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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

생전예수재는 자기 성찰로부터 출발합니다

사바세계 사는 동안엔 죄 짓기 마련…어떻게 참회하느냐가 관건
생전예수재, 세상 여의기 전에 미리 닦아 모든 죄 소멸하는 과정
슬픔보다 희망 발견하고 새로운 원력 세우는 기간으로 삼아야

사진제공=통도사
사진제공=통도사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영축총림 통도사에서는 가사불사와 생전예수재를 49일 동안 정성을 모아서 지내왔습니다. 오늘이 그 회향일입니다.

49일 동안 법회를 진행하면서 소임자로서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인해서 원만하게 회향할 수 있을까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요즘 역병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이어서 오늘 이렇게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49일 동안 많은 훌륭한 법사스님들께서 이 자리에 올라오시어 감로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의식을 집행하는 영축총림 통도사 염불원장 스님과 교수사스님 그리고 그동안 여러 법사스님들의 염불을 통해 생전예수재를 회향할 수 있어서 감사히 생각합니다. 

저는 종종 불자님들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말을 제일 잘하는 건 방송국의 아나운서일 것입니다. 반면 염불은 가슴을 움직이게 합니다. 저도 삭발 출가하여 승려 생활을 60년 가까이 했습니다만, 사중의 노전스님이나 염불하시는 스님들의 염불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습니다. 

이 염불소리를 듣고 극락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염불 듣는 이들의 허물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곤 하였습니다. 오늘도 염불하는 스님들의 의식을 듣노라니 어떨 때는 어깨춤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지내는 49재 의식에는 슬픔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 생전예수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미리 극락을 가기 위해 재를 올리는 의식이라고들 합니다. 슬픔보다는 희망을 발견하고 원력을 세우는 것이 바로 생전예수재 기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생전예수재라는 것이 ‘자기 성찰’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이 세상을 살면서, ‘나는 잘 살았을까?’ ‘내가 살면서 죄를 짓진 않았을까?’ 등 자기 성찰을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다음 스스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기도를 통해서 참회하고 또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그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전예수재를 지낼 때 명부전의 10대 왕을 모십니다. 명부전에 가보면 주불은 지장보살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지장보살 주변에 10대 왕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섯 번째 대왕은 여러분이 다 잘 아시는 염라대왕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염라 세계에 가면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염라대왕 앞에는 거울이 하나 있는데 그 거울을 업경대(業鏡臺)라고 합니다. 그 거울 앞에 서면 죄를 굳이 묻지 않아도 됩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담겨서 보인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염라대왕이, “아, 너는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까 극락으로 가거라.” “너는 나쁜 일을 많이 했으니 지옥으로 가거라.” 이런 판단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거울의 이름이 업경대인 것입니다. 

그 거울이 지금 설법전 앞, 불단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서 그 거울 앞에 당당하게 가서 설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저 역시도 당당하게 서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하여 사바세계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각자 크고 작은 것을 떠나 죄를 짓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면 걸어 다녀서도 안 된다고 합니다. 걸어 다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발로 밟아서 개미도 죽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을 숱하게 죽이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사바세계는 괴로움의 세계, 고의 세계라고 합니다.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성찰이라고 하는 것은 죄를 짓더라도 죄를 사할 방법을 찾는 겁니다. 

부처님 당시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부처님께 두 여인이 찾아와서 법을 청했습니다. 

“부처님 저희를 위해서 좋은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두 여인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너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지어본 적이 있느냐?”

한 여인은, “부처님, 저는 참으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법문을 청하는 것도 죄를 사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한 여인은 “저는 죄를 지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여인에게는 큰 바구니를 주면서 “너는 저 앞에 가서 자갈을 한 바구니 담아오너라.” 이렇게 말씀하셨고 죄를 많이 지었다고 하는 여인에게는 “저 앞에 가서 네가 들 수 있는 자그마한 돌멩이를 하나 가지고 오너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두 여인 중 한 여인은 바구니 가득 자갈을 담아왔고, 다른 한 여인은 자갈을 하나 주워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여인이 부처님 앞에 이르자 부처님께서는 “다시 그것이 있었던 그 자리에 똑같이 갖다 놓고 오너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죄를 많이 지었다고 했던 여인은 돌멩이를 하나 갖고 왔으니 가서 보니까 돌멩이가 놓였던 표시가 있어서 그 자리에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갈을 한 바구니 담아온 여인은 그 자갈을 어디에 부어야 할지 모르고 서성거리고 있더라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죄라는 것은, 적은 죄가 커지고 커져서 큰 죄가 된다. 왜? 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참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눈사람을 만들 때 눈을 굴리면 눈덩이가 순식간에 불어나듯이 죄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항상 죄를 참회하고자 하는 것의 전제는 바로 자기 성찰입니다. 자기 허물은 덮어놓으려고 한다 해서 덮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어릴 때도 그랬습니다. 음력 보름마다 대웅전에 사중 모든 스님이 모여서, 어른 스님들도 모두 오신 가운데 참회를 했습니다. ‘범망경’ 포살계본으로 포살하면서 참회를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요즘은 그렇게 하진 않습니다만, 항상 여름이 되면 우리 스님들이 학인 스님들이나 대중스님들이 다같이 논에 가서 모내기를 하였습니다. 모내기를 보름 정도 합니다. 

그런데 모내기를 하다 보면 일꾼들과 휩쓸려서 곡차를 마시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법사스님께서 법문을 다 마치고 “참회하라.”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학인 스님들은 막걸리를 마신 것에 대해서 참회를 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쭈뼛거리며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저희에게는 아주 큰스님, 벽암 노스님께서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저희는 황당해서 ‘큰스님께서 왜 일어나실까?’ 하고 지켜보았는데, 스님께서는 법상을 향해서 절을 세 번 하고, “제가 며칠 전에 어떠한 일이 있어서 학인에게 진심(瞋心)을 크게 내었습니다. 그 죄를 사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참회를 하셨습니다. 

저희는 그런 어른스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큰스님께서도 살다 보면 진심을 일으키게 되고 탐심을 일으키게 되고 치심을 일으키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살다 보면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전예수재라는 것은 쉽게 이야기를 하면 미리 이 세상을 여의기 전에 미리 닦아서 모든 죄를 없애는 과정이고 이 과정을 지속적으로 거친 이들은 염라대왕 앞에 가면 염라대왕이 오히려 좋아할 것입니다. “너는 사회에 있으면서 죄를 다 사하고 왔구나.” 그렇게 되면 극락에 직행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요즘 원주실에서 코로나 때문에 공양 대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회향 후 불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점심공양 대신 떡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도 줄을 서서 받으면 되는데 서로 받으려고 웅성거릴 때가 있습니다. 천천히 기다리면 모두 받을 수 있는데 결국 법당 밖으로 나가면 이 자리에서 법문 들은 내용을 다 잊어버리고 맙니다.

이제 도량을 찾는 사부대중은 정말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자에 다시 통도사에 와서 소임을 살게 된 지 1년이 지났는데, 행사 때마다 요즘 불자님들은 과연 수준이 정말 높다, 그래서 소임자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이 정도의 질서와 법을 지킨다면 전국 어디에 내놔도 우리 불자님들이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오늘은 긴 이야기보다 이 정도로 끝내고 참회진언으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6월20일 영축총림 통도사 설법전에서 봉행된 ‘불기 2564년 생전예수재 회향법회’에서 현문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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