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만해 한용운 선사의 발원과 님의 침묵
34. 만해 한용운 선사의 발원과 님의 침묵
  • 고명석
  • 승인 2020.07.08 10:34
  • 호수 15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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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나라‧사회‧타자의 고통을 현실서 해결하기 위한 길 걸어
‘님의 침묵’은 중생제도의 길이며 고통 껴안는 자존의 길
그리운 것은 다 님으로 규정, 님 다시 맞기 위한 맹서‧발원
백담사는 만해 스님이 머물면서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 등을 집필해 만해사상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백담사는 만해 스님이 머물면서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 등을 집필해 만해사상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사람은 외계의 사물에 포로 되는 존재가 아니므로 만유의 절정에 서서 종횡자재 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번뇌는 보리가 되고 고통은 쾌락이 된다. 고통과 쾌락을 양거쌍망(兩去雙忘)하면 낙원 아닌 공간이 없고 득의롭지 않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고통과 쾌락’)

“계박을 피하고자 하는 소극적 태도, 독선, 포기, 도피도 다른 의미의 계박이다. 계박과 해탈은 타(他)에 있지 않고 아(我)에 있으며, 물(物)에 있지 않고 심(心)에 있다. 일체의 해탈을 얻으려면 자아를 해탈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입세(入世)가 출세(出世)고 출세가 입세라는 역설 곧 반상합도(反常合道)가 성립한다.”(‘자아를 해탈하라’)

위 내용은 만해 한용운이 그가 창간한 잡지 ‘유심’에서 쓴 글이다. 그는 고통의 차안 없이 쾌락의 피안은 없다고 했다. 고통과 번뇌와 마주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타자가 아프면 내가 아프다는 ‘유마경’을 우리말로 번역할 정도로 아픔과 번뇌가 치성한 이 세상에서 불국토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 일을 이루고자 그는 거리의 선사로서, 독립지사로서, 마음을 깨우는 시인으로서 역사를 걸머진다.  

만해(萬海, 1879~1944)선사는 조선왕조 붕괴와 외세의 침탈 한 가운데 그 혼돈의 와중에서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자랐다. 청장년 시절 그는 나라와 사회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민, 그리고 생사의 고통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1905년 27세 때 백담사로 출가한다. 그는 경전공부는 물론 선방 생활도 한다. 세계사적인 새로운 문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생사를 오가며 블라디보스톡, 일본, 만주를 여행하기도 한다.  

1911년 31세 되던 해 그는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체결한 한일불교동맹을 분쇄하고자 조선임제종 관장에 취임한다. 1913년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습을 타파하여 불교를 쇄신하고자 ‘조선불교유신론’을 펴낸다. 그는 이 책에서 불교의 이념을 평등주의(平等主義)와 구세주의(救世主義)에서 찾는다. 근세의 자유주의와 세계주의가 사실은 평등한 진리에서 나온 것이요, 이는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는 불성론(佛性論)에 근거한 불교의 평등 정신을 근대적 개념으로 한 재해석이다. 더불어 그는 평화를 강조했다.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읽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조선독립 이유서’)

만해는 불교의 구세주의를 이기주의의 반대개념으로 보았다. 바로 보살의 이타성. 이와 관련 그는 “‘화엄경’에 이르기를 나는 마땅히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하여 일체 세계와 일체 악취(惡趣) 중에서 영원토록 일체의 고통을 받으리라 하시고….”라고 강조한다. 내 한 몸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내는 것이 바로 구세주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라나 사회의 고통, 타자의 고통에 직면해서 그 고통을 이 현실에서 해결하기 위해서 지사요 선사요, 시인의 길을 갔던 것이다.

그가 1914년에 펴낸 ‘불교대전’도 불교정신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포교의 일환이었다. 한권으로 일목요연하게 불교 용어나 개념을 주제별로 정리한 이 책에서는 발심과 발원, 보살도, 만유의 평등, 수행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그는 통도사에서 1년 동안 대장경 6802권을 열람하고 400여 개가 넘는 경전에서 1741개를 인용한다.

만해는 1917년 오세암에서 참선하던 중 깨닫는다. 그의 깨달음은 무아와 유심에 대한 철저한 자기 확인이었다. 만해의 선은 산속의 선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생활선이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정신 수양의 대명사다. 그것은 마음을 닦는 선으로서 태산 같은 마음의 안정은 물론 마음의 정체를 밝혀 마음의 해탈을 추구한다. 나 자신을 묶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번뇌에 물들지 않고 그 번뇌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1919년 3‧1만세운동을 주도하여 3년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도 ‘조선독립의 이유서’를 쓰고 대다수 민족 대표들이 변절하였음에도 끝까지 독립지사로서의 길을 간다. 그는 우리 민족이 무엇보다 외세에 굴복당하지 않는 힘을 키워야 함을 강조한다. 바로 자존(自存)이다. 우리 자신의 게으름이 원수다.

그가 47세 때 남긴 ‘님의 침묵’(1924년)은 바로 중생제도의 길이기도 하며 고통을 껴안는 강인한 자존의 길이기도 했다. 그는 그리운 것은 다 님이라 했다. 부처님도 중생도 민족도 하늘의 별도, 어머니도, 여인도, 자식도 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그래서 그 님은 모든 타자로서 보살의 님이기도 하다. 그 님이 떠났다 해도, 님을 위한 길이라면 나는 그 님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그 님을 다시 맞이하기 위해 굳은 맹서를 한다. 발원을 한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중략)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님의 침묵’)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나룻배와 행인’)

님은 침묵 속에서 가끔 얼굴을 내 보인다. 침묵하지만 저녁노을 희미한 그림자의 알 수 없는 무언과 무자취의 미소로 나에게 속삭인다. 만해는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았으며 조직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찬 눈 맞으며 피어나는 한 송이 매화였다. 비와도 끄떡없는 파초였다. 흙탕물에 물들지 않은 연꽃이었다. 티끌 속으로 기꺼이 들어선다. 그가 바로 만해였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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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aha 2020-07-12 10:28:28
만유의 절정에서 종행 자재해야

비로서 번뇌는 보리가 되고
고통은 쾌락이 된다.

이 경구는 무진 장광설 입니다.

고통의 차안없이
쾌락의 피안없다.

구구절절 심금을 울리는 법비
행을 고뇌해본 사람은
역경의 심지에서 불굴의 의지를
가늠할터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란

일미 의 향기

아 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고면구관님
사람하고 공경합니다.♡

두손모아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