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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티베트 밀교와 한국의 딴따라

나팔 사용하는 티베트 ‘딴뜨리즘’ 조선 거치며 악사들 지칭하는 말로 전이

티베트 불교의례엔 ‘둥첸’ ‘두카스’ ‘캉링’ ‘걀링’ 등 관악기 쌍으로 사용
또 다른 관악기 ‘소라’는 산정 호수서 공급…중국엔 없지만 한국선 필수
고대 인도서 신성시 사용한 ‘음성의 공명’ 불교의 진언·다라니로 들어와

시가체 샤루사원의 불공 모습.

우리말에 ‘딴따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나팔을 불며 큰 북을 치는 티베트 밀교 의례와 관련이 있다. 실제 티베트에는 어떤 의식이든 나팔이 쓰인다. 해서 라싸에 있는 나팔 만드는 대장간을 찾아가 보았다. 대장간은 겔룩파 사원 군더링의 뒤에 있었는데, 사원 언덕에는 나팔 연습하는 곳도 있었다. 그때 듣기로 티베트에서 가장 나팔을 잘 부는 스님은 한 시간이 넘도록 소리를 끊지 않고 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만큼 티베트 스님들은 나팔 취주와 관련한 수행의 내공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의례에 쓰이는 관악기의 종류는 ‘둥첸’ ‘두카스’ ‘캉링’ ‘걀링’ 등이 있고, 이들은 대개 두 개씩 쌍으로 사용된다. 스님들의 행렬에 쓰이는 대형 나팔 두카스는 관대의 끝이 오목하고, 둥첸은 끝이 퍼져있다. 여러 지역을 다녀보니 두카스보다 둥첸을 많이 쓰고 있었는데, 관대가 벌어진 둥첸이 진동을 확산시키는데 효용성이 좋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은 나팔 캉링은 ‘다리 나팔’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사람의 대퇴골 뼈로 만들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캉링의 생김새를 보면 끝이 살짝 휘어져 있는데, 그 모양이 사람의 다리뼈가 관절에 닿는 부분과 닮았다.

요즘은 캉링을 동(銅)으로 만들어 쓰는데, 지공이 없으므로 하나의 음만을 낼 수 있고, 의례승이 등장할 때 사용하는 신호용으로 쓰인다. 걀링은 탕가가 올라갈 때나 지위가 높은 무승들을 모시고 나올 때, 그리고 불공이나 송경의식 때 분다. 이 악기는 태평소와 같이 혀를 끼워서 불며 나무 관대에 7개의 지공이 있기는 하지만 두음, 세음 정도로 단순한 음만을 반복한다. 악기 이름은 지역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어 둥첸을 ‘드방둥’ 혹은 ‘둥’이라고도 하고, 걀링은 꺄링, 캉링을 캉둥라고도 한다.
 

라싸 군더링 사원에서 연습 중인 스님들.

티베트 스님들에게 중요한 또 다른 관악기는 ‘소라’다. 바다가 없는 고산지역 여기저기서 소라를 부는 것이 신기하여 알아보니, 공급처가 산정 호수였다. 약 2억년 전 한 덩어리였던 지구가 7개의 대륙으로 찢어졌다가 어느 날 인도대륙이 위쪽 대륙과 합쳐지는 과정에 히말라야산이 치솟았고, 바다는 산정호수가 되었다. 남초, 암드록초, 판공초 호수를 갈 때마다 물맛을 보았는데, 예외 없이 간간하였다. 이러한 호숫가에 소라가 있었으니 그 옛날 티베트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기하였을까? 더 신기한 것은 중국의 행렬 음악에는 쓰이지 않는 소라가 한국의 궁중 행렬이나 사찰 시련 절차에 빠지지 않고 쓰이고 있어 이 또한 티베트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배웠던 불교의례와 범패는 중국 범패 중에서도 절제된 율조였다. 당나라 후기에 이르러 속강(俗講)과 도창(導唱)이 생겨났고, 불교의 대중화가 성했던 송대에는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거나[八相圖] 노래하는[設唱] 풍토가 생겨나면서 ‘부모은중경’과 같은 노래가 유행하였다. 그러나 본 연재 제7회 중국의 응문불사(應門佛事)에서 보았듯이 중국 스님들은 적(笛), 생황, 비파, 운라와 같이 부드러운 음색의 악기를 쓰지 금속성 나팔과 소라는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통일신라와 고려 초까지 이러한 모습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고려 후기에 들어 티베트 불교가 들어오자 의례 분위기가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중국식 의례에 비해 티베트 의례에서는 나팔을 사용하니 그에 수반되는 타악의 음량도 함께 커졌다. 북은 중국의 법기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나팔은 너무도 색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다보니 티베트 불교를 이르는 ‘딴뜨리즘’이 나팔을 이르는 말과 동의어로 소통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라싸 군더링 사원 인근 마을 대장간.

그렇다면 한국의 재장에서 불리는 금관악기 태평소를 ‘딴따라’라고 했어야지 왜 밤무대 악사를 딴따라고 하게 되었을까? 요즈음 트로트 열풍으로 딴따라 음색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어떤 때는 트럼펫 3대, 트롬본 3대, 색소폰 3대가 편성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지휘자가 직접 나팔을 불고 있어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 비해서 금관악기가 부각되고 있다. 금관악기가 3대씩 편성되는 경우 음악 전문가들은 2관 내지 3관 편성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는 악기를 조합할 때 음량과 음색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목관악기의 수에 따라 붙여진 오케스트레이션 명칭이다. 

