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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제23칙 남전참묘(南泉斬猫)

“바른말 못하면 고양이 목 베겠다”

분별심 제거 위한 남전의 방편
고양이 목 잘랐다는 행위보다
출가납자 본분 알리려는 경책

남전의 동당과 서당에서 고양이로 인해 다툼이 일어났다. 남전이 법좌에 올라가 고양이를 들고서 말했다. “바른 말을 하면 고양이를 살려주겠지만 아니면 목을 따버리겠다.” 대중이 침묵하자, 남전은 칼로 베어버렸다. 나중에 조주가 돌아오자 남전은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주는 신발 한 짝을 벗어서 머리에 얹고는 조실을 나가버렸다. 남전이 속으로 말했다. “조금만 더 일찍 돌아왔더라면 고양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4)이 어느 날 나른한 오후에 좌선을 하던 참에 동당과 서당에서 수좌들이 들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야단을 피웠다. 조용하던 승당이 왁자지껄해지자, 남전이 나와서 고양이를 붙들고 법거량을 하였다. 겉으로는 시끄러운 언쟁의 시비를 멈추려는 행위였지만 정작 남전이 의도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각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분별심을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흡족한 답변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고양이의 생명 내지 살생이라는 분별개념에 얽매여 있었다. 근엄한 수행도량에서, 그것도 조실의 신분으로 감히 고양이의 생명을 앗아갈 것인가 하는 망상과 함께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전은 바로 그와 같은 진부한 상황을 깡그리 뒤집어 엎어버렸다. 신성하고 근엄하다는 도량에서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고양이 목을 잘라버렸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났다. 일도양단의 선기가 번쩍이는 찰나였다. 그 순간만이라도 올바른 말 한마디를 한 수좌가 있었더라면 남전의 마음은 그래도 조금은 흡족했을 것이다. 이에 남전은 고민하였다. 자신이 제시했던 방편으로도 어느 수좌도 이해하지 못하자 조금은 시들하였다. 마침 외출했던 조주가 돌아오자 남전은 조주를 두고 같은 상황극을 연출하였다. 조주는 그래도 다른 수좌와는 달리 조금의 안목이 트였던지 신발을 자신의 머리에 얹고는 남전한테 보란듯이 그 자리를 일어났다. 남전은 몹시 흡족하였다. 그리고는 조주한테 그대가 죽은 고양이를 다시 살려냈다고 속으로 말하였다. 여기에서 죽은 고양이는 본분사를 상징한다. 출가납자로서 본분사를 터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좌에게는 죽은 고양이를 두고 조실께서 함부로 살생을 했다고 간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조주는 ‘그와 같은 본분사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하는 제스처로 응답하였다. 조주는 본분사에 대한 수좌들의 전도된 생각을 본래의 자리에다 되돌려준다는 의미로 신발을 머리에 얹어보였다. 조주는 분별의 개념과 아집과 인집의 도그마로부터 훤칠하게 벗어나 있음을 썩 훌륭하게 연출한 것이다.

사실 남전은 조주를 겨냥하고 대중한테 질문을 하였다. 이미 결과는 짜여진 각본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조주를 등장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일러날지도 모른다. 남전의 태도는 명쾌하였다. 수좌들 사이에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여러분이 이에 대하여 무엇이든지 도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이 고양이를 즉시 베어버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용히들 있거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썩 솜씨 좋은 남전의 수완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대중은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침묵이야말로 남전이 노리는 방편의 덫이었다. 그래서 굳이 남전은 대중을 위하여 연극을 했다. 그러나 대중은 눈앞에서 고양이가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잘난 침묵만 지켰다. 남전은 답답했다. 그러나 조주 한 사람만 상대하려고 마음먹었더라면 고양이는 등장할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이 문답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남전이 고양이 목을 잘랐다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가를 참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설거지일 뿐이다. 이와는 달리 남전은 대중으로부터 보다 근원적인 선기를 보고 싶었다. 고양이를 내세우지 않고, 동당과 서당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좌선하는 모습에서 출가납자의 본분사와 공겁이전의 도리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남전이 대중한테 요구하는 것이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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