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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림 흥륜사 선원장 보주당 혜해 선사 영결·다비식

  • 교계
  • 입력 2020.06.03 15:27
  • 수정 2020.06.04 17:38
  • 호수 1541
  • 댓글 0

6월2일, 경주 흥륜사서 봉행
게으름 경계…검소·천진한 삶
후학들은 ‘생불’ 칭하며 존경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법어
혜국·본각 스님 등 동참 추모

사진제공=흥륜사

“수좌의 마지막 병은 ‘게으름’이다.”

신라 이차돈 성사의 순교지 흥륜사에 비구니 선방을 조성하고 오롯히 40여 년 죽비를 들어 수좌의 방일함을 경책해 온 선사,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에서 출가한 인연으로 신계사 복원 불사에 앞장서며 평화 통일을 염원한 지극한 신심의 수행자, 하심과 근검을 몸소 실천하며 스스로는 ‘무위돌’이라고 했지만, 후학들에게는 ‘생불(生佛)’로 불린 한국불교 비구니 승단의 정신적 스승, 보주당 혜해 선사가 100수의 세연을 훌훌 털어내고 지수화풍으로 돌아갔다.

사진제공=흥륜사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 보주당 혜해선사 법기 문도장 장의위원회(위원장 법희 스님)는 6월2일 경북 경주 천경림 흥륜사에서 ‘조계종 비구니 보주당 혜해 선사 법기 문도장 영결식 및 다비식’을 봉행했다. 청명한 날씨 속에서 봉행된 영결식은 관우 스님의 사회, 일엽 스님의 집전으로 봉행됐다. 명종 5추로 시작된 의식은 개회, 삼귀의, 반야심경, 통도사 염불원장 영산 스님의 영결 법요로 이어졌다. 이후 헌다 및 헌향, 행장소개, 추모 입정, 육성녹음이 전개됐고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의 영결사,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의 추모사,
주낙영 경주시장, 전 석남사 주지 도수 스님, 원만행 원정차다례원장의 조사, 인드라 스님의 조가, 헌화, 조전 소개와 문도 인사말, 사홍서원 등으로 마무리됐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법어에서 “보주당 혜해 선사께서 일백선상의 사바 인연이 다하여 사다리를 거두고 원적에 드셨다”며 “출가 이래 일평생 대오 견성을 위해 선방이든 일상생활이든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위법망구의 정진으로 일관하신 삶 그대로 법계의 도리를 잘 받아 가져서 열반의 대 안락을 누리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혜국 스님은 영결사에서 “한평생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하시질 않고 수행의 길이 아니면 걷지 않으셨던, 이 시대 중노릇이 어떤 것인가 몸소 직접 삶으로 보여주신 스님은 언제 보아도 해 맑은 동안의 모습으로 올곧은 수행자의 거울이셨다”며 “하심이 몸에 밴 스님의 가풍과 금강산 신계사 복원 불사에 동참하실 때 어린이처럼 기뻐하시던 그런 모습 그대로 다시 오셔서 조계선맥을 중흥하는데 동참해주시기 바란다”고 스님의 생전을 회상했다.

본각 스님은 추모사에서 “때로는 방광을 나투시어 내면의 힘을 보이시고, 때로는 해 맑은 미소로 청정심을 드러내 보이신 스님은 부처님 법 만난 것을 항상 다행으로 여기셨고 초지일관 정진의 고삐를 놓치 않으셨으며 후학들에게는 늘 자비로운 미소로 화답하시면서 수행의 정도를 깨우쳐 주신 큰 스승”이라며 “100년을 하루같이 생명 다하시는 날까지 수행자의 기상을 잃지 않으셨던 그 청산으로 백운으로 그 자리에 머무시어 저희 후학을 경책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염원했다.

사진제공=흥륜사

주낙영 경주시장도 조사에서 “흥륜사에 40여 년 주석하시면서 천경림 선원을 개원하신 이래 늘 수좌들이 모여 정진할 수 있도록 죽비를 놓지 않으셨던 스님께서는 법복이 떨어져 깁고 기워 더 바느질할 수 없을 때까지 입으시며 근검절약의 소중함을 묵묵히 실천하신 분으로 알려져 있다”며 “자비와 지혜로 이 흥륜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신 업적을 추모하며 두 손 모아 스님의 서방정토 왕생을 기원드린다”고 애도했다.

