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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단원 김홍도의 ‘서당’

기자명 손태호

회초리 들 수밖에 없는 훈장님의 안쓰러움

최근 아동학대 뉴스 자주 등장하며 떠오른 김홍도 대표적 풍속화
조선시대 훈장님 회초리, 사회로부터 필요성 인정받은 교육방법
훈육 전제는 사랑이지만 학대는 증오 기반으로 한다는 점서 달라

김홍도 作 ‘서당’, 27㎝×22.7㎝,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作 ‘서당’, 27㎝×22.7㎝,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요즘 심심치 않게 아동학대에 관한 뉴스가 자주 등장합니다. 부모라는 사람들이 자녀를 굶기고 때리는 것도 모자라 쇠 젓가락을 불에 달궈 지지고 여행가방에 가두거나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니 그 잔인함과 폭력성에 제 귀와 눈이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어찌 자기 자식을 짐승보다 못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으로서 정말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학대가 세상에 알려져 경찰에 잡혀온 아동학대자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는데 왜 그렇게 몹쓸 짓을 했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아이가 못된 짓을 해서 고치려 매를 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훈육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만 학대는 증오를 기반으로 하므로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사랑의 매’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입니다. 사실 이렇게 유명한 그림은 교과서에도 나오기 때문에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유심히 보지 않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꼼꼼히 감상하기보다는 스치듯이 감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김홍도의 풍속도는 보면 볼수록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주는 그림들입니다.

그림은 헐렁한 유복의 검은색 허리띠를 착용한 훈장 선생님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아홉 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습니다. 그림을 딱 보는 순간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서당의 책임교사인 훈장님과 종아리를 맞기 위해 대님을 풀며 울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 두 사람이 중심인물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있는 벼루 함을 찐하게 그려 그곳으로 먼저 시선이 가도록 했으며 그림 중심부에 배치했습니다. 훈장님을 먼저 살펴보면 유생관 옆으로 머리는 삐져나왔고 수염도 다듬지 못해 덥수룩합니다. 조선의 시골마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동네 서당의 약간 고리타분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한 훈장님입니다. 훈장님 앞에는 평범한 서탁이 있고 그 앞에는 방금까지 아이가 읽었던 책이 놓여 있습니다. 

한쪽이 접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방금까지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앞에는 주인공인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왼손으로는 눈물을 훔치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왼쪽 세운 다리 발목에 대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왜 울고 있을까요? 아마도 이 아이의 눈물은 서탁 앞에 높여 있는 가늘고 탄력 있어 보이는 매서운 회초리와 연관 있을 것입니다. 아이는 무슨 잘못을 했을까요? 

그 단서는 떨쳐져 있는 책에 있습니다. 서당의 교육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요 서책을 읽고 외우는 강독(講讀), 문장을 익히는 제술(製述), 여러 글씨체를 익히는 습자(習字)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은 바로 강독입니다. 매일 정해진 분량을 외워야 다음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외우지 못하면 외울 때까지 반복시켰습니다. 아마도 울고 있는 아이는 그 고개를 넘지 못했나 봅니다.

저는 울고 있는 아이가 회초리를 맞기 전인지 아니면 매를 맞은 후인지가 궁금했었습니다. 그 궁금함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회초리를 맞기 전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댓님이 아직 풀어져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확실한 이유는 훈장님을 등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서당에서는 전날 공부한 것을 외우는 복습이 공부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때 훈장님에게 등을 보이고 돌아서서 암기한 내용을 소리 내어 외우는데 등을 돌리고 앉아 외운다고 해서 배송(背誦)이라 합니다. 어제 배운 문장을 외워보라는 훈장 선생님의 이야기에 아이는 뒤돌아서기 마지막까지 책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이는 뒤를 돌아섰지만 제대로 외우지 못했나 봅니다. 결국 훈장님은 종아리를 걷으라 했을 것입니다. 옆에 놓인 회초리를 보니 눈물이 안 날수 없었겠지요. 그 아이를 바라보는 훈장 선생님의 표정에도 안쓰러움 묻어납니다. 비록 회초리를 들 수밖에 없지만 사랑하는 제자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모든 체벌이 금지되었지만 저의 학창 시절만 해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선생님의 회초리는 필수적인 훈육의 도구였습니다. ‘사서삼경’중 하나인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회초리로 교육의 형벌로 삼는다”라고 적혀있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훈장님의 회초리는 그 필요성을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의 모습도 재미있습니다. 무엇인가 답을 알려주는 듯한 아이, 고소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아이, 갓을 쓴 제법 나이 먹은 아이와 형의 옷을 입고 왔는지 옷이 헐렁한 아이  등 모두 다른 표정과 모습으로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를 쳐다보면서 웃고 있는 아이들은 이미 테스트를 마친 아이들일 것이고 책을 뒤적이는 아이들은 다음 차례에 배송을 할 아이들일 것입니다. 둥그런 얼굴과 올챙이처럼 표현한 눈은 김홍도 인물 표현의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이 아이들의 얼굴은 세상 누가 봐도 천생 조선의 아이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의 탁월함은 구성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둥그렇게 둘러 앉아 있어 자칫 답답해 질 수 있는 구도를 훈장님 왼쪽과 갓 쓴 아이 사이를 열어놓고 또 그림 좌측 하단을 공간으로 벌려놓아 시원스럽게 소통되도록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회초리의 방향도 그 흐름의 방향과 일치하게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어른들의 폭력에 의해 희생되는 아이들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참기 힘든 분노를 느끼곤 합니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매일 지옥 같은 생활을 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불쌍하고 안쓰럽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신라 때에는 경주 삼화령 부처님처럼 어린아이 모습의 부처님을 조성하기도하고 지금도 천진동자불을 많이 조성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미래입니다. 누구의 아이들이건 그들이 자라나 그들의 노동과 그들이 낸 세금으로 어른들은 수많은 혜택을 받고 살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 애, 우리 애 분별하지 말고 모두를 보호하고 아끼고 사랑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더 이상 아동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못된 어른이 없는지 모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입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thson68@hanmail.net

 

[1543호 / 2020년 7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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