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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수행 김신희(53)-상

기자명 법보

어머니 여읜후 아버지와 서예
반야심경 병풍 제작 서원·결실
경전 원문 외우며 신심도 증장
다른 경전 사경 원력갖고 수행

김신희

자식의 진학을 위한 간절함으로 부처님께 기도를 시작하게 됐다. 진정 간절함의 크기에 비해 진실한 기도를 했는가 돌이켜보면 뉘우칠 만하다. 여러 번의 진학 실패로 괜한 원망을 하면서도 내 나름의 최선의 방도가 기도라 여기면서 또 부처님께 의지했다.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고 내 자식 일이 꼭 진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기에 기도는 이어졌다.

그 와중에 급성암으로 어머니께서 세연을 다하시게 되었고, 49재를 대광명사에서 지냈다. 장례식장에서부터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간절히 해주신 스님과 불자님들의 열의에 깊은 감명도 받아 나 역시 절에 가서 법회에 동참하는 일이 평소보다 더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혼자 되신 아버지와 함께 주민센터에서 서예 강좌를 듣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있어 어머니를 먼저 보내드린 그리움과 우울함을 그럭저럭 달래던 차 갑자기 코로나19가 세상을 온통 지배하는 듯한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와 나는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이 시련을 이겨 낼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서예관련 작품을 검색하다가 ‘반야심경’이 쓰인 병풍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마침 어머니의 기제사가 다가오는 몇 달 전의 시기였다. 이참에 아버지께 반야심경 서예 병풍을 만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권해드렸다. 

270자의 해서체 한자는 아버지로선 주민센터의 불과 4개월 수강만으로는 사실상 엄두를 내지못할 실력과 글의 양이었다.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다들 연로하신 아버지께 오히려 건강에 피해가 된다고 만류하기도 했다. 나 역시 옆에서 지켜보는 내내 아버지께 고통만 드리는 건 아닌지 무모한 일이 아닌지 조마조마한 마음과 긴장감으로 코로나19 이상의 걱정 반 두려움 반의 심정이 되어 두 달 동안을 전전긍긍하며 보내야 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아버지께서는 끝내 수십 번의 연습과 집중, 그리고 무한의 반복으로 불과 두 달 만에 반야심경을 쓰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의 부인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반야심경 병풍이 완성됐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실상 나의 신행은 한글로 반야심경을 보고 쉽게 따라 읽어 내려가기만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쓰신 반야심경 병풍의 교정을 맡길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경전의 원문대로 제대로 쓰였는지 병풍의 완성도를 점검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 되었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병풍 교정을 봐 드리기 위해서라도 반야심경 전문을 암송해야 했다. 

신심 깊은 불자님들께서 들으시면 제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반야심경도 외우지 않고 절에 다녔단 말인가 하시며 경책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부끄럽지만, 그동안에는 반야심경조차 외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법회에 동참하면 쉽게 보고 읽을 수 있는 경전이었고,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채 무작정 암송하는 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반야심경은 이제 필수 암송 경전이 되었다. 하루를 꼬박 투자하니 단숨에 경전이 외워졌다. 내친김에 아버지의 병풍을 보며 짧게 외운 실력으로나마 한 자 한 자 점검했다. 예상대로 아버지께서 쓰신 반야심경은 완벽했다. 그래도 딸이 되어 아버지께서 쓰신 반야심경을 점검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감사했다.

이후 아버지께서는 한 폭의 족자에도 반야심경을 쓰실 수 있게 되었다. 또 이사한 지인에게 직접 쓰신 반야심경을 선물까지 하시면서 보시의 기쁨도 나누시게 되었다. 수십 번 반야심경을 쓰고 또 쓰시면서 서예 실력도 향상되신 것은 물론이다. 이제는 반야심경과 더불어 다른 경전도 사경해 보겠다는 원력도 갖게 되셨다. 이러한 아버지의 활동은 말 그대로 정진이셨다. 그런 아버지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나도 반야심경 한 자 한 자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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