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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기자명 박사

외로운 자리서, 인드라망을 생각하다 

가족에 버려진 홀로된 주인공
세상 고독‧편견‧차별‧호의 경험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 했으나
실제론 촘촘한 인드라망 현장

‘가재가 노래하는 곳’

카야는 외롭다. 카야가 여섯 살 때 엄마는 습지의 판잣집과 구타하는 남편과 다섯 아이를 버리고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빠와 언니들도 차례차례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집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오빠 조디마저 어린 카야를 두고 집에서 도망쳤다. 오도가도 못하는 카야만 그곳에 남았다. 이웃도 없고, 그를 보호해줄 친구나 친척도 없는 카야. 부인과 아이들이 다 도망쳐버리자 잠시 개과천선하는 듯 했던 아버지 또한 어느 날 부터인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린 카야가 굶어 죽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학교는 단 하루 갔을 뿐이다. 유색인종에 못 배우고 가난한 카야에 대한 아이들의 멸시는 지독했다. 카야는 책 대신 습지를 읽었고 인간 친구 대신 갈매기를 사귀었다. 그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지만 마을의 사람들은 그를 ‘마시 걸’이라고 부르며 편견을 담아 뒷얘기를 해댔다. 카야를 돕는 것은 카야에게 홍합을 사고 보트의 기름을 파는 흑인 점핑과 그의 인심 넉넉한 부인, 그리고 오빠 조디의 친구인 테이트 뿐이었다. 테이트는 외롭고 겁 많은, 인간보다는 야생동물을 닮은 카야와 천천히 친해진 뒤 글을 가르치고 그림도구를 주었다. 카야는 자신이 훤하게 꿰뚫고 있는 습지를 책으로 읽고 그림으로 그리고 깃털을 수집한다. 카야의 세계는 테이트 덕분에 균형을 잡으며 완성되어가는 듯했다. 테이트가 대학에 가면서 카야를 버리기 전까지는. 

첫 실연의 고통. 그리고 이어 만나게 된 바람둥이 체이스 앤드루스의 배신. 카야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가는 현실 앞에 망연자실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카야는 더 큰 고통으로 자신의 고통을 덮어버리려고 낙엽같은 보트를 몰고 거대한 바다로 뛰어들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조류에 밀려 처음 보는 모래톱에 가 닿게 된다. 그곳에서 위안을 얻고 돌아갈 힘을 찾은 카야는 보트를 타고 출발하면서 다시는 이 모래톱을 보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닫는다. 조수와 급류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천국. 사실, 인연이 만드는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할 것이다. 

카야가 체이스 앤드루스의 살인범으로 지목되면서 벌어지는 재판의 풍경은, 사람들과의 접점 없이 극도로 외롭게 살아온 카야조차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카야에게 편견을 가지고 차별했던 대다수 마을 사람들의 반대편에는 호의를 품고 카야를 음으로 양으로 돌보려 했던 이들의 작지만 단단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어린 카야에게 몰래 거스름돈을 더 얹어주던 가게주인부터 카야의 작품을 사랑하고 옹호하는 지적인 편집자까지, 카야의 편은 한 명 한 명 모습을 드러낸다. 재판정은 이들의 온기로 채워진다. 

저자는 이 소설을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말했으나, 보여주는 풍경은 우리 모두가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있는 인드라망의 현장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온 오빠 조디는 카야에게 말한다. “사실, 사랑이라는 게 잘 안 될 때가 더 많아. 하지만 실패한 사랑도 타인과 이어주지. 결국은 우리한테 남는 건 그것뿐이야. 타인과의 연결 말이야. 우리를 봐. 지금은 이렇게 서로가 있잖아. 내가 아이를 낳고 너도 아이들을 갖게 되면, 그건 또 전혀 다른 인연의 끈이야. 그렇게 죽 이어지는 거지.”

이 책을 쓴 저자 델리아 오언스의 이력은 특이하다. 유명한 생태학자인 그가 아프리카에서 7년 동안 야생동물을 관찰하여 쓴 논픽션 세 권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그가 일흔 가까운 나이에 써낸 첫 소설이다. 카야가 살며 사랑하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갈라진 해안선 사이에 자리잡은 습지의 생생한 묘사는 그가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였기에 가능한 경지를 보여준다. 카야는 동물을 관찰하며 인간을 이해하고, 급기야 한 세계의 대변자가 된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한 아이가 자라면서 그려내는 그물망같은 세계. 사람들은 카야에게 배운다. 습지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육지와 바다를 어떻게 이어주는지.”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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