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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도와 아시아에 사리 신앙을 전했던 아소카왕 이야기

근본팔탑 중 7기 열어 인도 전역에 불사리 봉안

인도대륙 통일한 폭군, 불교에 귀의한후 오로지 전법에만 몰입
불사리 신앙 세계적 형성 지대한 공헌…동북아에 전설로 남아
삼국유사 ‧월인천강지곡 등에 신비로운 전륜성왕으로 기록 돼

막고굴 98굴 팔만 사천 탑 설화 벽화. 통로 천정부 벽화로, 아육왕의 고사를 그린 불교 감통화의 하나다. 나한이 해를 가릴 때 팔만 사천 탑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고 다비 후 나온 한 말 여덟 되의 사리는 우여곡절 끝에 골고루 나누어져 8기의 탑에 봉안되었다(이를 ‘근본 팔탑’이라 하는데, 8탑이 아니라 9탑, 혹은 10탑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한동안 이 탑들을 중심으로 사리신앙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리신앙이 인도 전체로 볼 때 과연 보편적 현상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사리 혹은 그를 담은 탑에 직접 경배하여야 하는데, 단 8기의 사리탑만 가지고서는 사리신앙이 확산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리신앙이 인도 전역으로 퍼지게 된 데는 아소카(Asoka, 재위 기원전 273~232) 왕의 덕이 컸다. 그는 마우리아 왕조의 세 번째 임금으로 그때까지 여러 나라들이 군웅할거 하던 인도 대륙을 통일한 군주다. 성격이 난폭해 왕위를 차지하고 통치하면서 갖은 잔혹한 짓을 저질렀고, 그가 일으킨 통일전쟁 과정에서도 숱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이런 행위를 뼈저리게 후회하고는 기원전 260년 무렵, 불교에 귀의해 돈독한 불교도가 되었다. 이후 불교의 자비와 불살생, 비폭력의 실천을 강조하는 내용을 새긴 석주와 불탑을 세우는 등 남은 생애를 불교 전법에 몰입하였다. 인도 전역에 산치 대탑 등 그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물론이다. 

아소카 왕의 활동 중에서 사리신앙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것은 8만4000기의 탑을 세운 일이다. 석가모니 사리를 봉안한 근본 팔탑 중 7기를 열어 얻은 불사리를 잘게 나누고, 전국 각지에 탑을 짓고 봉안토록 한 것이다. 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약 250년이 지나 이루어졌던 이 일은 불교의 전파, 전국적 교단의 형성 등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 팔만 사천의 탑은 인도 전역에 골고루 분포함으로써 그때까지 미미했던 사리신앙이 본격적으로 발전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또 아소카 왕은 인도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불법을 전하겠다는 포부에서, 불사리를 포함해 불상이나 경전 등을 동서남아시아 등지까지 전했다. 사리신앙의 역사에 있어서 그만큼 큰 역할을 한 사람을 다시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하여 처음엔 폭군의 대명사였으나, 불교에 감화되어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  훗날 ‘잡아함경’ ‘아육왕경’ 같은 경전에는 전륜성왕으로 비견되었다. 기록에는 아육왕(阿育王), 아수가(阿隨迦) 또는 무우왕(無憂王) 등으로 나오는 그는 팔만 사천 탑 중 19기를 중국에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처럼 중국에서 특히 많은 존경과 관심을 받았다. 나아가 불교 흥륭의 훌륭한 롤 모델로도 여겨졌다. 불교를 크게 진작시킨 양 무제 소연(蕭衍)이 “동방의 아육왕”이라 불린 것이 그 한 예다. 또 불교 전설이나 설화에서도 중요한 소재가 되었는데, 특히 그의 건탑(建塔) 일화는 거의 신화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한 아라한이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사이, 아육왕이 천신들을 부려 순식간에 팔만 사천 탑을 세웠다는 전설은 돈황석굴 벽화의 가장 인기 있는 소재 중 하나였다. 또 불지(佛指)사리로 유명한 법문사 사리탑같이 중국 곳곳에 그에 관련된 유적과 전설이 가득하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아육왕의 팔만 사천 탑 이야기에는 전설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기도 한다(오중철, ‘불법이 강남에 이르다-아육왕 탑상’ ‘법보신문’ 2017년 2월 14일). 

