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4. 호금전의 ‘협녀’(1969)

자비로 복수의 마음 소멸하고 불교영화로 진화

호금전, 비인장면 창조·무술과 경극 접목으로 무협의 예술화
동림당 후예 양혜정 동창패 습격 피해 혜원대사 산문에 귀의
혜원대사 역광은 선의 세계와 해탈의 평정심 시각화해 연출

호금전 감독의 ‘협녀’는 경극 리듬을 도입한 무협 장면과 불교 철학을 녹여낸 영화다. 사진은 영화 ‘협녀’ 스틸컷.

무협영화는 협객을 주인공으로 한 강호의 서사다. 협객은 의리와 복수를 숭상하고 결국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강호를 떠돈다. 선과 악은 탐관오리와 그들로 인해 핍박받는 영웅의 대결 구도로 이루어진다. 무협영화는 수도승과 불교 사원을 배경으로 하여 불교영화와 융합되는 경향이 강하다. ‘협녀’도 무협영화와 불교영화가 융합되었다. 중국 무협영화사에서 호금전은 무협영화의 경지를 한 단계 끌어올린 감독이다. 1965년 한영걸이 쇼브라더스 영화사에 참여하면서 호금전의 무협영화는 빛을 발해 신파무협의 시대를 열어간다.

호금전은 한영걸과 호흡을 맞춰 널뛰기를 통해 사람이 나는 비인(飛人) 장면을 창조하고 경극 동작을 무술에 접목하여 무협의 예술화를 이끈다. ‘협녀’는 불교의 세계로 빠져드는 호금전의 변모를 접할 수 있다. 대나무 숲에서 펼쳐지는 죽림혈투 장면은 무협영화의 백미이다. 이 장면은 이안의 ‘와호장룡’에서 대나무 숲 장면으로 소환되고 지아장커의 ‘천주정’에서 오마주된다. ‘천주정’에서 안마시술소에 근무하는 자오타오는 폭력을 행사하는 손님에게 협녀처럼 칼로 그를 응징한다. 이는 호금전의 무협영화의 위상을 입증해준다. ‘협녀’는 호금전의 특징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역작이다. 무협영화 연구자 왕위니는 호금전의 무협영화에 대해 첫 번째,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왕후 장상과 조정을 어지럽히는 권문세가에게 복수극이 많으며, 두 번째는 경극의 음악과 액션을 사용하며, 마지막으로 박해로 인해 속세를 떠난 자를 불가에서 구원하는 이야기로 집약해서 설명한다. ‘협녀’는 세 가지를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다. 양혜정(서풍 역)은 간신의 농간으로 부친을 잃고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로워 불가에 몸을 의탁하여 후일을 도모한다. 이는 호금전 무협영화의 전형적 서사이며 마지막 혜원대사의 열반 장면은 호금전의 불교에 대한 침윤을 확인할 수 있다.

고성제는 초상화를 그려서 생계유지하며 초야에 묻혀있다. 그는 작업을 준비하던 중 앞을 가로 막는 그림자로 협객 구양년의 도착을 알아차린다. 눈이 무서운 구양년은 초상화를 부탁하고 주변의 동정을 살핀다. 고성제는 밤중에 폐가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추적하던 중 모친이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그곳은 협녀 양혜정이 기거하고 있다. 양혜정은 동림당의 후예이며 그의 부친은 동창패의 죄악을 색출하려다 모함으로 목숨을 잃고 가족도 피해를 본다. 양혜정은 노장군과 석장군의 도움으로 은거 중이다. 동창패는 동림당을 색출하기 위해 협객을 보낸 것이다. 고성제의 모친은 양혜정과 혼사를 원하지만 거절당하고 고성제는 양혜정을 사모한다. 어느 날 양혜정은 금(琴)을 타면서 노래하고 나서 고성제에게 의탁한다. 생략 편집은 그들의 초야를 암시한다. 고성제는 부부의 연을 맺고자 하나 양혜정은 자신의 처지로 인해 반대한다. 동창패의 습격으로 양혜정은 위기에 처하지만 이들을 퇴치하고 피신한다. 결투 장면에서 호금전은 사람이 나는 비인 장면을 연출한다. 몸은 둥근 호를 그리면서 날고 손의 칼은 직선을 긋는다. 몸과 칼은 서로 곡선과 직선을 교차하여 아름다운 동작을 완성한다. 또한 경극의 동작과 음악이 가미되어 리듬과 심리적 긴장이 고조된다. 결투하는 인물의 움직임과 중단 그리고 동작으로 이어지는 정중동의 액션연출과 편집은 작품의 예술적 경지를 끌어올린다. 그녀는 고성제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전한다. 부친과 하직하고 양혜정은 두 장군과 피신 도중에 혜원 선사 일행을 만나 위기에서 벗어나 절에서 2년 동안 무술을 수련했던 것이다. 고성제는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의 지혜와 동림당의 무술을 공조하여 타개책을 마련한다. 그것은 문달의 일행을 유인하여 대적하려는 방책이다. 양혜정 일행은 구양년과 죽림혈투에서 승리한다. 구양년은 동창패의 문달에게 이곳에 오지 말 것을 당부하는 서신을 전하려한다. 하지만 고성제는 가짜 편지로 문달 일행을 이곳으로 유인한다. 문달 일행이 도착하자 고성제는 심리전을 펼치기 위해 귀신이 출몰한다고 헛소문을 퍼뜨린다. 헛소문을 전하는 장면은 화면을 분할하여 순식간에 퍼지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양혜정은 동창의 무리를 퇴치하고 혜원대사가 있는 산문에 귀의한다. 고성제는 양혜정을 찾아서 떠나지만 양낭자는 아이만 몰래 전하고 사라진다. 고성제는 아이를 안고 귀가 도중 금의위 부사 일행에게 체포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양낭자와 혜원대사는 부사 무리를 물리친다. 혜원대사는 사찰로 향하던 중 부사 무리가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하는 연기에 속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혜원대사는 부사 일행을 퇴치하고 언덕을 오르며 빛 속으로 들어간다. 혜원대사의 역광은 왕위니에 의하면 ‘태양이 마치 그 머리위의 후광처럼 모든 것을 초탈한 느낌’을 연출하여 불립문자의 이미지로 선의 세계와 해탈의 평정심을 시각화한다. 혜원대사의 열반은 역광의 카메라와 빛이 흰 색깔 속으로 잦아들어가는 순백의 이미지로 순화된다. 몸이 뛰어오르는 곡선과 검이 자르는 직선의 교직 그리고 원한과 자비의 용해는 혜원대사의 열반장면으로 모든 은원이 소멸되고 있다. 호금전의 ‘협녀’는 협녀의 복수극이라는 무협영화에서 자비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불교 영화로 진화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41호 / 2020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