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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총림 통도사 승가대학장 인해 스님

“가사에는 화합·평등 정신과 청빈한 수행자 길 새겨져 있어”

여러 색 섞인 가사 괴색은 대중과 화합해 평등하게 산다는 뜻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 후 입은 까사야는 무소유·청빈의 의미
가사 공양 공덕으로 천가지 재앙 소멸되고 백가지 공덕 일어나

사진제공=통도사
사진제공=통도사

“훌륭하도다. 해탈복(解脫服)이여. 위 없는 복전의(福田衣)로다. 내 지금 이를 받들어 지녔으니 세세생생 가피를 얻을지어다. 옴 마하 가바바 싯제 사바하.”

이 게송은 스님들께서 가사를 받아 이마에 올리며 읊는 ‘정대게(頂戴偈)’입니다. 가사를 범어(梵語)로는 ‘카사야(Ka saya)’라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사냥꾼이 입었던 누더기옷을 까사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사분율(四分律)’에는 청, 황, 적, 백, 흑 다섯가지를 오종색이라고 하는데 가사는 오종색을 피하고 여러 색을 섞은 괴색(壞色)을 사용한다고 나옵니다. 화려하거나 밝은 옷을 금하고 색을 섞는다, 말하자면 대중과 화합하고 평등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싯타르타 태자로 계실 때, 성을 뛰어넘고 출가를 하십니다. 그때 마부 찬타카에게 장신구를 다 주어 돌려보내고 스스로 머리를 깎았으며 화려한 장식의 옷을 올이 굵고 해진 사냥꾼의 옷, 까사야와 바꿔 입은 것이 가사의 시초라고 합니다. 곧 부처님께서는 출가 전에는 탐, 진, 치 삼독에 물든 세속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모든 삼독심을 버린 뒤 낡고 무겁고 해진 옷을 걸쳐 입었습니다. 여기에는 무소유의 정신, 청빈한 삶으로 평생 살아가리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됩니다. 

부처님 재세 시에는 사람들이 버린 옷이나 죽은 사람의 옷, 걸레처럼 해진 옷을 기워 입는 것을 분소의(糞掃衣)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사도 분소의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승단이 커지면서 재가자들로부터 천을 보시받게 됩니다. 율장에 보면 천을 보시받았을 때 10명이 있으면 똑같이 10조각으로 나누고 100명이 있으면 100조각으로 나누어 그 천을 기워입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절의(割截衣)라고 했습니다. 옷을 끊어서 입었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논밭이 가지런하게 정리된 풍경을 보면서 아난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가지런하고 반듯한 논밭을 보아라. 이것은 세간의 복전이다. 출가인의 복전이 되는 옷도 이와같이 가지런히 만들어라.” 그리하여 가사를 복전의라고도 부릅니다. 또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로 해탈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나 입지 못하고 출가 수행자들이 입는 옷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출가자에게 삼의일발(三衣一鉢), “옷 세 벌과 발우 하나만 있으면 족하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의 중에서 안타회(安陀會)는 잠을 잘 때 입는 내의(內衣)에 해당하는 옷입니다. 두 번째는 울다라승(鬱多羅僧)이라고 해서 중가의(中價衣), 입중의(入衆衣)라고 불렀습니다. 예불할 때, 강의할 때, 포살할 때 입는 옷입니다. 승가리(僧伽梨)는 대의(大衣)라고 해서 탁발을 할 때, 또는 멀리 나갈 때 입는 옷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사라고 부르는 것이 승가리입니다. 

그런데 인도는 기후적으로 따뜻하여 북방과는 계절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기후에 따라 옷 입는 방식이 달라졌고 우리가 현재 입는 장삼도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사를 입을 때는 편단우견(偏袒右肩)이라고 해서 오른쪽 어깨를 비웁니다. 보살은 통견(通肩)이라고 하여 양쪽 어깨를 다 덮지만, 응진전의 아라한을 보면 오른쪽 어깨를 비우고 있습니다. 편단우견은 존경의 표시입니다. ‘금강경’을 비롯한 많은 경전에는 ‘편단우견’ ‘우슬착지(右膝着地)’ ‘일심합장(一心合掌)’ 또는 ‘합장공경(合掌恭敬)’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조금 전 스님들께 가사를 올릴 때 학인스님들이 들어와서 제일 먼저 반배를 하고 가사를 올리며 우슬착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스님들이 정대할 때 합장을 했습니다. 이것이 존경의 표시이며 청법의 예입니다. 모두 경전에 근거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곧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은 부처님께 예를 올릴 뿐만아니라 큰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공경의 표시입니다.

