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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동심 풀어낸 ‘풍경소리’ 지속 발표 기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0.06.15 11:40
  • 호수 1541
  • 댓글 0

현대적 의미의 찬불가가 도량에서 처음으로 울려 퍼진 건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당시 찬불가 보급·활용의 선두주자는 용성 스님이었다. 이후 1940년대의 조학유 스님, 1960년대의 운문 스님이 찬불가 보급에 매진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찬불가’라는 용어가 대중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조계종 총무원이 주최한 찬불가 공모를 통해 ‘삼귀의’와 ‘사홍서원’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도 이때다. 서창업 선생의 가곡풍 찬불가도 이 시기에 탄생했다.

1980년대에는 서창업, 김용호 선생이 찬불가 대중화를 이끌었다. 조계사·대각사 합창단을 필두로 수많은 합창단이 전국 사찰에서 조직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찬불가는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불교음악연구회’는 900여곡이 수록된 8권의 찬불가 전집을 출판했고, 박범훈 선생은 찬불가의 국악화에 크게 기여했다.

좋은벗풍경소리도 1995년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앨범 ‘풍경소리’가 유독 의미 있었던 건 ‘어린이의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찬불동요’였기 때문이다. 운문 스님, 서창업 선생 등의 헌신으로 찬불동요가 도량에서 불려지기는 했지만 미미한 선에서 그쳤다. 이후에도 어린이불자를 위한 모임이나 법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찬불동요는 다양하게 작곡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청소년 법회는 활성화하지 않고 있음에도 좋은벗풍경소리는 25년만에 최근 ‘풍경소리 50집’을 발표했다.

1930년대 찬불가 작사에 매진한 스님이 있었는데 조종현 스님이다. 조종현 스님은 찬불동요를 작사하여 ‘월간불교’ ‘신소년’ ‘별나라’ ‘중외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기고했다. 스님이 전한 메시지가 있다. ‘불심이 아니면 시심을 가질 수 없고, 시심이 아니면 불심에 접할 수 없다. 시심, 불심은 그저 동심이어야 한다.’ 조학유 스님의 뜻과 ‘좋은벗풍경소리’의 원력은 맞닿아 있다. 불심과 시심, 동심을 풀어낸 ‘풍경소리’가 앞으로도 계속 선보여지기를 기대한다.

 

[1541호 / 2020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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