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수기 당선작] 어머니 덕분에 불법 만나 참회 기도하며 새로운 삶 희망
[신행수기 당선작] 어머니 덕분에 불법 만나 참회 기도하며 새로운 삶 희망
  • 법보
  • 승인 2020.05.31 16:16
  • 호수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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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교화전법단장상-박○호

무기형 받은 내게 ‘참회란 화두 들고 살라’ 하신 그분
어머니 위해 부처님 품안에서 잠들고 깨어나길 발원
매일 능엄신주독송‧108배하며 수행자 마음으로 정진
그림=육순호

새벽녘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 나는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겨울나무처럼 살아가리라. 다 벗어버리고도 꼿꼿한 자세, 다 비우고도 꽉 찬 기운으로 끈기와 기다림으로 시절인연이 오면 본래의 모습을 피워내는 것은 잠시도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음이리라.

나는 교정기관에서 무기수란 신분으로 이름 대신 수번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지금은 오랜 꿈이던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 못다 한 배움의 길을 가고 있으며, 열심히 모범수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생활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다. 모든 것이 나로 인한 것임을 자각하지 못했던 나는 죽어버린 삶을 살고 있었다.

오고감이 무의미한 삶이었고, 희망이라는 단어가 그저 행복에 겨운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며, 꺼져버린 연탄과도 같은 내게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희망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파는 것도 아니며, 길어다 쓸 수도 없는, 달콤한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은 고문과도 같은 것이며, 무얼 위해서 희망을 가져야 하고 무얼 기다리며 기대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 이성에 한줄기 빛이 내리쬐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존재였다.

10년 전 항소심 선고 날 나는 무기형을 언도받았다. 눈물이 흘렀다. 억울함이 아니라 나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깨달아 흐르는 눈물이었다. 

그날 차마 아들의 재판에 참석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화상접견에서 화면 너머에서 울고 있는 나를 아무 말씀 없이 꼭 안아주셨다. 어머니의 두 뺨 위에 흐르는 눈물은 나의 죄를 씻어주기 위한 참회의 눈물이었음이 지금에서야 짐작된다. 다함없는 보살님과도 같은 크나크신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비록 화면 너머였지만, 그 따스함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가 어릴 적에도 잘못을 저질러 아버지께 회초리를 맞고서 울다 지쳐 잠이 들면 슬며시 약을 발라주시고 꼭 안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의 존재는 나에게 따스함과 치유의 화신이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께서는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기도를 하신다. 108배를 비롯해서 불경 독경을 하루 일과로 삼고 계신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아들아, 너는 지금의 내가 새로 낳은 늦둥이란다. 지금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참회라는 화두를 들고서 하루를 살았으면 한다.”

‘아…, 이 못난 아들로 인해서 어머니께서는 또 한 번 산고의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을 짊어지셨구나’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그날, 나를 위해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서 부처님의 품안에서 잠들고 깨어나기를 발원했다. 과연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지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을까? 참회라는 화두를 들고서 무던히도 많은 노력을 했다.

치열하게 사는 거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동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진심으로 참회하고 새로 배워나가는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행을 할 수 있을 때 진정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필요한 꽃들이 간절하듯이 내게도 나를 찾을 수 있는 기도가 필요했다.

처음 ‘반야심경’ 염송으로 불교에 다가섰다. 불교집회 및 교리행사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그곳에서 뵙게 된 인행 스님께서는 팔만대장경 중에서도 ‘금강경’을 으뜸으로 치며, 그 ‘금강경’의 핵심 정수가 바로 ‘반야심경’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잘 읽혀지지도 않았고, 외우기도 무척 힘이 들었지만 읽고, 쓰고, 외우며, 누가 툭 건들면 자동으로 ‘반야심경’이 나오도록 하고 또 했다. 불법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지난 세월 항상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탐·진·치, 삼독심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을 살면서 모든 존재는 무상하고, 무아라는 진리에 무지한 상태에서 마음은 욕탐에 결박되고 분노에 빠져든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나에게 불법은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나는 불교에 관련된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다. 기초교리부터 ‘금강경’과 ‘화엄경’을 읽고 또 읽고, 부처님 가르침에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더니,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던 단어와 내용들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더 나아가 가슴속에 빛이 되어 꽃이 피기 시작했다. 환희심에 불타오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바뀌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화를 잘 내고 잘 어울리지 않는 나를 멀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혼자였다. 하지만 불교를 알고 부처님을 알게 된 지금은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고, 잘 웃고, 불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주위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얼마나 큰 변화인가 스스로 놀랍고 대견할 따름이다.

