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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사] “비대면의 시대, 인간 체취 잊지 맙시다”

  • 기고
  • 입력 2020.05.30 16:44
  • 수정 2020.06.08 12:53
  • 호수 1540
  • 댓글 0

코로나19로 일상의 온기 빼앗겨
사랑‧우정 등 고귀한 가치의 위기
누렸던 일상의 삶 돌아보는 계기

올해는 어느 해보다 스산한 분위기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했습니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이는 일이 모두에게 죄스런 일이 돼버렸습니다. 매년 서울 도심을 연등으로 가득 메웠던 가슴 뜨거웠던 축제, 연등회도 취소한 채 조촐한 법요식만을 갖게 됐습니다. 그것도 한 달이나 연기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삶이 당분간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오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백신이 나오거나 확실한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소독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띄우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2년 정도는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에 따른 갑작스런 삶의 변화가 무척이나 두렵고 당혹스럽습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전쟁이 이러했을까요? 스스로 최선을 다해도 타인에 의해 불행히도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다는 불안과 공포는 잔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람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떠올리게 합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경제적인 손실과 정신적인 무력감,  공포 등은 그래도 참을 수 있습니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일상에서 사람의 온기가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일 겁니다. 

코로나19시대의 트렌드는 비대면(非對面)입니다. 얼굴을 마주 보고 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언텍트(Untact)시대라고도 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4차 산업시대가 되면 비대면사회로서의 전환이 필연적이라는 전망들은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에 밀려 우리는 준비도 없이 비대면의 세상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비대면도 장점은 있습니다. 신속하고 정확하고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벌어지는 심적인 부담이나 감정싸움도 없습니다. 대면사회에 비해 업무효율성도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비대면은 단순히 일과 업무를 넘어 우리의 일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전염 우려에 따른 타인에 대한 불신, 이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은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데 있어 고귀한 사랑, 우정, 연대, 협력 등 아름다운 가치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맞잡은 손의 따스함, 어깨동무의 든든함. 함께 하는 식사자리에서 피어나는 훈훈함. 이런 것들을 우리 삶속에서 점차 밀어내고 있습니다. 미래에 이런 것이 남아있다고 해도 그것은 눈, 귀, 코, 혀, 촉각과 같은 오감이 아닌 화면을 통해 시각으로만 경험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사람의 역할이란 그저 파편처럼 홀로 흩어져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단순 소비자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불자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스름 새벽아침 쌉쌀한 공기를 마시며 드리는 아침예불의 감동을, 도반들과 함께 읽는 경전의 울림을, 곁에서 끊임없이 경책하는 스승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던 수행의 여정을 비대면의 시대에는 결코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 재세 당시 많은 이들이 어렵지 않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을 직접 친견했을 때 느꼈을 맑고 깨끗한 기운과 자비로운 음성과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빛과 놀라운 위신력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런 경험은 경전 속 글귀로는 결코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비대면의 시대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됐습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결코 서로 손을 맞잡는 인간의 체취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은 방문을 닫고 홀로 격리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대하고 합심하고 힘을 모아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창문 앞 길거리를 보며 무미건조하게 홀로 먹는 밥보다는 여럿이 모여 나눠먹는 음식이 더욱 맛깔스럽고 나아가 함께 앉는 그 자체로 밥맛을 넘어선 행복과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시련이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 이제껏 일상에서 누렸던 삶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kimh@beopbo.com

 

[1540호 / 2020년 6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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