가사불사와 관련하여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전라북도 남원에 대복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대복사의 본래 이름은 교룡사였습니다. 신라 진성여왕 893년, 남원에 요즘 행정직 정도 되는 아전이라는 직함의 대복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복은 사냥과 싸움을 좋아하고 시비, 특히 스님들이 지나가면 욕을 하며 삼보를 비방했습니다. 반대로 대복의 부인은 겸손하고 불심이 돈독하여 스님들을 마치 친정아버지를 보듯 인사하고 공양을 올렸다고 합니다. 대복의 아내는 어찌하든지 남편이 불법에 귀의하고 삼보를 공경하길 발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룡사의 한 스님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사불사를 권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복의 아내는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가사불사에 동참하면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저의 남편도 마음을 바꾸어 잘 살 수 있습니까?” 스님은 답했습니다. “가사불사를 발원하는 이는 천가지 재앙이 눈 녹듯 사라지고 만 가지 복들이 구름처럼 일어납니다. 삿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고 언제나 성현들이 옹호하고 나아가 무량한 복덕이 이루어질 겁니다.” 대복의 아내는 가사 시주를 발원했고 스님들을 도와 바느질을 열심히 하며 기도했습니다. 

마침 대복이는 새 사또의 부임을 준비하느라 관아에서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일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밑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큰 구렁이가 나타났습니다. “네가 대복이냐?” 놀란 대복이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답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나는 본시 교룡사 아랫마을에 살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꼭 너처럼 사람들만 보면 시비를 걸고 사냥하고 스님들만 보면 욕을 하며 삼보를 비방한 과보로 이 다리 밑에서 구렁이가 된 지 100년이 지났다. 내가 보아하니 너도 나와 같은 과보를 받게 된 것 같아서 너를 부른 것이다.” 대복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렁이의 과보를 면하고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너의 아내가 교룡사에서 열심히 시주하고 불공하며 바느질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참에 너도 거기에 가서 너의 죄를 참회하고 나아가 나의 명복까지 빌어다오. 또 교룡사가 많이 낡았으니 중건, 중수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대복이는 부랴부랴 집으로 갔지만 있어야 할 부인이 없었습니다. 집안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며 “자네 부인은 가사불사 한다면서 매일 교룡사에 가서 중들과 놀아나던데 거기 한번 가보시오.” 대복이는 화가 일어났습니다. 구렁이와 했던 약속은 오간 곳이 없어지고 머리끝까지 치정의 불길이 솟았습니다. 화살을 챙겨 교룡사로 뛰어갑니다. 절 근처까지 가보니 마침 일주문 앞으로 스님들이 먼저 들어가고 뒤를 이어가는 아내가 보였습니다. 그냥 활을 세게 당겨서 쏘아버립니다. 활은 정확하게 아내의 등에 박힙니다. 그런데 박히자마자 활이 떨어져 버립니다. 두 번째 화살도 세게 당겨 정확하게 명중합니다. 그래도 아내는 아무 이상 없이 일주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제야 대복이가 정신을 번쩍 차립니다.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활과 화살을 내동댕이친 대복이는 얼떨결에 아내와 같이 법당에 들어갑니다. 마침 점안 불공이 끝나고 시주자의 이름을 불러서 스님들께 가사를 올리는 의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복이의 아내가 나가서 가사봉투를 열어 가사를 꺼내는 순간 그 봉투에서 화살촉 두 개가 떨어졌습니다. 봉투에서 꺼낸 가사에도 구멍이 두 군데 나 있었습니다. 대중은 웅성거렸습니다. 그 화살촉과 가사에 구멍이 난 비밀을 아는 사람은 대복이 뿐이었습니다. 대복이는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 앞으로 나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스님들은 잠시 법회를 멈추고 회의를 통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복이의 부인이 맞아야 할 화살을 스님의 가사가 대신 맞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가사는 버릴 게 아니라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해와 달은 맑고 밝음을 상징합니다. 이 가사에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로 일광, 월광을 뜻하는 금까마귀와 옥토끼를 그려 넣어 사용하겠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대복이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독실한 불자가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사재를 털어서 낡은 교룡사의 중건, 중수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교룡사는 대복이에 의해 새롭게 중건된 뜻을 담아 대복사로 사명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불설가사공덕경’에는 “가사불사를 발원하는 이는 천가지 재앙이 눈 녹듯 소멸되고 조성에 동참한 이는 백가지 복이 구름처럼 일어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사불사 회향날, 불사 동참 인연 공덕으로 가내 평안하고 업장이 소멸돼 모든 일 원만히 이뤄지기를 기원드립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6월15일 영축총림 통도사 설법전에서 봉행된 ‘불기 2564년 영축총림 통도사 윤달 가사불사 회향식’에서 인해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1542호 / 2020년 6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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