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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최영재의 ‘새 달력’

기자명 신현득

어머니가 새 달력에 표시한 두 날짜
6‧25와 아버지 납북 잊지 말잔 결의

아버지 없이 2남 1녀 키워낸
엄마는 6‧25 피해자 모범여성
총살형당한 아버지 소식에도
강한 맘으로 올곧게 자녀교육

6·25의 원인은 얄타회담에서 시작된다. 2차 대전 종전 몇 달 전인 1945년 2월 미·영·소 3거두가 크림반도 얄타에서 회담을 갖고, 소련 참전을 결정했다. 약아빠진 소련은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진 이틀 후인 8월8일에 참전, 15일 일본 항복까지 1주일 동안 전쟁을 한다며 어정대기만 했던 것이다. 

소련의 참전이 없었다면 우리의 분단이 있었을 리 없다. 그래서 뜻있는 지사들은 얄타 3거두 모임을 ‘얄타 실패회담’으로, 우리의 분단을 ‘20세기의 죄악’이라 이름 지어 부른다. 피를 토할 일이다. 6·25도 북이 소련의 무기를 들고 일으킨 전쟁이었다.

이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었던가? 지난 6월7일, 6·25 70주년을 앞두고 법보종찰 합천 해인사에서 6·25 희생자 군인·민간인 138만명에 대한 천도재를 올렸다.  

6·25 그때에 최영재라는 아기가 있었다. 아기는 네 살이었다. 아버지는 화가에 작가인 경향신문 최영수 국장. 나이는 39세. 특히 삽화가로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화락하고 단란했던 가정에 비극이 닥친 것이다. 아버지의 납북이었다. 7월12일 저녁 내무서원 3명이 영재네 집에 와서 가족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납치해갔다. 북으로 끌려가던 납북인사들이 황해도 해주에 이르러 25~26명이 집단탈출을 하였는데 이튿날 영재네 아버지는 붙잡혀서 탈출을 주동한 혐의로 동료 4명과 함께 총살을 당했다. 가정의 비극이요, 민족의 비극이었다. 

공산군이 납치해 간 정계·언론계‧예술계‧학계의 인사는 10만명이나 되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네 살 영재는 자라 선생님·교장이 되었고, 시인이 되었다. 영재 시인의 동시 한 편을 살피면서 6·25 70년을 돼 새기기로 하자. 


새 달력 / 최영재

엄마는 새해 달력을 
벽에 걸고 제일 먼저 

6월 25일 
7월 12일에 
빨간 크레용으로 
가위표를 치신다. 

“엄마 해마다 왜 그래?”
“이 두 날은 절대로 잊지 말아라.” 

행복한 가정 산산조각낸 그놈의 6·25
아버지가 강제 납북당하신 7월 12일. 

최영재 동시집 ‘우리 엄마’(2020)에서

 

시인의 어머니 김정옥 여사가 시의 주인공이다. 새해가 돼 새 달력을 벽에 걸 때면, 어머니가 두 날짜에 빨간 곱표를 한다. 온 가족이 6·25와 아버지가 납북되던 날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일은 해마다 계속되었다. 어머니 김정옥 여사에게 이와 같이 강한 결의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 없이도 자녀들 2남 1녀를 훌륭히 기르고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6·25 피해자의 모범 여성이셨다. 

아버지 납북 이후 어머니는 고향인 경기도 안성으로 내려가 삯바느질과 참기름 장사를 하며 연명했다. 산에 가서 종일 땔나무를 하면서 “아비 없는 내 새끼를 잘 길러야지”하고 마음을 다지고 다졌다 한다. 그러던 어머니는 지방공무원이 되었다. 자녀들을 기르기 위해 독한 마음이 되어야 했다.

아버지가 총살형을 당했다는 것을 안 것이, 납북 10년이 훨씬 지난 1962년 4월2일의 동아일보 기사에서였다. 친척이 기사를 보고 모두 와서 울먹이는데 어머니 김정옥 여사는 울지 않았다. 기사에서 남편의 이름을 확인하고 정신이 아찔해서 쓰러지는 것을 옆집 진태 엄마가 잡아주었다 한다. 그래도 6·25피해 모범여성 김정옥 여사는 울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같이 독한 맘으로 6·25를 생각하자는 뜻이었다.

시의작자 최영재(崔英哉) 시인은 서울 출신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1978). 동시집 ‘마지막 가족 사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동시집 ‘우리 엄마’(2020)는 6·25로 납북된 아버지의 일과 고생하며 3남매를 길러주신 고마운 어머니를 추모하는 내용이다. 이주홍 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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