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점수’와 ‘계‧정‧혜’
25. ‘점수’와 ‘계‧정‧혜’
  • 선응 스님
  • 승인 2020.06.30 09:39
  • 호수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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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法戒)는 몸‧심계(心戒)는 생각 범하지 않는 것

지혜 성취해 6신통 증득해도
살생‧도둑질‧음행과 거짓말을
끊지 않으면 마군 길에 떨어져
영원히 깨달음의 바른길 잃어

이전까지 ‘돈오’와 ‘신해(信解)’를 설했고, 지금부터는 ‘조사선’의 ‘점수’와 ‘행증(行證’)을 밝힌다. 37장은 “‘이치(理)’는 비록 문득 깨달을지라도, ‘일(事)’은 문득 없어지지 않는다”로, ‘능엄경’의 내용이다.

보조국사의 ‘법집별행록절요’에서 “‘점수’로 ‘악습’이 줄어서 줄어들 것이 없는 경지가 ‘성불’이다”고 한 것과 같다. ‘이치’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교법’이고, ‘선법’의 ‘〇, 진여법성’이다. ‘일’이란 ‘본성’이 연기해서 ‘무상‧무아‧고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을 순자(荀子, BCE. 298~238)는 ‘상황’, ‘이익을 내는 행위’라고 하고, ‘예기‧대학’에서는 ‘사건’이고, ‘백유경’은 ‘사물의 특성’이라고 한다.

서산대사 해석은 “‘문수’는 ‘천진’을 통달하고, ‘보현’은 ‘연기’를 밝혔다. ‘이해’는 ‘번갯불(電光)’과 같아도, ‘실행’은 ‘궁핍한 아들(窮子)’과 같다. 이하는 ‘수행과 증득’에 대하여 말하겠다.” 청원(清遠, 13세기)의 ‘원각소초수문요해’에서 “‘원각경’의 ‘문수보살장’은 ‘돈오’의 ‘신해’이고, ‘보현보살장’ 이하는 ‘점수’의 ‘수증’이다”고 한 것이다. ‘천진’은 자연 그대로 참되고 꾸밈이 없는 ‘불생불멸’의 마음이고, ‘궁자’란 ‘법화경’에서 설한 ‘성문‧연각‧보살’의 수행이다. ‘행증’이란 ‘앎’과 ‘실천’이 상응하는 것으로 원오(1063∼1135) ‘심요’에서 “깨달은 후에 바로 놓아 버려서 ‘선법’도 집착하지 않고… 일상에서 공경을 행하는 것이 ‘보림(保任)’이고, ‘둘이 없는 삼매’에서 6바라밀(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을 실천하는 것이 ‘향상일로’다”고 한 것이다. 

38장은 “‘음탕’하면서 ‘선정’을 닦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살생’하면서 ‘선정’을 하는 것은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고, ‘도둑질’하면서 ‘선정’을 하는 것은 새는 잔에 채우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거짓말’하면서 ‘선정’하는 것은 똥을 깎아서 향을 만드는 것과 같다. 비록 많은 지혜가 있어도 다 ‘마군의 길’이다”이다. 
‘마(魔, Mara)’는 ‘마음의 번뇌’다. 3계(욕망‧물질‧정신) 중에 ‘욕계’에서, ‘변화 자재한 능력’을 가지고 ‘탐욕’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다. 

서산대사가 “수행의 규범은 ‘3무루학(三無漏學)’이다. ‘소승’은 ‘법을 받는 것’이 ‘계율’이기에 대략 ‘끝(결과)’을 다스린다. ‘대승’은 ‘섭심(攝心)’이 ‘계율’이기에 미세하게 그 ‘근본’을 끊는다. ‘법계(法戒)’는 ‘몸’으로 범하지 않고 ‘심계(心戒)는 ‘생각’으로 범하지 않는다. ‘음탕함’은 청정을 끊고 ‘살생’은 자비를 끊고 ‘도둑질’은 복덕을 끊으며 ‘거짓말’은 진실을 끊는다. ‘지혜’를 성취해서 ‘6신통(신족‧천안‧천이‧타심‧숙명‧누진)’을 증득했어도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을 끊지 않으면 반드시 ‘마군 길’에 떨어져서 영원히 ‘깨달음’의 ‘바른 길’을 잃는다. 이 4가지 도둑이 백가지 ‘계율’의 근본이기 때문에 별도로 밝혀서 ‘생각’으로 범하지 않게 한다. ‘기억이 없는 것’이 ‘계’이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 ‘혜’이다. ‘계율’은 도둑을 잡는 것이고, ‘선정’은 도둑을 묶는 것이며, ‘지혜’는 도둑을 죽이는 것이다. ‘계율’의 그릇이 완전히 견고하고 ‘선정’의 물이 맑고 선명하며, ‘지혜’의 달이 사방을 비추니 이 ‘계‧정‧혜’는 진실로 만법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특별히 밝혀서 모든 ‘번뇌’를 없게 한다”라고 한 해석은 ‘능엄경’과 계환(戒環, ?~1182)의 ‘능엄경요해’의 내용이다. 

‘무루학’이란 ‘3학도’, 견도(깨달음)·수도(8정도, 10지)·무학도(성인) 중에 ‘번뇌’가 없는 ‘부동지’다. ‘경덕전등록’의 ‘무주(無住, 714~774)전’에서 “‘한 마음’도 ‘생’하지 않으면 ‘계‧정‧혜’를 갖추니 ‘하나’도 아니고 ‘셋’도 아니다”한 것이다. 게송으로, “영산회상에 어찌 ‘행’이 없는 ‘부처’가 있으며, 소림문하에 어찌 ‘거짓말’하는 ‘조사’가 있으랴”라고 한 것은 ‘영산’은 ‘석존’이 ‘법화경’을 설한 곳이고, ‘소림’은 ‘달마’조사가 면벽하신 곳으로, ‘교종’과 ‘선종’ 모두 ‘계정혜 3학’이 근본인 것을 밝힌 것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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