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덕행 ⑤
11. 덕행 ⑤
  • 박희택
  • 승인 2020.05.26 10:32
  • 호수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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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삼덕론 특징은 “방편이 곧 구경”

밀교에 이르러서는 방편을
구경 경지로까지 끌어올려
구경적 성취로 열반 이르면
항상‧안락‧자재‧해탈성 갖춰

불교의 삼덕론은 후기대승불교인 밀교에 이르며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삼덕론으로 표현된다. 대일여래는 진리본체인 법신 비로자나불을 지칭한다. 당나라 시대에 중국에 온 인도의 밀교고승 선무외의 중국인 제자 일행은 스승의 ‘대일경’ 강론을 정리하고 해설을 덧붙인 ‘대일경소’를 찬술하였는데, 그 제1권에서 제암변명(除暗遍明)과 능성중무(能成衆務)와 광무생멸(光無生滅)의 삼덕론을 개진하고 있다.

태양이 떠오르면 모든 어둠을 없애고 광명을 두루 비추듯이 대일여래는 밝디밝은 지혜의 덕성을 보이며, 태양은 광합성의 작용으로 식물을 살리고 나아가 동물을 살리는 일을 능히 하듯이 대일여래는 뭇생명을 살리는 대비의 덕성을 보이고, 태양의 빛이 생멸이 없이 영원하듯이 대일여래는 지혜와 대비를 구현하기 위해 다함없는 용기의 덕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선무외는 비로자나불의 덕성이 태양[日]보다 더 위대하다고 하여 앞에 ‘대(大)’를 붙여 대일여래라 번역하였다. 그러니까 대일여래의 ‘대’는 대-소의 상대적 ‘대’가 아니라 대-소를 넘어서는 절대적 ‘대’가 된다. 태양의 제암변명은 밤낮의 구별이 있으나 대일여래의 지혜는 이를 넘어서며, 태양의 능성중무는 동식물에 국한되나 대일여래의 대비는 이를 넘어서고, 태양의 광무생멸은 구름에 가려지지만 대일여래의 용기는 이를 넘어선다는 관점이다.

지덕인 제암변명, 비덕인 능성중무, 용덕인 광무생멸은 ‘대일경’ 제1품인 주심품(住心品)에 나오는 삼구사상(三句思想)과 연결된다. 삼구사상은 실답게 자신의 마음을 아는(如實知自心)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원인과 근본과 구경이 무엇인지 보살이 여쭙자, 세존께서 “보리심이 원인이 되고, 대비가 근본이 되며, 방편이 구경이 된다(菩提心爲因, 悲爲根本, 方便爲究竟)”고 답하신 세 구절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이 삼구에서 보리심위인을 제암변명으로, 비위근본을 능성중무로, 구경위방편을 광무생멸로 해설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여실하게 아는 여실지자심을 일체지지로 본다는 점에서, 보리심과 대비와 방편을 일체지지의 분화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보리심뿐만 아니라 대비와 방편도 대비심과 방편심으로 보아야 하며, 주심품에서도 세 가지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밀교의 교주 대일여래의 삼덕은 수행자 자신의 삼심(三心)의 덕성인 것이다. 이 점이 밀교 삼덕론의 특징이다. 대일여래의 지덕은 제암변명으로서 보리심의 덕성이며, 비덕은 능성중무로서 대비심의 덕성이며, 용덕은 광무생멸로서 방편심의 덕성이 된다.

또 하나 주목할 밀교 삼덕론의 특징적 성격은 ‘방편이 구경이다’는 구절에 있다. 방편은 칠유(七喩)를 비롯한 설득력 높은 비유를 통해 ‘법화경’에서 가치를 드러낸 바 있는데, 밀교에 이르러서는 방편을 구경으로까지 보아 철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구경적 성취는 방편에 의지한다는 것이며, 그렇기에 구경이 되는 방편을 본덕(本德)으로까지 볼 수 있다. 이 점은 이전에 다룬 불과삼덕에서 법신 및 법보와 상응하는 용덕을 근본덕으로 본 것과 적극 부합된다고 하겠다.

구경적 성취를 밀교에서는 이 몸 그대로 성불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 하고, 현교에서는 성불(깨달음) 내지 열반이라 한다. 여기서는 열반사덕을 통해 구경적 성취의 덕행적 의미를 헤아려 보기로 한다. 열반사덕은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표현되곤 한다. 열반의 상덕(常德)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항상성을, 낙덕(樂德)은 고(苦)를 여읜 안락성을 의미한다. 아덕(我德)은 나를 넘어선 자재성을, 정덕(淨德)은 번뇌를 벗어난 해탈성을 의미한다.

구경적 성취로 열반에 이르면 우리는 항상성과 안락성, 자재성과 해탈성의 사덕을 갖추게 된다. 이를 수행자의 실천적 자세로 이해하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항상성과 안락성, 자재성과 해탈성의 사덕을 수행하고 실천해 나가면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안목을 얻게 된다. 열반사덕을 찬탄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열반사덕의 덕행으로 살아간다면 열반에 이를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인식하여야 수행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39호 / 2020년 5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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