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륙대재와 김영환 장군

잿더미 될 뻔했던 해인사
해원과 상생의 법석 마련
평화가 최고 가치임 확인

70년 전 한반도는 현생에 펼쳐진 지옥도였다. 일제강점기 35년의 모진 세월을 건너자 강대국들 이해관계에 휘말려 남과 북은 전쟁으로 치달았다. 결과는 참혹했다. 국군과 경찰 14만1000명, 미국·터키·프랑스·네덜란드·콜롬비아·타이 등 16개국 유엔 참전군 3만8000명, 북한군 52만명, 중국군 14만9000명, 남북한 민간인 52만명 등 모두 138만명이 무참히 죽어갔다. 그 희생자 한명 한명이 누군가의 부모였고 자식이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한국은 가파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로 ‘잘사는 나라’에 편입됐지만 수습되지 못한 숱한 희생자들 한과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있다.

가야산 해인사가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앞두고 6월7일 개최한 수륙대재는 해원과 상생의 법석이었다. 희생자들 넋을 위령하고 천도하기 위해 각각 나라 희생자들을 표방한 위패를 단에 모시고 고혼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불교의식을 장엄하게 펼쳤다.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인도적·종교적 차원에서 진행된 것도 인상적이었다. 전쟁의 희생자로 분장한 이들이 구성진 위령곡에 맞춰 하얀 천을 가르며 극락으로 향할 때는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6·25전쟁은 우리 땅 곳곳을 초토화시켰다. 해인사도 김영환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잿더미가 될 뻔했다. 1978년 12월 ‘보라매 얼’에 실린 서상순의 ‘공비토벌출격기’에는 당시 긴박했던 순간이 잘 나타난다. 1951년 8월 후방에 빨치산이 자주 출현하면서 이를 토벌하라는 임무가 사천에 주둔하던 공군에 주어졌다. 사천비행장 편대장 김영환 공군대령과 서상순 공군대위 등이 조종하는 4대의 전투기가 곧바로 출격했다. 지휘를 맡았던 유엔군 사령부에서는 네이팜탄과 폭탄으로 해인사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각을 비롯해 해인사 전체가 불바다가 될 수 있는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이때 김 대령은 편대에 기관총만으로 능선을 소사공격 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유엔군 사령부의 독촉훈령이 무전기를 통해 떨어졌다. “해인사를 네이팜탄과 폭탄으로 공격하라. 편대장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부하들에게서도 독촉보고가 올라왔다. “편대장님, 많은 적이 해인사로 몰리고 있습니다.”

“각기는 공격하지 말라.” 김 대령의 지시가 다시 떨어졌다. 사령부 지휘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찰이 전쟁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김 대령님은 국가보다도 사찰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아니지요. 사찰이 국가보다 중요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공비보다는 사찰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 사찰에는 공비와 바꿀 수 없는 팔만대장경이란 세계적인 국보이며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인 문화재가 있습니다.”

해인사는 전시체제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명령 불복종을 감행한 김영환 장군 덕에 오늘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이 보존될 수 있었다. 해인사가 김영환 장군 공덕비를 세우고 매년 추모재를 지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찰이 해인사 같지는 않았다. 건봉사, 월정사, 송광사, 낙산사, 신흥사, 명주사, 백담사, 장안사, 신계사 등 수많은 사찰과 국보 제25호였던 청평사 극락전을 비롯한 월정사 칠불보전, 송광사 청운당 등 불교문화재들이 소실됐고, 사찰을 지키던 많은 스님들이 피살됐다.
 

이재형 국장

전쟁의 참화에 내몰렸던 해인사는 수륙대재를 통해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고, 남북 동포와 더불어 모든 이들이 소통하고 상생해 온 세상에 평화가 깃들기를 축원했다. 해인사를 지킨 김영환 장군은 모든 것이 무력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고, 이는 수륙대재의 정신과 맞닿아있다. 상대가 싫다하여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을 여기저기 살포한다고 하여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해인사 수륙대재는 평화가 늘 최고의 가치여야 하며, 그것은 이해와 용서에서 비롯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확인시켜주었다.

mitra@beopbo.com

 

[1541호 / 2020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