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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법과 재건의 역사 불사] 3. 현대불사의 주역-금곡 스님

“꽃잎 하나 내려앉듯 자연과 조화되고 전통 스며야 아름다운 불사”

봉정암·낙산사·흥천사 중창·복원하며 전통·현대 조화 구현
‘지역민 함께하는 도량’ 실천으로 불사의 개념 새롭게 정립
“사찰은 수행처인 동시에 불교 역사·문화가 탄생하는 공간”

‘설악산 봉정암에서 못 다 이룬 기도발원, 이곳 낙산사·홍련암에서 더 큰 원력으로 정진하리니 부처님의 크신 가피 더욱 큰 채찍으로 관세음보살님의 자비 드리울 수 있도록 모든 불자님 지켜 봐 주시고…’

2005년 3월20일, 양양 낙산사 주지 소임을 맡은 금곡 스님은 발원했다. 하지만 불과 보름 후 “아침에 눈을 뜨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라는” 참담함을 마주해야 했다. 4월5일, 걷잡을 수 없는 화마가 강원도 양양 일대를 휩쓸었다. 사투 끝에 화재를 진압한 금곡 스님은 얼굴에 묻은 잿가루를 닦아낼 새도 없이 국민들에게 고개 숙이며 참회와 발원으로 호소했다. 

‘참회의 업보는 제가 짊어져야 할 짐이기에 허물과 책임을 논하기보다 낙산사 복원을 위해 기도하고 발원하겠습니다.’ 

그런 금곡 스님의 어깨를 다독여준 분은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스님이었다. 

“주민들을, 이웃들을 먼저 살펴라. 그분들이 부처님이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1400여년 역사를 이어온 낙산사였다. 이번에도 도량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하지만 그 도량을 가꾸고 지켜줄 주인은 주민들이었다. 화재로 생업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진 양양군민들을 살피는 것으로 복원불사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3000여일, 낙산사는 사라질 것 같지 않던 화재의 상흔을 씻어내고 천년역사를 계승한 모습으로 다시 섰다. 무엇보다 양양군민들과 국민들의 마음속에 함께 지키고 가꿔야할 문화유산으로 뿌리내렸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낙산사는 완전히 새로운 도량인 동시에 1400년 역사의 고찰이었다. 홍예문 왼편에 있던 종무소는 과감히 철거하고 원통보전을 중심으로 한 기도와 수행 공간을 조선중기의 모습 으로 복원했다. 동시에 스님과 불자, 방문객들을 위한 공간이 홍예문 오른쪽에 새로 들어섰다.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편리의 조화, 낙산사 복원은 두 가지 화두를 동시에 풀어나가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화재 피해를 입지 않은 종무소 건물 철거에 반대의견이 많았습니다. 가뜩이나 공간이 부족한데 굳이 철거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었죠. 하지만 낙산사의 원형 복원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불사는 도량에 담긴 세월을 계승하고 그 속에서 맺어진 인연과 원력을 이어가는 과정입니다. 필요에 따라 옛 것을 치우고 편리를 좇아 무분별하게 새것을 만들어낸다면 역사를 계승할 수도, 문화를 창조할 수도 없습니다.”

편리와 효율성만 추구하는 불사를 경계하고 원형 계승을 강조하는 금곡 스님의 신념은 낙산사에 앞서 주지 소임을 맡았던 봉정암서 싹을 띄우기 시작했다. 2003년 태풍의 상흔 고스란히 남아있던 봉점암 주지에 임명됐다. 

“해마다 거듭되는 재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답이 있었습니다. 봉정암과 불뇌사리보탑이 1500여년 이어왔다는 것은 그 주변의 자연환경이 재해를 막아주는 최상의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재해는 그 자연이 훼손된 결과였습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의 원형을 계승하는 것이 가장 과학적인 불사인 셈이었죠.”

수해로 망가진 계곡을 정비해 자연의 물길을 복원했다. 본래 있던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본래 없던 것을 거둬냈다. 특히 불뇌사리보탑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탑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대리석을 철거했다. 대리석은 봉정암 축대 속재료로 재활용했다. 축대 표면에는 설악산 바위의 색과 암질이 가장 흡사한 경북 상주의 돌을 사용했다. 헬기를 3000번이나 띄워 석재를 실어 날라야 했다. 주변 돌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사서 한 고생’이었다. 