사진제공=흥륜사

영결식에 이어진 다비식은 흥륜사 경내에 조성된 연화대에서 봉행됐다. 스님의 법구는 인로왕번, 명정, 삼실불번, 오방불번, 십이불호번, 무상계와 만장, 향로, 위패와 영정, 법주가 앞장서고 문도 스님들과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스님, 신도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연화대로 이운됐다. 이어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붉은 꽃과 잿빛 연기 속에서 천년의 고도 경주의 허공 속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날 다비식이 봉행되는 동안 흥륜사 허공에는 선명한 해무리가 한참 동안 이어진 뒤 사라졌다. 이밖에도 법석에서 배포된 안내 책자에는 혜해 스님의 가르침을 글로 옮기고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도 실어 스님들을 향한 그리움을 녹여냈다.

사진제공=흥륜사

혜해 스님은 1921년 4월27일 평안북도 정주군 안홍면에서 1남3녀 중 삼녀로 태어났다. 24세가 되던 1944년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에서 대원 스님을 은사로 행자 생활을 시작해 6개월 후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금강산 유점사에서 정진하던 중 해방을 맞이했다. 당시 스님은 정치·사회적으로 금강산에서는 더 수행하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1946년 10월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왔다. 이후 무불 스님을 계사로 오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특히 금강산 시절부터 참선 수행에 매진했던 스님은 28세가 되던 해 해인사에서 효봉 큰스님의 지도로 용맹정진을 시작해 성철, 청담, 향곡 큰스님의 결사에 잇따라 동참하며 정진을 거듭했다. 한국전쟁으로 부산 기장 묘관음사에 내려온 스님은 향곡 큰스님으로부터 새롭게 화두를 받아 묵언과 장좌불와로 용맹정진을 이어갔다.

사진제공=흥륜사

무엇보다 스님은 신라 고도의 땅 경주 흥륜사에 비구니 스님들의 선원 ‘천경림’을 설립해 비구니 스님들을 위한 수행림 조성에 앞장섰다. 1980년대부터는 천경림 선원의 선원장을 맡아 여름과 겨울 안거 때마다 20여 수행자들의 방부를 받고 정진 대중의 외호에 힘을 기울였다. 후학들에 따르면, 스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죽비를 잡았으며 정진 대중으로부터 ‘생불(生佛)’로 불릴 만큼 수행자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다. 흥륜사가 복원된 지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선방에서 좌선 중이던 혜해 스님의 몸에서 큰 불꽃이 발하는 듯한 빛이 발생한 일, 내원사 결제 당시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오직 화두 하나만 깨끗하게 들리고 몸이 하늘을 날 것처럼 가볍고 맑은 경계를 3년 내내 이어간 삼매의 경험 등 혜해 스님의 일화는 후학 스님들에게 그대로 생생한 수행자의 이정표가 됐다.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현장에서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하는 혜해 스님.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 현장에서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하는 혜해 스님. 사진제공=흥륜사

한결같은 정진을 이어가던 스님은 지난 2004년 조계종 총무원이 금강산 신계사를 복원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2007년 10월13일 낙성법회가 열릴 때까지 4년 가까이 신계사에 머물며 남북통일과 평화를 발원하며 정진했다. 이 사실 역시 불교계 남북교류를 담당했던 스님들로부터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수행담이다. 낙성법회 당시 스님의 세납은 86세였다.

평생 연의미식(軟衣美食), 호화로운 의식을 원치 않고 근검절약과 하심을 몸소 실천하며 오직 수행을 거듭하며 후학들을 제접해 온 스님은 윤4월8일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을 하루 앞둔 5월29일 오후9시30분, 법랍 77세, 세납 100세로 원적에 들었다.

사진제공=흥륜사

한편 혜해 스님의 초재는 6월4일 봉행되며 이어 매주 목요일 49재가 진행된다. 막재는 7월16일이다. 49재는 모두 흥륜사에서 엄수된다.

사진제공=흥륜사

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541호 / 2020년 6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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