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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제24칙 운거거산(雲居居山)

“산 속에 사는 게 딱 안성맞춤이지”

동산의 물음에 말려들지 않고
무심 경지 보여준 운거의 기개
산승 여법함은 분별·조작없는 삶

한 승이 운거홍각한테 물었다. “홍각스님의 가풍은 궁극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운거홍각이 말했다. “산속에 사는 것이 딱 안성맞춤이지.”

홍주 운거산의 홍각은 도응선사(?~902)로서 유주 옥전현의 왕(王)씨의 후손이다. 어려서 범양 연수사에서 수업하였다. 제방을 유행하다 취미무학(翠微無學)에게 참문하였다. 취미 문하에 있다가 예장현에서 온 납자로부터 동산양개 문하의 법석이 흥성하다는 말을 듣고 동산양개를 찾아가서 참문하였다.

동산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운거가 말했다. ‘취미에서 왔습니다.’ ‘취미의 교화방식은 무엇이던가.’ ‘취미 스님이 나한(羅漢)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고, 나한한테 공양을 올리면 공양물을 받으러 나한이 오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취미 스님은 저한테 매일 무엇을 먹느냐고 도리어 물었습니다.’ 동산이 말했다. ‘취미가 실로 그런 말을 했더냐.’ 운거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동산이 말했다. ‘작가(作家)를 친견한 것이 헛일은 아니었구나.’ 이후에 입실(入室)하여 정성껏 법을 묻고 정진하였다. 이에 동산이 실중(室中)에서 수좌의 소임을 맡겼다. 이것은 운거가 취미무학의 문하에 있으면서 착의끽반(著衣喫飯)하는 일상의 삶 가운데서 펼쳐지는 선풍을 몸에 익혀두고 있었음을 동산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였다.

본 선문답에서 승이 물었던 납승의 궁극적인 가풍이란 본래부터 전승해오던 가풍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것이 설령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며 피곤하면 잠을 자는 행위로서 납승의 깨침이나 보살행을 염두에 두고 질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정면으로 응대하여 만약 일구만이라도 말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군말이 될 것이고, 일구만이라도 말한 바가 없다면 그것은 망어가 될 것이다. ‘깊은 산에서 한가롭게 수행하는 것은 천룡과 제천이 같이 기뻐하는 바이고, 시끄럽고 번거로운 시장에서 수행하는 것은 부처와 조사도 염려하는 바이다’는 말처럼 수행의 여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물론이다. 벌써 이와 같은 상황을 알아차린 운거는 짐짓 승의 물음에 딴청을 부리고 있다. 벌써 승의 물음에 말려들지 않고, 단지 산에 살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느냐고 하여, 오히려 질문한 승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짓뭉겨버렸다.

구참납자의 경우에도 조용하고 한적한 산속에서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 가장 여법한 것이라는 운거의 말에 대하여 질문한 승이 그것을 알아차렸는지는 미지수이다. 운거도 굳이 승이 그것을 이해해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그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다행스럽게 운거의 삶을 부정하지만 않더라도 본전은 건진 꼴이다. 그것이 운거의 답변에서 찾아낼 수 있는 최소한도의 기특한 가르침이다. 그와는 달리 운거가 주석하고 있는 산세가 어떻고, 대중은 몇 명이나 되며,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렀고, 무슨 가르침으로 제자를 교화하며, 밥은 무엇을 먹고, 규범은 어떤 것인가를 따지고 묻는다면 그것은 가장 모자란 납자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 것이다. 운거의 삶은 이름 그대로 구름처럼 아무런 분별과 조작이 없는 삶인데도 그 가풍이 어떤 것인지 일구를 활용하여 묻고 있는 승의 모습과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운거에게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묻어나 있다. 산속에서 한가롭게 좌선수행으로 일관한다고 해서 단지 몸으로 좌선하는 형식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한번 크게 뒤집히는 경험을 통하여 심중의 번뇌를 벗어나서 호호탕탕한 무심의 경지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위엄이 풍겨난다. 또한 질문한 승에게 단지 차가운 바위에 이식된 잡초를 소중히 간주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승 자신이 진정 거듭나는 경험을 통하여 무심의 경지를 터득한다면 남쪽은 평지이고 북쪽은 언덕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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