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인연  ①
13. 인연  ①
  • 박희택
  • 승인 2020.07.08 10:50
  • 호수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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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한 강물은 달을 담을 수 없다

부처님 덕행 공덕이 있어도
스스로 선업을 쌓아야 인연 
불보살 가호 청하기 위해선
가피의 조건을 갖춰야 가능

부처님 덕행의 공덕이 있다고 해도 부처님께서 출현하기 위해서는 선업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 ‘법화삼부경’의 개경인 ‘무량의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계정혜와 해탈과 지견(知見)에서 생(生)하고, 삼명육통과 도품(道品)에서 발(發)하며, 자비와 십력과 무외(無畏)에서 일어나고, 중생들의 선업을 인연하여 나오시네(衆生善業因緣出).” 또한 ‘법화삼부경’의 본경인 ‘법화경’에서는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방편품).

“그만두자, 사리불아!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제일 희유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은 오직 부처님과 더불어 부처님만이 모든 법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철저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니라. (중략) 사리불아! 부처님들께서는 때에 따라 적절히 설법을 하시는데, 그 뜻은 이해하기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수 없는 방편과 인연과 비유와 이야기로 모든 법을 설하시므로, 생각이나 분별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부처님들만이 아실 수 있는데, 왜냐하면 세존들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시기 때문이니라.”

‘육조단경’은 이 말씀의 끝부분인 ‘세존들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시기 때문이니라(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는 16자(한문)를 ‘정법(正法)’이라고 명명하고 있다(十六字是正法, 육조단경 참청기연). 법의 참모습은 부처와 더불어 부처만이 알 수 있는데, 이를 일대사인연이라 하고 있다. 이것은 중생들이 부처가 될 선업의 인연을 지어야 함을 강설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인연은 ‘조건’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시방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조건)을 갖추어서 존재한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이루어진다고 함은 이를 두고 말함이다. 원시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대기성분인 메탄, 암모니아, 수소, 수증기 등이 주체[因]가 되어 원시지구 환경이란 객체[緣]와 자발적으로 반응하여 아미노산 등 생체 관련물질을 합성하였다는 생화학자 오파린(A. I. Oparin)의 생명기원설도 불교 인연설의 과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인(因)’을 주관적 조건이라 하며, ‘연(緣)’을 객관적 조건이라 한다. 주관적 조건이라 함은 당체(當體)가 주체적으로 갖추는 1차적 조건을 말하고, 객관적 조건이라 함은 당체가 질료적으로 갖추는 2차적 조건을 뜻한다. 우유가 객관적 조건이라면, 이에 발효조건을 갖추는 것을 주관적 조건이라 한다. 이같이 주-객관적 조건의 화합(saṃgati)으로 우유가 버터로도 치즈로도 전환하게 된다.

따라서 주관적 조건을 1차적 조건(직접적 조건, primary cause)으로 부르기도 하고, 객관적 조건을 2차적 조건(간접적 조건, secondary cause)으로 부르기도 한다. 1차적 조건이 친인(親因)이라면, 2차적 조건은 소연(疎緣)이다. 1차적 조건인 동력인(動力因)이라면, 2차적 조건은 질료연(質料緣)이다. 질료연을 외연(外緣)이라 부르기도 하기에, 동력인은 내인(內因)이라 할 수 있다. 주관적 조건(인)과 객관적 조건(연)이 갖춰지면 새로운 생명이 역동하게 된다. 비록 인이 있다하더라도 연이 없으면 아니되고, 연이 있다하더라도 인이 없으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새로운 성취를 위한 불교의 기도 또한 불보살님에게 귀의하여 ‘~되게 하소서’라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주관적 조건)과 연(객관적 조건)을 원만하게 갖추어 가겠다는 자심서원(自心誓願)이어야 바른 기도법이 된다. 불보살님의 가호[加]를 청할 수 있을지언정, 이를 수지[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도행자의 인연 짓기 곧 조건 갖추기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저 달이 일천 강에 비치어도 탁한 강물은 달을 담을 수 없게 되는 이치는, 달이 비치는 가(加)와 강물이 받아 지니는 지(持)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에서이다. 불보살님의 가호와 기도행자의 수지가 합일(화합)되는 것을 ‘가지(加持)’라 하고, 특히 밀교에서는 가호(加護)보다는 이 용어를 선호하여 이렇게 올리는 기도를 가지기도(加持祈禱)라 부른다. 이러한 이치 또한 인연법에 기초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44호 / 2020년 7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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