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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윤성준의 ‘아홉 스님’(2020)

천막선원서 펼쳐지는 수행자들 용맹정진 풍경

위례 동안거 천막 결사 90일…에피소드와 소회 담은 영화  
관찰자적 시점의 유사독백으로 수행 풍경 프레임에 채워
목욕금지·일의일발 등 7가지 청규 어기면 승적 박탈 서약

영화 ‘아홉 스님’은 90일 동안 동안거 천막 결사에 참여한 스님들의 수행 기록을 담았다. 사진은 영화 ‘아홉 스님’ 스틸컷.

2019년 겨울에서 2020년 봄까지 위례의 아파트 건설 현장 부근에 비닐하우스 천막선원을 짓고 아홉 스님이 90일 동안 정진 수행을 감행했다. 수행의 목적은 선풍 진작과 온 세상 평화를 위한 결사였다. 다큐멘터리 ‘아홉 스님’은 90일 동안 동안거 천막 결사에 참여한 스님들의 수행 기록을 카메라에 담았으며 해제된 이후 여러 스님의 인터뷰를 통해 수행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와 수행자의 소회를 담담하게 담아냈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기록하고 복제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연출자의 고유한 시선이 피사체에 개입하고 카메라가 피사체를 통해 담론과 성찰을 생산해낼 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적극적인 담론으로 발산되어 역사의 장으로 편입된다. ‘아홉 스님’은 동안거 천막결사의 용맹정진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적극적인 행보보다는 2019년 겨울 상월선원에서 아홉 스님이 참가한 90일 동안의 무문관 수행을 재현하는 것에 보다 충실했다. 수행의 불교적 의미를 돋보이게 하거나 현재의 한국사 혹은 한국 불교사의 흐름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적극성보다는 고유한 수행에 더 가까이 카메라가 다가갔다. 심지어 천막 안에 감독과 카메라 감독, 스텝이 동행하지 않고 수행에 참여한 스님이 직접 카메라로 촬영을 하였다. 이와 같은 제작 방식은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보다 90일의 수행에 더 방점을 찍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수행에 참여한 스님은 모두 아홉 분이다. 그래서 제목이 ‘아홉 스님’이다. 다큐멘터리의 시선은 그들의 수행을 미화하거나 특별한 의미를 부각하지 않고 단지 바라보면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증언만 덧붙일 뿐이다.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 현실을 복사하거나 현실을 근거로 의미를 창조하는 적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은 전자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감독은 최대한 자기 소거를 하고 수행에 대한 선험적 생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스님들의 고행과 이를 초극하는 영웅적 행위도 배제한다. 단지 90일 동안의 기록에 충실하고 이 영상 기록에 의미를 적극적으로 부여하기보다 기록을 확장하는 범위에서 조심스럽게 수행에 참여한 스님의 인터뷰만 가미된다. 이도훈 다큐멘터리 연구가는 인터뷰를 ‘자기 서사로서의 인터뷰, 대화로서의 인터뷰, 몽타주로서의 인터뷰, 사건발생으로서의 인터뷰’ 등으로 분류했다. 이 영화의 인터뷰는 자기 서사로서의 인터뷰에 가까우며 인터뷰는 ‘90일 동안 상월선원의 내부의 일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보존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가시적으로 인터뷰의 존재와 연출자의 부재라는 구도로 이루어지는 유사독백(pesudomonologue)에 가깝다. 수행자의 유사독백은 ‘아홉 스님’의 수행 과정과 수행 의미를 우회적으로 제시한다. 이와 같은 관찰자의 양식은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를 유지하고 이들을 그저 바라보며 간혹 인터뷰와 자막을 통해 90일의 수행기를 ‘아홉 스님’에 담아낼 뿐이다. 스님들은 묵언 수행을 하였고 카메라는 이들의 수행 풍경을 프레임에 채운다. 윤성준 감독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제한하고 포기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불자는 물론, 불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연출 의도를 내비쳤다. 

천막 선원에서 아홉 스님은 청규를 정했다. 하루 한 끼만 공양하는 일종식과 옷 한 벌과 발우 하나만으로 생활하는 일의일발 그리고 삭발과 목욕금지와 무문 그리고 묵언 수행과 하루 14시간 정진과 같은 청규를 일곱 가지 정하여 이를 어길 시 승적을 박탈하겠다고 서약했다. 참여한 스님은 자승 스님, 무연 스님, 진각 스님, 호산 스님, 성곡 스님, 재현 스님, 심우 스님 그리고 도림 스님과 인산 스님이다. 영화는 도림 스님이 촬영한 촬영본과 cctv의 화면 자료를 토대로 구성되었다. 이와 같은 제작 상황은 감독의 연출자적 개입이 배제되고 최소화되는 자기소거의 상황을 만들었으며 자연스럽게 카메라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수행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점에 서게 했다. 

90일간의 수행은 좌선하는 장면과 죽비소리에 맞추어 휴식시간에 행하는 포행 그리고 11시의 공양 장면으로 일과가 채워진다. 도림 스님의 자기 서사적 인터뷰는 수행자의 고행과 수행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의 빈 곳을 채워간다. 스님들의 인터뷰는 창으로 들어온 빗물과 냉동실처럼 매서운 겨울의 추위 그리고 하루 한 번의 공양과 같은 서원의 수행 풍경에 이야기와 정서를 삽입시켜준다. 추위는 뜨거운 보온 물통을 침낭에 넣고 취침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시시각각 찾아드는 육체의 허기는 마음의 수행으로 조금씩 지워낸다. 심우 스님은 매일 엄동 설한에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수행의 깊이를 더해가고 수행 스님들은 좌선을 통해 추운 공간을 부처님 품 안과 같은 안온한 장소로 바꾸어간다. 수행의 시간이 깊어지면서 수행자의 체중은 수은주처럼 내려갔지만 눈 빛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형형해졌다는 도림 스님의 인터뷰를 통해 수행의 변화가 집약된다.  

수행 도중 에피소드의 발생은 단조로운 일과표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다. 추운 겨울의 반복된 일과는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스님으로 인해 파문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스님은 병원보다는 상월선원에서 수행을 선택하면서 수행자의 결연한 모습을 돋보이게 한다. 묵언으로 대화가 배제된 곳에 칠판에 써진 글씨를 통해 수행자의 마음을 표현한 것은 자막을 통한 마음의 전달에 효과적이다. ‘아홉 스님’은 관찰자적 다큐멘터리로 90일의 수행과정과 일화를 담아내는 데 충실하였다. 카메라가 수행자 스님이 직접 촬영하여 연출자의 개입이 최소화하였으며 왜 수행을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후경으로 밀려나고 수행의 과정이 전경으로 배치된 소박한 불교영화다. 하지만 영화의 형식보다는 천막선원에서 수행자가 보여주는 용맹정진의 풍경이라는 내용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영화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45호 / 2020년 7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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