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 이병두
  • 승인 2020.07.07 11:16
  • 호수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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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전쟁이 그렇듯이 제2차 세계대전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이었고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일어났고, 연합국과 추축국 양쪽 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였다. 일선의 전투 현장에 투입되는 군인들과 후방에서 보급을 책임지고 외교전을 펼치는 군과 민간 당국자들뿐 아니라 상대보다 더 빨리 신무기를 개발해야 하는 과학기술자들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여기에 더하여 적의 전략과 전술을 파악해내는 정보‧첩보전이 차지하는 위치가 더 커지고 있었다.

유럽 전선에서 프랑스가 육상 전투에서 독일에 밀리고 있었던 데에다 해군력 중심의 영국도 독일의 잠수함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전세가 연합국 측에 불리해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뒷날 ‘인류의 역사를 바꾼 천재 수학자‧컴퓨터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영국의 앨런 튜링이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컴퓨터를 개발한 덕분이었다.(앨런 튜링의 전기인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은 나중에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제작하는 바탕이 된다.)

앨런 튜링의 노력과 성과에 힘입어 영국은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거의 100%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어 군함뿐 아니라 상선과 여객선까지 무차별 공격하여 침몰시키고 있던 독일 잠수함을 무력화시켜 수많은 인명을 구해낼 수 있었고 해상 전투의 판도를 바꾸어 세계대전의 승리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 칭송받아도 모자람이 없었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중대외설행위’(동성애)로 조사를 받다가 1952년 3월31일에 유죄판결을 받은 뒤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결국 2년 뒤인 1954년 6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앨런 튜링이 영국과 세계에 기여한 공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당시 영국 총리 처칠도 그를 외면하였다. 긴 세월이 흐른 뒤인 2009년에야 영국 총리가 ‘1952~1954년 사이에 있었던 튜링의 재판과 처벌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고, 2013년 12월에는 영국 왕실이 튜링을 사후 사면하였지만 그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그가 이런 일을 겪지 않고 온전한 삶을 이어갔다면 인류를 위해 또 어떤 중요한 업적을 쌓아서 전해주고 갔을지 모르는데,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수많은 생명을 구한 천재수학자가 오직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핍박을 받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나·우리와 ‘다름(異)’을 ‘틀림(誤)’이라고 비난‧매도한 슬픈 역사는 비단 이단이라는 이유로 숱한 사람을 화형 시키고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서구의 기독교 사회에서뿐 아니라, 정도는 약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끝없이 이어져왔다. 다행히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추세로 바뀌어,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브라질‧아르헨티나‧콜롬비아 등 주요 가톨릭 국가들, 영국과 스웨덴‧노르웨이를 포함한 서구 여러 나라와 미국‧캐나다,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동성애자들의 혼인을 합법화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으로 전 세계에 ‘하라리 열풍’을 일으킨 유발 하라리는 최근에 출간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첫머리에서 동성애 배우자 이치크와 그 가족의 이름을 떳떳이 밝힌다. 1950년대 영국이라면 유발 하라리도 목숨을 유지하기 힘들었겠지만, 이제 이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목숨을 잃는 불행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게 세상이 바뀐 것이다.

부부 사이의 성행위도 간섭을 하는 등 개인의 자유와 권리 침해를 당연하게 여겼던 서양 중세의 기독교와 똑같은 ‘잘못된 확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일부 집단에서는 여전히 동성애라는 ‘다름’을 ‘틀림’으로 몰고 가며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앨런 튜링과 같은 피해자가 이 땅에서 나오지 않도록 함께 힘을 모아서 법과 규정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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