별하지 않기 위해서.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 책은 그러한 ‘눈’을 뜨게 돕는 현명한 선생님이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39호 / 2020년 5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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