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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수행자의 결기

기자명 정원 스님

타인엔 따스하되 자신엔 타협 않던 칼칼한 스님

오래전 입적한 홍법스님 생전에
병 깊어도 계율 엄수 일화 감동
40년 뒤 후학에 등불로 살아나
스님다운 스님에 차 올려 예경

동진시대 혜원 스님(334~416)은 여산 동림사에 주석하면서 백련염불결사를 이끌었던 정토종의 개조이다. 그는 구마라즙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대승경전들에 대한 여러 의문점들을 질문하고 대답하였는데 이 편지를 모은 책이 ‘대승대의장(大乘大義章)’이다. 또한 불법은 왕법에 종속된 것이 아니므로 출가사문은 왕에게 예경하지 않는다는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을 적기도 했다. 스승인 도안 스님의 영향으로 계율을 굳건히 지킬 것을 강조하고 계율의 정비에도 힘을 썼다.

스님이 병상에 계실 때 제자들이 음식을 권하자 먹어도 되는 근거를 율장에서 찾아오라 하고는 자료를 찾는 사이에 입적하실 정도로 지계정신이 투철하였다. 아플 때는 미음이나 비시장(非時漿)을 오후에 먹을 수 있음을 몰라서 근거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수행자로써 지행일치의 삶을 보여 후학들에게 경책을 남긴 것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생을 멋지게 마침표 찍는 수행자의 결기와 후학들을 향한 스승의 지극한 애정에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오늘 우연히 한 스님으로부터 약 40년 전에 원적에 드신 홍법 스님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나이에 이미 세속의 몸을 벗은 비구스님의 삶은 흔적으로라도 스치거나 닿을 인연이 아쉽게도 내게는 없었다. 노비구스님께서 칼럼 잘 읽고 있다며 격려의 전화를 주시고 들려준 일화는 다음과 같다.

“선사이며 강사이며 율사였던 스님께서는 선원에서 참선도 하고, 통도사에서 학인들을 가르치고 주지소임도 살면서 대중과 함께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중병을 얻으셨다. 몸이 너무 쇠약해진 스님을 걱정한 몇몇 스님들이 몸을 보할 음식이라도 드리자며 은사이신 월하 스님을 찾아뵙고 의논을 드렸다. 월하 스님께서는 ‘중이 살다 인연 다하면 가는 것이지 계율까지 어기면서 더 살면 무엇 하겠느냐’라는 말로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병이 깊어진 스님께서 대중을 떠나 암자에 계실 때, 암주스님은 지켜보기 안타까워 약으로 드시라며 바지락국을 상에 올렸다. 스님께서는 처음에는 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상을 차려 올리자 입술에 대는 시늉만 하고는 눈을 피해 텃밭에 조용히 묻어 버렸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하다가 어느 날 말없이 암자를 떠나버렸다.”

준비해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니 차마 물리치지는 못하겠고, 그렇다고 평생 지켜온 소신을 병으로 인해 덥석 뒤집고 싶지는 않으셨기에 그리하셨을 것이다. 혜원 스님이 남긴 가르침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행적을 보이신 스님께서는 1978년 49세의 젊은 나이로 입적하셨다. 우리와 아주 가까운 시대를 사셨던 분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혜원 스님 일화보다 더 가슴 뭉클하였다.

선배스님들 사이에 회자되던 일을 말씀 몇 마디로 전해 들었으니 실제 상황은 다를 수 있겠지만 바지락국 놓인 밥상을 대하는 모습만 봐도 참 따스한 성품을 가진 분임을 알겠다. 또한 얼마나 철저하게 스스로를 단련하며 지행일치 하셨던 수행자인지도 단박에 느낄 수 있다. 굳이 아주 먼 옛날 중국으로 거슬러 갈 것도 없이 이 땅에서 같은 물과 공기를 마시며 살았던 한 수행자가 보여준 ‘타인을 향한 따스한 배려’와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칼칼함’이 그윽한 법향으로 솟아올라 40년 후 어느 후학의 마음에 등불로 살아나고 있음을 스님께서는 아실까?

스님에 대해 검색해 보니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참으로 ‘스님다운 스님’으로 살아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님과 같은 ‘수행자의 결기’를 지닌 출가자들이 절대 다수가 되는 세상을 발원하면서 향 사루고 한 잔의 차를 우려 예경 올린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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