중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도 역시 아육왕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한다. ‘삼국유사’에 ‘황룡사 장육상’ ‘요동성 육왕탑’ 등 2장에 걸쳐 아육왕 이야기가 비중 있게 기록된 것은 그만큼 그의 전법활동이 감명 있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요동성 육왕탑’은 아육왕의 팔만 사천 탑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뭇 신비롭게 묘사되기도 했다. 

“육왕(育王)이 귀신의 무리에게 명하여 9억명이 사는 곳마다 탑 하나씩 세우게 하여 염부계 안에 8만4000기를 큰 바위 가운데 숨겨두었다 한다. 지금 곳곳마다 상서가 나타남이 한둘이 아님은 이 때문이다. 진신사리의 감응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삼국유사’ ‘황룡사 장육상’ 아육왕이 금과 철로 삼존상을 조성하려다가 끝내 실패하자, 재료와 모본 불상을 배에 실어 인연 있는 나라에 닿도록 떠내려 보냈다. 이 배는 700년 뒤에 신라 울산항에 닿았고, 신라에서 삼존상을 만들어 황룡사에 모셨다는 전설이 전한다.

아육왕이 귀신을 부려 세상에 불탑을 가득 세웠다는 이 이야기는 숭유억불의 시기였던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다. 1459년에 한글로 간행된 석가모니의 일대기인 ‘월인석보’ ‘8만 4천 사리탑 조성 1’에도 등장하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아육왕이 사리탑을 세우려 무리를 데리고 왕사성에 가 불탑 중에 있는 사리를 꺼낸 다음 다시 다른 일곱 불탑에서도 사리를 꺼내어 바다 용왕이 사는 나마촌에 갔다. 아육왕이 이곳의 탑에서도 사리를 꺼내려고 하니, 용왕이 나와 ‘들어오십시오.’ 청하므로 왕이 배를 타고 용궁에 들어갔다. 왕이 용에게 ‘사리를 구하여 공양하고 싶소.’ 하니, 용이 나누어 주거늘, 귀신들이 각각 사리를 모시고 사방으로 나가 탑을 만들었다.”

아육왕이 귀신과 용왕을 부려 사리를 찾고 또 바다나 험한 산에 사리를 다시 간직했다는 설정 등이 흥미롭게도 앞서 본 ‘삼국유사’ ‘요동성 육왕탑’과 서로 많이 닮았다. 조선시대 한글 버전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에서 아육왕의 행적이 전설화 하여 불교 대중에게 지속적이고 다양하게 전해진 일면이 엿보인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육왕이 우리나라에 와서 금강산에 탑을 세웠고, 고흥 천관산 탑산사 뒷산의 돌기둥은 바로 아육왕이 세운 석주이며, 고흥 천등산 금탑사는 아육왕의 불탑 건립 고사를 기리기 위한 절이라는 등등, 우리나라 명산과 사찰에 아육왕의 전설은 가득 묻어 있다. 여기에 울산 동축사(東竺寺)는 서축(西竺, 인도)의 아육왕이 배로 보낸 삼존불상을 봉안하기 위해 창건했다는 ‘삼국유사’ 기록까지 읽다보면, 어쩐지 이런 이야기들이 꼭 전설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사리신앙이 동아시아 전역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이 오로지 아소카왕 혼자만의 힘 때문은 물론 아니다. 갖은 고난을 무릅쓰고 인도나 중국에서 불사리를 가져온 여러 이름 모를 스님들과 개인들이 진정한 주인공이다. 그래도, 오늘날 불사리 신앙의 세계적 형성은 아소카왕의 팔만 사천 탑 건립에 영향 받은 것도 분명하다. 그러자 묵은 의문 하나가 새삼 떠오른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어떻게 그 많은 불사리가 전할 수 있었을까?” 아육왕 덕분이었을까?

신대현 능인대학원대학 불교학과 교수 buam0915@hanmail.net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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