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제25칙 단하소불(丹霞燒佛)
26. 제25칙 단하소불(丹霞燒佛)
  • 김호귀 교수
  • 승인 2020.07.13 17:20
  • 호수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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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상 불태워 사리 찾고 있습니다”

단하 선사의 번뜩이는 선기
어떤 분별도 용납하지 않아
분별하는 마음을 잘라내면
시비번뇌가 명명히 사라져

단하화상이 추운 어느 날 절에 객승으로 묵었다. 불전의 나무로 만든 나한상을 땔감으로 써버렸다. 원주가 화를 내자, 이에 원주의 눈썹이 빠져버렸다.

단하천연(丹霞天然, 736~824) 선사가 낙경 용문의 향산에 있는 혜림사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몹시 추웠다. 그래서 법당에 안치했던 목나한상을 장작으로 삼아 군불을 지폈다. 그 모습을 본 원주는 어이가 없어서 꾸짖었다. “어떻게 목상을 불태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단하는 천연덕스럽게 주장자로 재를 뒤적이면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가 서 말 여덟 되나 나왔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지 확인해보려고 지금 목상을 불태워서 사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목상에 무슨 사리가 있겠는가.” “이 목상에서 사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두 목상마저 마저 태워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떤 승이 동산양개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깨쳤다고 들었습니다. 때문에 스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처럼 무더운 날에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동산이 말했다. “그래, 오늘 날씨가 무덥구나. 그래서 어떡하라는 것인가. 그대가 무덥다고 생각하면 서늘한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동산의 말을 듣고나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이제 서늘한 그곳이 어디인지를 몰라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가면 서늘하겠습니까.” “나는 이곳이 서늘한데, 그대는 그렇지 않은가.” 그 승은 할 말을 잊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추울 때는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래, 그대가 춥다고 생각하면 따뜻한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따뜻한 그곳은 어떤 곳입니까.” “춥지 않은 곳이다.” 이에 승은 무덥고 추운 곳 및 서늘하고 따뜻한 곳이 어디인지 도대체 분간할 수가 없었다. 똑같은 자신의 몸으로 춥다고 느끼고 무덥다고 느끼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긍정할 수가 없었다. 무더울 때 시원한 곳을 찾아가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추울 때 따뜻한 불을 가까이 하는 것도 또한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그러나 덥고 춥다는 것처럼 범부라든가 부처라든가 하는 분별심을 말끔하게 잊어버린다면 어찌 이러쿵저러쿵 시비번뇌가 일어나겠는가. 가까이 있는 것들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자칫 재앙이 몸에 닥치면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주는 노기탱천한 바람에 이후로 눈썹이 모두 빠져버렸다. 예로부터 올바른 도리에 대하여 수긍하지 못하고 화를 내면 눈썹이 하나씩 빠진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니 원주는 자신의 눈썹이 빠진 하소연을 어찌 단하에게 내뱉을 수 있겠는가. 어떤 분별과 도그마도 전혀 용납하지 않는 단하의 번뜩이는 선기야말로 마치 홀로 길을 가다가 깜깜한 밤에 얼어붙은 은산철벽을 맞이한 꼴이다. 바로 이와 같은 경우에는 삼라만상이 고요하게 가라앉고 사방 만 리가 온통 어둠으로 가득하다. 날씨는 추워서 물이 얼어붙고, 추운 기운에 몸에 들어 연신 고개를 흔들어 주지만 효과가 없다. 바위는 이끼가 끼어 있고 인적도 없는데 꽉 닫혀 있는 사립문 안에는 날아다니는 새도 내려앉지 않는다. 그러니 감히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 수도 없고, 이리저리 추측조차 할 수가 없다. 범부다 부처다 하는 분별계교가 단절된 곳에서는 지성(知性)의 불[火]이야말로 진공(眞空)이고 요성(了性)의 무집착[空]이야말로 진화(眞火)가 된다.

이로써 진공과 진화가 법계에 충만하고 항하사처럼 많은 온갖 행위에 빠짐없이 상응할 수가 있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요요하고 명명하여 온갖 것에 어둡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마치 곡조가 고상하여 사람이 따라부르기 어려운 노래[曲高和寡]처럼 옳은 것[是]을 그릇된 것[非]으로 만들어버리는 꼴이다. 대저 동쪽을 향해 걸어가면 서쪽으로 가는 평탄한 길을 볼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니 어부집에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것으로 그 능력을 판단한다는 것은 전혀 괴이할 것이 없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45호 / 2020년 7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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