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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강제규의 ‘은행나무 침대’(1996)

환생 소재로 천년의 슬픈 사랑 담아내다

환생은 ‘몽중인’ ‘리틀 부다’ ‘번지점프를 하다’로 이어지는 소재
황장군, 미단 독점하려 종문 처형…소유만을 사랑으로 이해해
미단 월식 동안 종문 만나 “침대가 되어 170년 떠돌며 기다려”

‘은행나무 침대’는 환생을 소재로한 불교영화의 계보에 우뚝 서 있다. 사진은 영화 ‘은행나무 침대’ 스틸컷.

강제규는 ‘게임의 규칙’과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의 시나리오 작가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이미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흥행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 출발은 ‘은행나무 침대’였다. 강제규 감독은 “여관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침대를 거쳐 간 수많은 남녀를 소재로 한 영화”를 구상하였다. 이 모티프는 궁중 악사와 공주의 천년에 걸친 사랑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은행나무로 환생을 하고 장인에 의해 침대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은행나무 침대’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충무로에서 천년의 사랑이라는 두 남녀의 이야기로 회자되면서 윤회와 환생을 주제로 한 불교적 요소는 뒤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환생을 소재로 한 불교영화의 계보에 우뚝 서 있다. 환생은 천년의 사랑을 담은 ‘몽중인’과 환생한 지도자를 찾는 ‘리틀 부다’와 연인이 학생과 선생으로 나타난 ‘번지점프를 하다’로 펼쳐진다.

‘은행나무 침대’는 환생으로 인한 천년의 사랑을 담아냈다. 여기서 사랑은 남녀의 이성애이자 애욕이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분리 상태를 극복하여 고독이라는 감옥에서 떠나려는 것’으로 규정했다. 분리 극복은 축제나 성적 도취로 나아간다. 또 다른 형태가 사랑이다. 사랑은 특정 대상에서 시작하여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세상까지 사랑하는 방향으로 확장될 때 건강하다. 하지만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성애가 가장 강렬하며 이는 ‘다른 한 사람과 결합하고자 하는 갈망’이며 상대에 대한 배타성과 폭력성을 지닌다. 성애는 단지 한 여성 혹은 한 남성을 원하는 단수형이며 복수의 대상을 불허한다. 궁중 악사 종문(한석규)는 미단(진희경)을 사랑한다. 미단도 종문을 사랑하여 단수형 사랑의 필요 충분요건이 충족되었다. 황장군(신현준)도 미단을 사랑하지만 미단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황장군은 미단의 마음을 얻지 못한 원인을 종문의 존재로 인한 사랑의 불가능성으로 이해하고 종문을 처형한다. 황장군은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존재의 사랑 대신 자신만 독점하려는 소유의 사랑만을 사랑으로 이해한다. 종문은 ’물처럼 부드럽고 칼처럼 강렬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가야금 연주자이며 천상의 소리‘를 현에 담아낸다. 종문은 사랑의 실현 불가능성을 죽음을 통해 가능성으로 열어간다. 그는 분신 같은 가야금을 바다에 던지고 ‘죽어서 그대 그림자 되어 다시는 이별하지 않으리’라는 결단을 하고 자살을 감행하려 한다. 그 때 미단 공주가 해변으로 달려오지만 두 사람의 만남 직전에 황장군의 칼날은 종문의 목을 가른다. 황장군은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는 방해자이며 미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천년 동안 갈구하는 인물이다. 황장군은 ‘천년을 하루 같이 한 여자만 사랑하는 남자’이다. 그는 ‘편지는 항상 수신인에게 배달되듯이 사랑도 대상에게 전달되기’를 갈망한다. 그의 사랑은 소유의 사랑이라는 치명적 한계를 갖고 있으며 미단의 마음과 영혼을 힘으로 얻으려는 헛된 집착에 사로잡혀있다. 그는 결국 미단에 대한 사랑의 응답을 얻지 못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전환된다. 그는 세상이 나를 외면하였으므로 내가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나서는 질투와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한다.  

사진은 영화 ‘은행나무 침대’ 스틸컷.

질투에 의한 복수는 매로 환생한 황장군의 저주이다. 미단과 종문은 은행나무로 환생하여 나란히 바라보면서 수많은 세월을 함께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언어 중에 항상 곁에 있겠다는 다짐이 으뜸이다. 이들은 은행나무로 환생하여 두 그루가 서로 곁에 있으면서 세월을 함께 한다. 매로 환생한 황장군의 저주는 한 그루 은행나무를 벼락으로 고사시킨다. 황장군은 또 다시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는다. 은행나무는 장인에 의해 종문과 미단의 얼굴을 새긴 침대로 거듭난다. 미단은 은행나무로 환생하고 다시 침대라는 예술로 거듭 환생하여 종문을 기다린다. 종문이 환생한 수현은 버려진 은행나무 침대를 작업실로 들여놓으며 다시 미단과 재회한다.

미단은 수현을 바라보지만 그녀를 통과해 간다. 수현은 강의실 복도와 도로에서 그저 미단을 통과해간다. 사랑은 대상의 마음과 장점을 알아보는 것이다. 수현은 미단의 마음을 바라볼 수 없지만 미단은 종문(수현)을 바라본다. 여기서 영화는 환생한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가라는 문제에 응답해야한다. 미단은 황장군에게 종문을 단 한번만 만나게 해주면 그가 원하는 것을 수용하겠다고 제안한다. 황장군은 월식이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만남의 시간을 제안한다. 수현은 연인 선영(심혜진)의 기를 빌어 모습을 드러낸 미단과 월식 동안 만난다. 악사 종문과 미단 공주는 천년의 시간을 건너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수현(종문)과 미단은 침대 앞에서 재회한다. 미단은 종문에게 침대가 되어 170년을 떠돌며 기다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단은 ‘당신이 어디에 무엇이 되든 당신 곁에 영원히 언제나 내가 있을 것’이라고 변함없는 마음을 전한다. 그들의 만남은 카메라가 360도 팬하면서 손과 포옹으로 천년만의 만남을 담아낸다. 월식이 끝나자 미단은 연기로 사라지고 종문도 손을 뻗지만 줌 아웃되어 미단으로 멀어져 간다. 황장군은 다시 나타나 침대를 향해 미단에게 나올 것을 요청한다. 수현은 미단이 내 마음 속에 있다고 말한다. 눈앞의 실체를 잡으려는 황장군과 마음의 합일로 사랑을 완성하려는 수현(종문)의 거리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미단은 침대의 불로 사라지고 황장군도 미단을 따라간다. 황장군은 윤회의 순환 고리로 들어간다. 수현은 천년의 사랑도 마음에 정박하고 선영과 현재의 사랑도 마음의 바다로 받아들인다. 백 가지 강이 모여 하나의 바다를 이루고 수많은 전생의 사연이 모여서 마음의 바다가 존재한다. 천년의 사랑도 일년의 사랑도 마음의 바다에서는 모두 하나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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