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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사표로 존경받은 이 시대 스승”

  • 교계
  • 입력 2020.06.23 16:37
  • 수정 2020.06.26 18:38
  • 호수 1543
  • 댓글 2

6월23일 입적한 종산 대종사 행장

‘마음 고치는 의사 되겠다’ 발심 출가
1949년 도광 스님 은사로 사미계 수계
백련사 만덕선원 이후 43년간 수선안거
1958년 해인사 조실 금봉 스님에 인가
조계종 6·7대 원로회의 의장에 추대돼

조계종 6·7대 원로회의 의장을 역임한 혜광당 종산 대종사는 수행자의 사표로 존경 받아온 선승이었다. “수행자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수행 정진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스님은 평생 수행자로서 본분을 잃지 않았다. 선사이면서도 계율에 철저했고, 하심을 생활화하면서 후학들에게 수행자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도 제시했다.

스님은 1924년 10월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스님은 신학문을 익힐 수 있었고, 광주의과대학도 졸업했다. 대학시절 절친했던 친구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49재를 지내러 강진 만덕선원을 찾았다가 스님들의 수행하는 모습에 감복해 출가를 결심했다. ‘육신보다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발심한 스님은 1949년 2월 자운사에서 도광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고, 1954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불문에 들어선 스님의 수행은 치열했다. 1953년 강진 백련사 만덕선원에서 전강 스님을 따라 수선안거를 시작한 이래 43년간 대흥사,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 동화사, 망월사, 천축사 무문관, 용주사 중앙선원 등 전국선원을 돌며 정진했다. 특히 스님은 대강백 용봉 스님으로부터 경전을 익혔고, 전강·동산·경봉·춘성·금봉·청담 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일대사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범어사 선원에서는 도반들과 함께 “깨닫지 못하면 한발자국도 나가지 말자”고 결의한 뒤 치열하게 정진했다. 몰려드는 졸음을 견디기 위해 널빤지에 못을 박아 얼굴에 바짝 닿도록 세워놓고 정진했던 스님의 수행일화는 지금도 선방에서 회자되고 있다.

당시 수행과정에서 도반의 이마에 난 상처는 서로가 절차탁마하는 계기가 됐다. 훗날 스님은 “그때 도반의 얼굴을 보고, 나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가를 깊이 돌아봤다”면서 “이 세상 모든 스님 중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고,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공부를 못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비로소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의대공부까지 했다’는 자만심을 버릴 수 있었고, 대분심과 대발심으로 천축사 무문관 6년 수행을 진행할 수 있었다.

치열한 정진을 이어오던 스님은 1958년 해인사에서 조실 금봉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혜광’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후 전국 선원에서 ‘부모에게 나기 전 어떤 것이 본래 면목인가(如何是父母未生前 本來面目)’라는 화두를 들고 정진의 끈을 이어갔다.

스님은 선수행자이면서 늘 계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님은 “계율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한 것으로 부처님 말씀은 무상(無上)하고 무변(無邊)하며, 무심(無深)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계율을 모르고 따르지 않는다면 곧 배불하는 사람이니 이런 사람이 어찌 정혜를 올곧게 닦을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또 후학들에게 “계율은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면서 “계율을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고 지도했다.

스님은 “출가수행자는 산중에 살며 계정혜 삼학을 닦는 것을 본분사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이 스스로 종단 소임을 멀리하고 수행에 전념했던 것도 이러한 신념에서 비롯됐다.

스님은 1990년 보살사 직지선원 조실을 시작으로 2000년 4월 천은사 방장선원, 2002년 10월 구산선문 태안사 원각선원, 2012년 1월 화엄사 선등선원 등에서 조실로 추대돼 후학들을 제접했다. 1997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선출된 뒤에는 2004년 해인사에서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으며, 2004년과 2007년 원로회의 6·7대 의장에 추대됐다.

평생 수행자로서 본분을 잃지 않았던 스님은 2020년 6월23일 오전 5시30분 청주 보살사 직지선원에서 임종게를 남기고 적멸에 들었다. 법랍 72세, 세수 97세다.

‘忽然惺時在夢中(홀연성시재몽중)/ 今日頓覺羞恥麽(금일돈각수치마)/ 了知柱草心印華(요지주초심인화)/ 不拘廉恥又欲見(불구염치우욕견). 문득 깨어보니 이번에도 잠깐 졸았구나. 부끄럽게도 왜 지금에서만 아는가! 다행히 기둥에 난 풀도 사람마음 꽃인걸 알아서 염치없지만 또 보고 싶겠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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