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형문화재 지정에서 놓치는 것들
유‧무형문화재 지정에서 놓치는 것들
  • 이병두
  • 승인 2020.05.30 17:43
  • 호수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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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무당이라고 부르는 무속인들은 일제강점기 이래 권력의 탄압을 받았다. 개신교 장로였던 이승만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5‧16군사 쿠데타 이후 들어선 박정희 정권의 탄압은 더욱 거칠어져서 생존 자체가 힘들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몸부림으로 정부의 반공 이념 굳히기에 편승해 ‘대한승공경신연합회’를 조직하여 정부의 인정을 받으려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단체에 대한 법인 등록 허가는 1997년에서야 이루어졌고 그것도 ‘종교단체’가 아니라 ‘일반사회단체’에 머물고 말았다. 결국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무속인들이 선택한 또 다른 길은 ‘자랑스러운 민족문화유산’의 일부분으로 내세우는 ‘민족화 전략’에 의존하여, 중앙 정부와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하여 관리‧지원하는 무형문화재로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굿 등 여러 무속의례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지만, “무(巫)를 종교라기보다는 전통문화의 한 갈래로 이해시켜주는 폐단”을 낳고 말았다. 민속학자 양종승은 “무속의례가 문화재보호정책 하에서 중요무형문화재 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됨으로써 인위적 가공을 통해 이루어지는 박제화‧정형화‧공연화‧예술화‧상품화로 변이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개탄했다.

결국 무속의례는 각종 ‘공연’과 ‘지역 축제’를 통해 문화상품과 관광상품으로 판매되면서 ‘종교의 문화화(문화재화)’, 나아가 ‘종교의 탈종교화‧비종교화’ 효과가 뚜렷해졌다. ‘어떻게든 종교로 인정받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힘들게 찾아낸 생존 전략이 오히려 스스로를 ‘축제와 관광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왜 이 문제를 거론할까. 이것이 ‘다른 집안의 문제’라며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연등회‧수륙재를 비롯해 불교의례와 무형자산을 중요무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국가와 지자체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고 새로 지정을 추진하는 종목도 몇 가지가 있지만, 일단 문화재로 지정되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뿐 아니라 담당 관청의 -관리라고 하지만- 간섭을 받아야 하고 박제화(剝製化) 되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때에는 무속인들의 사례에서와 같이 ‘불교’라는 종교성이 얇아지거나 사라지고 문화재 상품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상‧탑 등 유형문화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계 언론에서 가끔 ‘○○사 ○○불상‧석탑 보물‧국보 승격’ 등등의 제목을 달고 대서특필한 기사를 만나게 될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국보와 보물 등으로 지정하는 것은 불상과 탑‧경판 등의 종교성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문화재 관리를 수월하게 하려는 행정 절차이고 따라서 국보와 보물로 지정받은 불상과 경판이 그렇지 않은 불상과 경판보다 더 높은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 불교계 스스로 이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티베트 불교의 위대한 스승 쫑카파의 저술로 우리에게는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으로 잘 알려진 ‘람림’의 한 구절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황금으로 조성한 불상이나 은으로 조성한 불상은 높은 곳에 모시고 진흙으로 빚은 불상을 아래에 모신다면 이는 불상을 재산으로 여기는 것일 뿐이다. 탱화도 오래되고 오래되지 않은 것을 순서대로 하여 모시는 것 역시 재산으로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불교문화 및 문화재의 국가지정은 공공적 가치를 보존‧유지‧계승하는 최소한의 차원에서 시행되어야 하고, 불교문화나 문화재는 국가나 타인이 인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끼고 사랑‧존중‧예경(禮敬)해야만 가치가 있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40호 / 2020년 6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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