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응여시청정심
26. 응여시청정심
  • 현진 스님
  • 승인 2020.07.13 17:36
  • 호수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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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머물지 않은 맑고 깨끗한 마음

범어 원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구마라집 스님 번역본에 등장
금강경 대요 밝힌 구절 중 하나

‘금강경’은 조계종단의 소의경전인 만큼 많은 법회에서 독송되고 또한 많은 불자들에 의해 가장 널리 독송되는 경전이다. 경전을 오랫동안 독송하다보면 독송인에 따라 획일적이진 않지만 마치 진언(眞言)처럼 유독 뇌리에 남는 문구가 있다. ‘금강경’에서 그러한 예를 찾자면 두 수의 게송을 비롯하여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 등과 더불어 ‘응무소주이생기심’을 꼽을 수 있다. 이 부분은 구마라집 스님의 번역본을 기준할 때 그 앞에 놓인 ‘응여시청정심’과 함께 ‘금강경’의 대요를 밝힌 구절 가운데 하나로 취급된다. 해당 부분의 범어직역과 구마라집 스님 및 현장 스님의 한역본을 한글직역을 통해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梵文] apratiṣṭhitaṁ cittamutpādayita vyaṁ(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야 하나니), yanna kvacitpraṭiṣṭhitaṁ cittamutpādayitavyam(어떤 상황에라도 머무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
[什譯] 應如是生淸淨心(응당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어야 하나니), 應無所住而生其心(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
[奘譯] 都無所住應生其心(머무는 곳이 전혀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하나니), 都無所住應生其心(머무는 곳이 전혀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한다).

우선 범문은 ‘머무름+마음+일어남’이라는 세 글자로 구성된 구절을 두고 동작의 성분이 있는 ‘머무름’과 ‘일어남’에 각각 한 차례씩 부정사를 첨부하여 ‘a+pratiṣṭhitaṁ(머무름이 없는)’과 ‘na+utpādayitavyam(일어나도록 해서는 안 된다)’으로 만든 뒤 두 구절을 거듭 서술함으로써 어느 부분에 부정이 강조되어야 하는가라는 논란의 여지를 차단해놓았다.

구마라집 스님은 이 부분 역시 앞부분을 스님다운 의역(意譯)으로 옮기고 뒷부분에 ‘而’자를 활용하여 범문의 두 부정사를 한 구절에 집어넣어버렸다. 단조로운 두 구절을 하나로 압축한 대신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를 앞부분에 서술한 것이다. ‘이(而, 말 이을 이)’자는 접속사로서 그 글자의 앞뒤로 서술된 행위에 간극이 있을 때나 문구의 역접에 사용되는데,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배워서 때때로 그것을 익히다)나 시이불견(視而不見, 보고도 인식하지 못하다) 등이 그 예이다.

현장 스님은 이 부분을 동일한 구절의 반복으로 옮겨놓았는데, 끊어 읽기를 달리함으로써 내용을 구분해보려도 ‘응(應)’자가 문구의 중간에 버티고 있기에 느낌을 달리해볼 여지를 만들기 어렵다. 그렇지만 구마라집 스님의 경우 ‘응무(應無)’를 앞으로 놓고 중간에 ‘而'를 놓은 까닭에 끊어 읽기에 따라 ‘應[無所住+而生其心](머무는 곳 없이 응당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에 더하여 ‘應無+[所住而生其心](머물러서 그 마음을 내는 일은 응당 없어야한다)’으로 해석할 여지를 제공하여 한문의 한 구절에 범문의 두 구절 내용을 담는 묘미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단조로운 듯한 범문의 두 구절을 한 구절로 압축해놓은 뒤에 앞부분에 덧붙인 문구가 ‘응여시생청정심(應如是生淸淨心)’이다. ‘청정심'이란 표현은 범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범문은 중복되는 두 구절에서 pratiṣṭhita(住)를 citta(心)의 형용사로 놓음으로써 일으켜야한다는 그 마음이 곧 어디에도 머무름이 없는 마음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란 말에는 조금의 설명이 더 있어야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청정심이란 표현이 없는 범문에서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설명될 수 있는 문구는 정신희유분의 ‘불응취법불응취비법(不應取法不應取非法)’이다. 아상을 버리기 위해 사상(四相)을 비롯한 그 어떤 상도 취하지 말아야 하며[我空], 그 어떤 법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겨서 취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法空], 아울러 법공을 이룬 뒤엔 법공마저 지워버려 ‘그 어떤 법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겨서 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내려놓아야 한다[空空]는 것이 ‘불응취법불응취비법’의 의미이니, 곧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공공(空空)이 성취되어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은 맑고[淸] 깨끗한[淨] 마음이기에 구마라집 스님은 줄인 문구를 대신하여 그렇게 서술한 것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45호 / 2020년 7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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