‘오케스트라’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신께 제사를 올리는 단(壇)을 이르던 말이었고, 불교의 ‘만다라’도 브라만 제사에서 단(壇)을 이르던 말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를 악현(樂懸)이라 하는데, ‘악현’의 ‘현’자는 ‘메달 현’으로 일찍이 편종과 같은 체명(體明) 악기를 제례를 위한 최상의 악기로 여겨온 배경이 있다. 중국에는 기원전부터 수십 개의 편종을 크기가 다르게 매달아 연주하였는가 하면 각 제위에 따라 4방, 3방, 2방, 1방으로 수십 세트를 배치했다. 이러한 데에는 악(樂)으로 나라를 다스려온 악정(樂政)의 배경이 있다. 

오늘날 국제법으로 지정된 ‘440HZ=A’ 음고는 서양 오케스트레이션에 기인한다. 서양음악의 출발이었던 로마교회의 초기에는 성악만이 신을 찬양할 수 있는 유일한 소리였다. 교부신학의 대가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만약 제가 가사의 내용보다 곡조에 더 끌렸다면 벌 받을 죄를 지은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하였으니, 그들에게 음악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지 음률 그 자체는 아니었다. 이에 비해 고대 인도에서는 발성에 의한 진동 그 자체를 중시하여 ‘사브다비드야(Śabdavidya)’ 즉 성명(聲明)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음성의 공명을 통해 신과 자아가 하나 되는 ‘범아일여’의 경지를 추구하였고, 이러한 전통이 불교의 진언과 다라니로 들어와 있다.
 

라다크 헤미스곰파 ‘참’ 악사(樂師)들.

유럽에서는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기악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으니 중국의 악현에 비하면 천년 이상 후발주자다. 바로크 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악기가 동시에 울리는 것은 시끄럽고 정신없는 소리로 여겼다. 그리하여 같은 류의 악기만으로 합주하였는데, 이를 반영한 것이 바이올린 패밀리만으로 연주되는 비발디(1678~1741)의 사계다. 바흐(1714~1788) 시대에 이르러 평균율이 실용화됨으로써 악기 제작이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그러자 다른 종류의 악기들로 구성된 합주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 규모는 15~18개 정도의 악기였다. 

서로 다른 악기의 종합세트인 오케스트라는 18세기 중반부터 부각되었고, 여기에는 오케스트라의 아버지 하이든(1732~1809)이 있다. 에스테르하찌 공을 위해 연주하던 시기(1760~1770)의 하이든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약 24명의 합주 규모였지만 런던교향곡이 발표될 무렵(1790)에는 60명에 이를 정도였으니 하이든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얼마나 급속도로 확대일로에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 기세를 이어 모차르트(1756~1791)는 1781년 무렵에 80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구성한 악곡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어서 후세대인 베토벤은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을 2관 편성으로 썼다. 베토벤 말기의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향이 세상을 압도하였고, 바그너에 이르러서는 3관(100명), 4관, 스트라빈스키는 5관 편성으로 ‘봄의 제전’을 썼다. 이렇듯 유명 작곡가들의 오케스트레이션에 비추어 볼 때 트로트를 반주하는 악단은 나팔에 속하는 금관악기가 언밸런스에 가까울 정도로 많다.
 

라다크 헤미스곰파의 불공 모습.
캉링(좌)과 걀링(우)

악기의 쓰임과 구성에는 인류 진화와 자연환경의 영향이 크다. 티베트 의례에 나팔이 유독 많이 쓰이는 연유는 골짜기 너머에서 풀을 뜯는 양들을 불러 모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멀리 추정할 필요 없이 어린시절 보았던 그림 동화에 나팔을 불고 있는 목동들, 산악지대 유목민의 후예인 스위스의 길고 큰 나팔이 이러한 이유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왜 밤무대 악사들을 ‘딴따라’라고 했을까? 여기에는 언어의 사회 전이현상과 금관악기가 부각되는 트로트 반주와 밤의 문화가 맞물려있다. 귀한 음악을 공양하며 재를 지냈듯이 고려시대의 ‘딴뜨리즘’은 최고급 어휘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를 배척하는 조선시대에 불교의례 악가무가 민간화, 세속화되어 오다 대중가요의 초기 장르이자 금관악기가 부각되는 트로트로 인해 밤무대 악사들을 지칭하는 어휘로 전이되었다.

우리나라 스님들이 유일하게 연주하는 태평소는 인도의 쉐나이와 같은 악기다. 이 악기의 이름은 군대와 장군을 뜻하는 ‘세나’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 악기가 중국에 들어온 초기에는 쇄납으로 음사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불러왔다. 그런데 조선조의 종묘제례악에 무공(武功)을 기리는 음악에 쇄납을 편성하면서 이를 태평소라 하였으니 군대와 장수들이 태평세월을 지켜준다는 뜻이 담겨있다. 쇄납이건 태평소이건 스님들이 부는 금관악기를 지칭하는 이름인데, 그 쓰임을 보면 시련과 같은 행렬이나 바라춤을 출 때 연주하고 있어 티베트 불교의례에서의 용례와 같다. 이렇듯 한국 불교의례는 티베트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연성을 지니고 있는데도 그간 이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지내왔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45호 / 2020년 7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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