나는 불법공부와 더불어 기관에서 서예를 배우고 있다. 서예를 시작하면서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말씀을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표현도 해보고, 그려도 보고, 더욱 더 가슴 깊이 새기게 되는 기회도 되었다. 붓을 잡고 새하얀 화선지에 부처님 말씀을 새겨 나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집중할 때가 있다.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주임님께서 향기가 나는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부처님 말씀을 새기면서 삼매에 빠진 모습을 보고 힘을 북돋아주신 것 같다.

매년 교정 작품을 출품하면서 첫 작품으로 쓴 글귀가 생각이 난다. 칠불통계인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말씀이다. 수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선승들은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 그 많은 귀한 설법을 큰 가마솥에 넣고, 푹 삶고 다려 남은 글귀가 딱 하나라면 무엇일까? 바로 ‘심(心)’이라고 한다.

지나간 어제의 모든 것들을 후회한들 무엇하리. 있지도 않은 내일을 바라고 기다린들 지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한순간 우리의 마음자리가 어떤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떤지, 알아차릴 수 있으려면 마음을 살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난 그렇게 어둠 속에서 밝은 빛으로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방송대 생활은 지금의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행복하다. 처음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인한 부담감 때문에 스스로를 옥죄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힘을 주시는 어머니의 말씀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고, 노력한 만큼 결과는 따르는 법이란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은 늦게 시작한 공부가 또 다른 삶의 도전이라고 생각하니 즐겁고 활기가 넘친다.

나의 일상은 하루 새벽기도로 시작된다. 능엄신주 독송을 시작으로 108배, 잠들기 전 ‘금강경’ 독송까지 주위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힘이 들고 지칠 때도 있다. 새벽에 눈뜨기가 힘들어 기상시간까지 잠들어버린 적도 여러 날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와 함께 기도로 하루를 여는 어머니께서 나를 이끌어주신다. 매주 화상접견 때마다 ‘금강경’을 화제로 대화하며, 도반으로서의 삶을 함께하고 있다. 기도의 원력은 대단한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희망의 빛을 새겨주었다. 어둠이 깊을수록 간절한 빛처럼 부처님의 광명이 내게 비추어지는 것 같다. 하루가 채워지고 비워질 때마다 난 새롭게 태어난다. 오늘이 금생에 마지막인 것처럼 살고 싶다. 업보를 녹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며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것이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또 다시 실패는 없다. 죽을 각오로 하루를 대하는데 어찌 실패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인생길에 홀로 선 겨울나무처럼 버텨내리라.

내 마음 밭에 봄비 오는 날 꽃은 피리라. 새벽에 일어나 맞이하는 하루는 맑아서 좋다. 흐리면 더 좋고, 비오면 더 좋다고 생각하며 다듬어진 길을 가는 것은 수월하지만, 없는 길을 만들어 가다보면 힘들어도 보람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겠습니다. 선행의 길을 가겠습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부모님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제가 쌓는 자그마한 공덕이라도 온 우주에 회향되어지길 발원합니다.’

새벽 기도는 늘 새롭다. 무한한 힘의 원천, 변화하는 자연 속으로 오감을 열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리와 빛의 형상을 만난다. 쪽빛 옷 위 얼룩진 백팔배의 굵은 땀방울,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간절함은 부처님 품 안에서 느껴지는 평온의 세계, 더 이상의 걸림돌은 없다.

모두가 나를 위한 디딤돌인 것을 안다. 참회하는 삶을 살 것이다.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을 때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날까지 힘들어도 갈 것이다. 시절인연이라는 희망을 안고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꿋꿋하게 정진해 나갈 것이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다.

 

[1540호 / 2020년 6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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