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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열반’과 ‘일념불생’

기자명 선응 스님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곧 열반

8정도 행함이 열반 이르는 길
번뇌 끊지 않고 열반 들어가
중생은 한생각 생기해서 윤회
한마음 없으면 진여법성 계합

31장 본문에서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 성문‧연각)’이다. ‘번뇌’가 ‘생하지 않는 것’을 ‘대열반(大涅槃)’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 내용은 ‘대반열반경’에서 “‘번뇌’를 ‘끊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지 않는다. ‘번뇌’가 ‘생하지 않는 것’을 ‘열반’이라고 한다”고 한 것이다. 

초기경전 ‘잡아함경’에서는 “‘열반’이란 탐·진·치 등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상태이고, ‘8정도(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념‧정정진‧정정)’를 행하는 것이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해서 ‘4법인(일체개고·제행무상·제법무아‧열반적정)’을 설한다. 대승경전 ‘유마경약소’에서는 “‘번뇌’를 돌이켜 ‘불사(佛事)’를 한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한다. 

‘불사’란 초기불교는 ‘지관수행’이고, 대승은 법회의식을 통한 ‘방편수행’이다. ‘선종’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화두공안’과 ‘일념’이 되는 것이 ‘불사’이고 ‘열반’이다. “‘끊는다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있는 것이다. ‘생하지 않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없는 것이다”라고 해석한 것은 ‘무념’의 상태가 오히려 ‘열반’이지, 끊을 대상이 있으면 ‘열반’이 아니다. 그래서 ‘중관론’에서는 ‘무념‧무상‧무원’의 ‘3무자성공’을 ‘열반’이라고 한다. ‘공안선’에서는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이다.

32장의 본문은 “‘마음’을 비워서 스스로 비추어야 ‘한 생각’의 ‘연기’가 ‘무생(無生)’인 것을 믿는다”이다. 이통현(李通玄, 635∼730)의 ‘신화엄경론’과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의 ‘법집별행록절요’에서 “비록 말세 중생이 만일 마음이 광활한 자라면 텅 빈 마음으로 스스로 비출 수 있다. ‘일념’의 ‘연기’가 ‘무생’임을 믿으면 비록 친히 증명하지 않았어도 도에 들어가는 기본이다”고 한 것이다.

‘무생’이란 ‘진여법성’이다. 존재하는 것들의 본성은 본래 실체가 없고 생멸이 없지만 중생이 ‘한 생각’을 생기해서 스스로 생사 윤회하기 때문에 자신의 ‘한 마음’을 비우면 ‘생사’가 없다는 것이다. 해석은 “여기서는 단지 ‘성기(性起)’만을 밝힌다”이다. ‘성기’란 ‘화엄경·여래성기품’과 ‘대승기신론’의 ‘진여연기’다. 

징관(738∼839)의 ‘화엄경수소연의초’에서 “‘연기’는 ‘오염’과 ‘청정’이 있다. ‘청정’은 여래의 대비심과 보살의 만행이다. ‘오염’이란 중생의 미혹한 업이다. ‘오염’되어 ‘청정’하지 않으면 ‘중생’으로 연기하고, 청정함으로 오염을 제거하면 제불에 속하기 때문에 ‘성기’라고 한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는 오직 ‘진여 청정심’의 본체를 말한다. 즉 ‘한 마음’도 생하지 않으면 곧 ‘진여법성’에 계합한다.

33장에서는 “자세히 살생하고 도둑질하고 사음하고 망어들을 관하라! ‘한 마음’으로부터 ‘생기’한 것이니, 바로 그 자리가 문득 고요하면 어찌 다시 끊을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 내용은 ‘종경록’과 보조선사의 ‘수심결’ 내용이다. 악업과 선업도 ‘한 마음’에서 생기했으니 끊을 필요가 없이 오직 멈추어 ‘한 마음’이 적정한 것이 중요하다. 

해석하시길 “이것은 ‘성상(性相)’을 모두 밝힌 것이다. ‘원각경’에서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아야 ‘무명’을 영원히 끊었다고 하니 ‘생각이 일어나면 곧바로 알아차려라!’라고 한다”이다. ‘성상’이란 ‘진여법성’과 ‘제법의 현상’으로 ‘생멸연기’다. ‘한 마음’에 ‘진여’와 ‘생멸’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둘이 아니다’. 그래서 ‘원각경’에서 “영원히 ‘무명’을 끊는 것은 곧 ‘본각’이 드러난 것이다. ‘무명’은 본래 없다. 필경에 ‘생’하지 않으면 ‘영원히 끊었다’고 한다”고 한 것이다.

규봉(圭峰宗密, 780-841)의 ‘도서’에도 “모든 ‘형상’이 ‘공’함을 깨달으면 마음은 자연히 생각이 없다.(…) 비록 만행을 갖추어 행할지라도 오직 ‘무념’이 ‘가장 높은 뜻(宗)’이 된다”고 한 것은 ‘무념’이 곧 ‘열반’인 것을 밝힌다. ‘무념’에 ‘3승’의 도가 갖추어 있으니 ‘한 생각’도 생하지 않는 적정함이 곧 ‘법성‧진여‧여래장’에 직입한 것을 밝힌 것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41호 / 2020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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