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의 딱따구리처럼
겨울산의 딱따구리처럼
  • 이강옥 교수(영남대 국어교육과)
  • 승인 2004.08.10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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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수련회에 다녀온 뒤로 방안에서 좌선을 계속 해오다가 얼마 전 뒷산 비탈의 바위 위에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바위 위에 앉으면 여전히 먼 도로의 차소리, 공사장의 포크레인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 오지만, 그 자리에 앉기 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산 짐승들도 자신의 일에 충실



숲이 웅얼거리는 소리, 들쥐들이 찍찍대는 소리, 나뭇잎이 뒹구는 소리,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 내 발자국 소리에 날아간 새들은 내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시 가지 위로 날아들었다. 날다람쥐와 딱따구리도 다가왔다. 날다람쥐는 휘청거리는 가지들을 발과 꼬리로 잡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뭔가를 열심히 찾았다. 그는 자기 몸무게를 지탱할 가지의 굵기를 정확하게 감지했다. 딱따구리는 쉴새없이 나무껍질을 쪼았다. ‘딱딱딱’ 소리가 나더니 우루루 나무껍질이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날다람쥐가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고 딱따구리가 나무껍질을 쪼는 모양을 살펴보노라면 그들은 자기들의 일에서 드높은 경지를 이루고 거기에 몰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뿐만 아니라 땅을 기어다니는 개미나 땅강아지 등 산에 사는 뭇 존재들은 자기만의 일에 완벽하게 충실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나의 일에 서투르고 성실치 못한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였다. 나는 명색 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인데도 우리말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우리 글을 알맞게 구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의 소중한 시간을 잘라와서 허둥대지만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는 능숙하지 못하다. 나는, 가느다란 가지 사이에서 한번도 실수하지 않는 날다람쥐만큼도 날렵하지 못하고, 정확하게 나무 구멍을 찾아 쪼아대는 그 딱따구리만큼도 원숙하지 못했다.

그 산속 존재들에게 부끄러운 자가 어디 나 뿐이겠는가. 요즘 머리 잘 깎는 이발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고, 우리말을 잘하는 아나운서도 많지 않다. 가끔 빵을 잘 굽고 요리를 잘 한다고 화제가 되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화제가 된 것은 그들이 대학교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탤런트나 개그맨들 중에서 그 인기를 이용해 정치판으로 나간 사람들은 어떤가. 내노라 하는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대부분 대학교수가 된 것은 또 어떠한가.

이발사는 머리를 잘 깎아야 하고 아나운서는 모국어를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빵 굽는 사람은 빵을 맛있게 잘 만들어야 하고 요리사가 자랑해야 할 것은 그가 만든 요리가 사람들의 침샘을 한정없이 자극한다는 사실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일에서 최선을 다하여 완벽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자기 일에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거기서 어떤 경지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자기 일의 영역 안에서 더 높은 단계로 다가가기 위하여 고민하고 노력하기보다는 적당하게 일하는 듯 하다가 더 그럴싸한 일을 할 기회를 엿본다.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다른 어떤 권위나 권력, 우월감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이나 수단일 따름이다. 이런 풍토에서 진정한 전문가나 장인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이런 풍조를 떠올리니 저 산의 날다람쥐나 딱따구리에게 더욱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온갖 존재들이 제각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저 겨울산이 봄을 예비하는 희망의 공간이듯 새해에는 우리 사회도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에 충실하는 알찬 터전이 될 수 있을까.



이강옥 교수(영남대 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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