“바람 한 줌, 시선 한 줄기 막지 않아야 가장 아름다운 불사죠. 지금 있는 나무와 길, 돌은 수많은 세월 쌓인 인연과 연기의 결과물입니다. 어떤 장엄도 이보다 더 완벽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불사는 세월과 사람을 올곧게 담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2005년 4월5일 소실된 낙산사(첫번째 사진)는 3000여일의 중창불사를 거쳐 조선중기의 모습(가운데 사진)으로 복원됐다. 서울 흥천사도 복원된 대방과 새로 건립된 전법회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br>
2005년 4월5일 소실된 낙산사(첫번째 사진)는 3000여일의 중창불사를 거쳐 조선중기의 모습(가운데 사진)으로 복원됐다. 서울 흥천사도 복원된 대방과 새로 건립된 전법회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사에 대한 금곡 스님의 확고한 신념과 원력은 2011년 서울 흥천사 주지 소임을 맡으며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근현대 조계종 정화의 풍파 속에서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흥천사 중창의 막중한 소임이었다.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흥천사지만 수십년 세월 종단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무허가 건물이 난립했고 주민들 마음에서도 멀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복잡한 권리관계와 보상문제는 풀 수 없는 실타래 같았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격려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사찰 땅을 단 한 평도 매각해서는 안된다”는 설악무산 스님의 뜻이 이번에도 기준이 되어주었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보상금을 지급하며 토지 매각 없이 흥천사를 정상화시켰다. 꼬박 10년, 왕실사찰 흥천사의 명성을 회복하고 강북 대표 포교도량을 세우겠다는 원력으로 중창불사를 이어갔다. 화두는 또 다시 전통의 계승과 현대의 조화였다. 화두는 풀렸을까. 2020년 흥천사의 모습은 봉정암과 낙산사를 거쳐 이어진 정진의 결실이다. 

금곡 스님은 2013년 주변 폐가를 정리하고 ‘삼각선원’을 건립, 수행도량으로 일신시키며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예고했다. 2016년 중심 전각인 대방과 극락보전을 전면 해체복원해 옛 모습을 복원하고 한옥식 ‘느티나무 어린이집’을 개원해 주민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확충해갔다. 그리고 3년여의 공사 끝에 올해 전법회관을 건립해 기도와 수행, 복지와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문을 연다. 연건평 940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인 전법회관은 신도들의 편의에 초점을 맞췄다. 그 사이 매년 노인잔치, 나눔행사를 적극 진행하며 주민들 마음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으로 각인됐다. 역사를 계승하고 현대를 수용한 사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도량, 그리고 지역민들과 하나되는 공간이라는 불사 원칙이 흥천사서 꽃을 피웠다. 

“스님과 불자들만을 위해 도량을 넓히고 가꾸는 불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한마디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다. 사찰은 그 자체로 불교 역사이자 문화의 토대라고 금곡 스님은 강조한다. 단순한 거주처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지적이다. 그렇기에 전통사찰이 보존될 때 그  공간에서 파생되는 삶의 모습도 올바르게 이어질 수 있다. 조금 불편하고 효율성이나 편리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출가자로서 기꺼이 감수해야 할 불편”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다. 동시에 포교와 문화 공간은 새롭게 확장해 나가는 것이 불사를 진행하는 스님들이 고민할 과제라고 지목한다. 

“고목에서 핀 꽃 한송이가 땅에 내려앉은 듯, 새로 지은 전각도 본래의 것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문화시설, 포교공간, 공양간, 화장실도 있어야지요. 그렇다고 해서 옛 것을 함부로 훼손하지 마세요. 뿌리가 잘려버린 나무는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나무가 새 가지를 뻗어 더 넓은 그늘을 만들 듯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옛 것을 지키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불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는 더 크고 단단한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봉정암 중창 5년, 낙산사 복원 8년 그리고 또 다시 흥천사 중창 10년. 그렇게 금곡 스님의 청춘은 지나갔지만 스님이 복원하고 중창한 사찰들은 전통의 계승자인 동시에 21세기 불교의 산실로 또 다시 천년의 세월을 이어갈 것이다. 그 속에서 불교의 역사와 문화는 계속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금곡 스님은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구족계를 수지했다. 2003년 인제 봉정암 주지로 임명돼 중창불사를 이끈데 이어  2005년에는 양양 낙산사 주지 소임을 맡아 화제로 소실된 낙산사를 7년 7개월 간의 복원불사로 다시 일으켜 세웠다. 2011년 낙산사 원형 복원 공로를 인정받아 조계종 종정 표창을 받았다. 서울 흥천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현재 조계종총무원 총무부장, 무산복지재단 대표이사, 순천 선암사 주지, 양양 낙산사 주지, 서울 흥천사 불사도감 소임을 맡고있다. 

 

[1540호 / 2020년 6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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