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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22칙 대수오구(大隨烏龜)

“거북은 어째서 뼈대 속에 살 있나”

일체중생 피부 속에 뼈 있다는
선입견 행위로 승화한 대수화상
번거러운 언설 구사하기보단
망상미혹 타파, 명심견성케 해

대수화상이 한 승을 데리고 길을 가다 거북이를 보았다. 승이 물었다. “일체중생은 살집 속에 뼈가 들어있는데, 이 거북이는 어째서 뼈대 속에 살이 들어있는 겁니까.” 대수가 짚신을 벗어서 거북이 등에 올려놓았다. 그 승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수법진(大隨法眞, 834~919)은 속성이 왕(王)씨로서 사천성 출신이다. 장경대안(長慶大安)의 법을 이었고, 촉주(蜀主)로부터 신조대사(神照大師)라는 호를 받았는데, 왕노사(王老師)라고도 불렸다. 선법의 가르침을 흔히 격외도리(格外道理)라고 한다. 그것은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중생심을 타파하고 생생한 안목으로 살아갈 것을 요청하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때문에 종종 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답 내지 행위가 제시된다. 승이 일체중생의 경우 피부 속에 뼈가 들어있다는 상식적인 개념에 빠져 있었다. 대수는 그런 선입견을 벗겨주려고 거친 방식을 구사하면서도 정작 자비심이 넘치는 행위로 승화시켰다.

승이 거북이를 발견한 것이 과연 흉조였는지 길조였는지는 결과를 기다려보아야 하겠지만, 꽤나 많은 분별의 의심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그것을 단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 거북이에다 부드러운 손을 갖다 대는 것보다는 과격하게 발로 짓밟는 행위가 훨씬 효과적이었다. 승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의외성이었다. 이러한 의외성은 매너리즘에 빠진 상식을 초월하기에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일찍이 대수법진은 위산의 문하에 있었는데, 밥을 먹을 때는 부족하게 먹고, 잠을 잘 때는 따뜻한 곳을 찾지 않았으며, 두타행에 힘쓰고, 남들 앞에 나서지 않았다. 위산은 대수를 큰 그릇으로 여기고 있던 차에 어느 날 물었다. “그대는 여기에 있으면서 일찍이 한 마디도 질문한 적이 없었는데, 왜 그런가.” 대수가 말했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여쭈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어째서 부처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가.” 그러자 대수는 마치 그런 말씀은 하지 말라는 듯이 위산의 입을 막는 시늉을 하자, 위산이 찬탄하여 말했다. “그대는 진정으로 골수를 터득하였구나.” 이로부터 그 명성이 사해에 널리 퍼졌다. 대수가 진정 천연의 선자였음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이후에 촉지방으로 돌아가 용회사(龍懷寺) 입구에서 3년 동안 차를 다려 나그네에게 보시하였다. 후에 작고 오래된 암자인 대수사(大隨寺)에 주석하였다. 주변에 지름이 3미터가 넘는 큰 나무의 남쪽으로 문을 내고 안을 파내어 들어앉자 안락한 수혈(樹穴)의 토굴이 되었기 때문에 목선암(木禪庵)이라 불렸다. 목선암에서 10여년을 주석하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천리 밖까지 선풍이 알려졌다. 그 암자 곁에 거북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승이 그것을 발견하고 물은 문답이 본 내용이다.

대수가 신발을 거북이 등에 올려놓은 것은 거북이를 발로 짓밟아 죽인다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보인 것이다. 언구를 통하여 자상하게 설명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의 행위를 구사하는 것이야말로 제자에게는 참으로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깊은 인상을 안겨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질문한 승의 경우 이미 불교의 가르침에 대하여 고정관념에 깊이 쩔어 있어서 다양한 사물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수는 제자의 그와 같은 관념을 물리치는 행위로 거북이를 짓밟아 죽이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가르침을 명분으로 거북이를 죽인다는 것은 또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대수는 신발을 벗어 살짝 그 행위만 보여주었는데, 그 자비심을 제자가 이해했을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대수화상이 일생동안 온갖 사람과 사물을 교화했던 자비의 일례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망상미혹을 타파하고 명심견성(明心見性)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코 이래서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는 번거로운 언설을 구사하지 않았지만, 그와 같은 대수의 그 의도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는지 궁금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42호 / 2020년 6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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