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6. ‘3학’과 ‘3업 청정’

기자명 선응 스님

마음에서 계율 파하면 과실 생긴다

부동지 있으면 계율 절로 지켜
마군들은 말법시대에 치성해
정법을 어지럽히니 잘 살펴야
정법은 교법‧수행‧증과를 구족

전장부터 ‘신해행증(信‧解‧行‧證)’ 중에 ‘행증’을 설명했다. ‘수행’과 ‘증과’를 ‘3학(계율‧선정‧지혜)’으로 요약하면서, 이 장에서는 ‘마음’에서 ‘3업(三業, 몸‧입‧생각)’이 청정한 ‘심계(心戒)’를 설한다. 

39장은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3업’을 두호하지 않는다. 방일하고 게을러서 ‘타인’에게 쉽게 교만해져 ‘기량’을 겨루는 것이 ‘기본’이 된다”이다. ‘3업’이란 ‘몸’으로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을 행하거나, ‘입’으로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과 악한 말과 속이는 말을 하며, ‘생각’으로 ‘깨달음’이 없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해석은 “한번 ‘마음’에서 ‘계율’을 파하면 많은 ‘과실’이 함께 생한다. 한역율장 ‘비니모경’에서 ‘심계’란 ‘선정’과 ‘계율’이다.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선정’과 계합하기 때문에 ‘심계’를 증득한다”이다. ‘한 마음’ 생하지 않고 깊은 선정으로 ‘부동지’에 있으면 ‘계율’은 저절로 지켜진다. 

평하시길 “‘마군’들은 ‘말법’에 치성하게 된다. ‘정법’을 어지럽게 하니 ‘학자’는 자세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말법’이란 ‘잡아함경’ ‘오분률’과 남전(Pali) 장경의 ‘증지부경전’ ‘대보적경’ 등에서 설한다. 중국의 천태 2조 남악혜사(515~577)의 ‘서원문’에서 “정법(正法) 오백년, 상법(像法) 천년, 말법(末法) 만년”이라고 하는데, 북위 태무제(423~452)부터 ‘폐불’시대를 겪으면서 ‘말법’에 대한 방편으로 ‘정토교’가 선양되었다. 

규기(632~682)의 ‘법원의림장’에서는 “‘정법’이란 붓다의 ‘교법’ ‘수행’ ‘증과’가 구족되는 것이고, ‘상법’이란 ‘불교’와 비슷하거나 모양만 ‘불교’인 시대이고, ‘말법’이란 ‘불법’은 있지만 ‘수행’과 ‘깨달음’의 정법이 소멸한 시대다”라고 했고, ‘법화경’과 ‘대지도론’에서는 “‘오탁말세’에 아미타불(無量), 아촉불(不動)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3승(성문‧연각‧보살)’중생을 제도한다”라고 설했다. 

‘오탁’이란 첫째 ‘부처님’이 태어나지 않거나 ‘불법’을 ‘신‧해‧행‧증’할 수 없는 시대다. 둘째 ‘영원함’을 주장하는 ‘아집’과 ‘편견’에 의한 ‘법집’으로 ‘정법’이 멸하고 ‘유사불법’만 점점 더 생한다. 셋째 ‘탐진치, 태만, 의심’으로 인색하고 투쟁하는 시대다. 넷째 ‘인간윤리’가 없어 ‘인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덕’도 짓지 않는다. 다섯 째 전쟁과 전염병 자연재해와 재난 등으로 수명이 단축되어 ‘불법’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선종’에서 ‘정법’은 ‘공안’참구에 의한 ‘종사’의 ‘인가’를 받는 것이고, ‘말법’이란 ‘계정혜’의 수행과 ‘깨달음’이 없는 것이다.

40장은 “만약 ‘계’를 지키지 않으면 오히려 ‘문둥병’에 걸린 ‘여우’의 몸조차도 받지 못하거늘, 하물며 청정한 ‘깨달음’의 과위를 바라겠는가?”의 내용이다. ‘지지경’에서 “‘부처님’은 다 ‘지계’로 증득한다”고 한 내용으로, ‘지계’는 ‘선학자’의 근본이다. 

해석하시길 “‘계율’을 귀중하게 ‘부처님’과 같이 하면 ‘부처님’이 항상 계신다. ‘초계(草繫)’와 ‘아주(鵝珠)’와 같이 앞서서 행하고 인도해야 한다”고 했다. ‘불유교경주’와 ‘정행소집경’에서 ‘초계비구’가 도적을 만나 재물을 빼앗기고 풀 위에 결박되었으나 움직이지 않아서 풀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 ‘대장엄론경’에서 ‘아주비구’가 ‘보석세공가’의 공양을 받을 때에 도둑으로 의심을 받았어도 ‘거위’의 목숨을 위해서 밝히지 않았다. 즉 ‘계율’이란 ‘자비심’을 행하는 근원이다. 

41장의 “생사로부터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과 모든 ‘갈애’를 끊어야 한다”는 것은 ‘원각경’의 내용이다. 해석하시기를 “‘애욕’은 윤회의 근본이 되고, ‘탐욕’은 ‘생’을 받는 ‘연’이 된다. 부처님께서, ‘음탕한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은혜의 애착’에 한번 얽히면 사람을 끌어서 ‘죄’의 문으로 들어가게 한다. ‘갈애’란 애정이 지극하고 간절한 것을 말한다’라고 하셨다”는 것은 ‘능엄경’을 인용해서, ‘은혜’와 ‘애착’으로 ‘바른 길’을 잃지 말라고 경책한 것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