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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가족 생각하면 누워 있을 수만 없어요”

  • 상생
  • 입력 2020.06.26 21:07
  • 수정 2020.06.26 21:08
  • 호수 1543
  • 댓글 0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수랑가씨 어머니 병환에 살림 궁핍 한국행
목 통증‧마비증상에 수술 후 재활 중…1800여만원 병원비 난감

가족생계를 위해 색소폰 연주가 꿈 접고 하루 10시간 중노동을 했던 수랑가씨. 눈덩이처럼 커진 병원비 걱정에 하루하루가 버겁다.
가족생계를 위해 색소폰 연주가 꿈 접고 하루 10시간 중노동을 했던 수랑가씨. 눈덩이처럼 커진 병원비 걱정에 하루하루가 버겁다.

스리랑카 캔디 출신 수랑가(36)씨가 가난의 고통 앞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색소폰 때문이었다. 중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로 접한 색소폰은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희망이었다. 버려진 색소폰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의 꿈은 색소폰 연주자였다. 그러나 색소폰 연주자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음악은 사치였다. 잠시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군악대에서 활동하면 음악을 계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을 생각해 한입이라도 덜고자 해군에 입대했다. 5년여의 군생활은 행복했다. 원 없이 색소폰을 불 수 있었다. 군생활은 고됐지만 색소폰 한 곡을 연주하고 나면 피로가 풀렸다.

전역 후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이 둘이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어머니는 극적으로 회복됐지만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됐다. 금전적 압박으로 치료와 투약은 어려운 일이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아버지는 어머니 옆에서 하루 종일 수발을 들어야 할 상황이었다. 색소폰 연주자로 살고 싶었던 수랑가씨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병환으로 집안 살림은 더욱 궁핍해갔다. 집 앞 작은 텃밭을 가꿔 자급자족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지만 가족들 모두가 어머니 병간호에 매어 있다 보니 텃밭을 꾸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수랑가씨는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첫 일자리는 석고보드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작업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곳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허리를 굽혀 일했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을 해야 했지만 일한 만큼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에 견딜 수 있었다.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야근과 주말 근무를 자원했다. 물탱크 청소 일을 할 때는 아찔한 일을 겪기도 했다. 밧줄이 짧은지 모르고 물탱크 내부에 들어갔다가 자칫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큰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수랑가씨가 한국에서 목숨을 걸고 일할수록 스리랑카에 있는 가족들의 삶은 윤택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일을 놓지 못했다. 힘이 들 때면 스리랑카에 새집을 지어 자신의 방이 생겼다고 좋아할 동생들 모습을 떠올리면서 희망을 꿈꿨다.

자동차 오일실 제조 공장에서도 일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고개를 들 수 없는 고된 일이었다. 어느 날부터 목 부분에 이상증상이 생겼다.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고통과 함께 마비증상이 찾아왔다. 수개월을 참다가 겨우 병원을 찾았다. 경추 5~6번 간 추간판 탈출증이라는 진단이었다. 5월4일 인공디스크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고 한 달이 넘도록 재활을 받아야 했다. 그러는 사이 수술 비용을 포함해 병원비는 1800만원이 훌쩍 넘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간다. 퇴원을 하려 해도 예후가 좋지 않아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갈수록 불어나는 병원비 걱정에 답답하기만 하다. 수랑가씨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어린 시절, 가난 속에서도 꿈을 꾸게 해줬던 음악으로 마음의 병을 달랜다. 언젠가 연주자로서의 꿈을 이루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며 말이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2)725-7010

청주=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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