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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탑으로 보는 중국의 사리신앙 ①

기자명 신대현

중국 탑 조성 역사가 곧 사리신앙 역사

중국 역사상 사리신앙의 기념비적인 탑은 뤄양 백마사의 제운탑
남북조 후기 사리신앙 전국화…민중 눈높이 맞춰 소형 목탑 유행
중국 통일 수나라, 행정구역과 명승지에 탑 조성…일체감 끌어내

뤄양 백마사의 제운탑. 75년 무렵에 처음 지어졌고, 지금 모습은 1175년 중건한 것이다. 이 탑을 시작으로 중국 사리신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됐다.

중국은 불교를 후한(後漢)시대인 58~75년 사이에 인도로부터 전해 받은 뒤 저명한 불교학자들에 의해 사리신앙의 이론적 근거도 마련되면서 불교 전법의 한 축이 되었다. 446년 전국 사찰의 불상을 부수며 불교를 탄압했던 ‘측천무후의 법난’ 같은 큰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지만, 사리신앙을 중심으로 한 굳건한 신앙으로 극복하며 불교의 황금기를 일궈냈다. 9세기 이후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 불교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불교가 지금까지 세상에 전해지는 데는 중국의 역할이 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을 이어온 중국 사리신앙을 살피기 위해 탑 건립과 사리 영험 등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 보겠는데, 먼저 탑 건립부터 알아본다.

요즘은 탑을 건축미술의 하나로만 보려 하고 그 안에 담긴 사리신앙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탑의 문화적, 미술적 가치는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탑을 세움으로써 대중에게 불사리의 공덕을 전하려 했던 옛 사람들의 노심초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교의 진수인 불사리를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랗게 솟은 탑 자체에 절을 하는 격이 되고 만다.

중국 건탑(建塔)의 역사는 곧 사리신앙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당나라 이전까지로 한정해 봐도 수십 기의 불탑이 전하며 각각의 탑마다 남다른 사리봉안의 일화들이 간직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각 시기마다 특별한 사리신앙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탑들을 중심으로 하여 사리신앙의 역사를 살펴보려 한다. 

중국 사리신앙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 탑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뤄양[洛陽] 백마사(白馬寺)의 제운탑(濟雲塔)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백마사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데, 후한의 명제(明帝)가 인도에서 온 축법란(竺法蘭) 등을 위해 75년에 세운 절이다. 처음에는 불교를 공인하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명제 자신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불사리의 방광, 공중선회 등의 영험을 보자 이런 의구심이 깨끗이 사라졌다. 이때의 이적을 보인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탑이 지금의 제운탑이다. 이 탑은 오랜 기간 동안 수차례 보수되어왔고 지금의 탑은 1175년에 중건된 모습이다. 
 

닝보 아육왕사 사리탑. 282년 혜달스님이 현몽을 꾸고 찾은 사리탑으로 정골사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양 무제는 이 탑이 인도 아소카왕이 세운 8만4000탑 중 하나가 전해진 것이라고 여겨 절 이름을 ‘아육왕사’로 고치게 했다.

2세기에는 188~193년 사이 세워진 쉬저우[徐州]의 부도사(浮圖祠)가 백마사의 뒤를 잇는다. 지금 탑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절 이름이 ‘부도’인 데서 사리 존숭의 풍조가 엿보인다. 대중을 향한 사리신앙의 흐름이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었다(본지 1월 28일자 연재 2회 참조). 

3세기에는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에 있는 아육왕사(阿育王寺)의 사리탑을 눈여겨볼 만하다. 282년 동진(東晉)의 혜달 스님이 사리탑을 찾아보라는 현몽을 꾸고 길을 나섰다. 이 자리에 이르자 갑자기 땅 밑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이곳이구나.’ 싶어 3일간 기도했더니 땅에서 높이 한 자쯤 되는 5층 사리탑이 솟아올랐고 안에는 석가모니의 정골사리가 들어 있었다. 훗날 돈독한 불교도였던 양 무제(재위 502~549)는 이 탑이야말로 전설로 전하는 인도 아소카왕의 8만4000탑 중 하나라고 믿어 ‘아육왕사’라는 이름을 내렸다(羅哲文, ‘中國古塔’). 오래 전 아소카왕이 중국에 보낸 탑이 어떤 연유에서인지 땅속에 묻혀 있다가 600년 뒤 인연에 따라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시기에 중국에 사리신앙이 본격적으로 전파되고 있었다는 역사적 실체로 이해할 수 있다. 인도 아소카왕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던 사리신앙의 국제화가 한참을 지나 중국에서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한 증표라고나 할까.

지금 아육왕사에는 ‘아육왕이 부도를 만들었으니 그 수가 팔만 사천이었으되, 오직 이 탑만이 홀로 우뚝하도다(阿育王造浮屠 其數八萬四千 惟斯獨著)’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아소카왕이 세운 8만4000기 탑 중 유일하게 남은 탑이라는 자부심이 잘 드러나 있는 글귀다. 

6세기는 남북조시대의 후기로, 사리신앙이 전국화 되어 가던 시기였다. 남북조시대는 남조와 북조의 여러 나라가 문화와 경제 등 민생 면에서 경쟁하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 덕에 갖가지 담론이 활발해지고 불교의 이론도 함께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특히 탑 불사가 성행했는데, 크기와 재질면에서 이전까지 주류였던 대규모 전탑에서 벗어나 소형의 목탑이 유행한 게 특징이다. 왕이나 소수 특권층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다수 백성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풍조는 특히 남조에서 두드러졌는데, 남조 전체가 사찰과 탑으로 장엄되었다고 해도 될 만큼 번성했다. 훗날 당나라의 유명시인 두목(杜牧)은 ‘강남춘(江南春)’에서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읊었다. 

‘남조엔 사백 여든 절이 있었다지/ 가랑비 내리는 누대에는 안개비만 자욱해라(南朝四百八十寺 多少樓臺煙雨中).’ 시구 중의 ‘누대(樓臺)’는 곧 목탑을 가리키는데, 480개 목탑이 가득했던 당시가 눈에 선하다. 

남북조시대에 이어 중원은 수(隋)나라로 통일되었다. 초대 황제인 문제(文帝, 재위 581~604)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사리신앙을 장려하였다. 인수사리탑(仁壽舍利塔)이라 불리는 탑들을 전국에 조성하도록 한 것이 그것이다. 주요 행정구역과 명승지마다 불사리를 내려주어 탑을 지어 봉안토록 했다. 흥미로운 것은, 601년 10월15일, 602년 4월8일, 604년 4월8일 등 특정 날짜에 전국 111개 사찰에서 동시에 봉안토록 한 점이다. 탑의 모양 역시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각 절에 규화도(規畵圖), 곧 탑의 표준설계도를 내려 오층탑을 짓게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온 나라 사람들의 관심과 일체감을 이끌어내려 했던 것 같다. 또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탑마다 지하에 탑지석(塔誌石)을 넣게 했다. 탑은 비록 원형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은 없지만, 이 탑지석은 간혹 발굴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권력에 의한 일방적 사리봉안이었지만, 한편으론 당시 사리신앙에 대한 염원이 그만큼 컸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이 인수사리탑 자체도 이전에 볼 수 없던 대단한 불사였다. 하지만 이어진 당나라에서의 불사 건립의 대유행, 그리고 무엇보다도 10세기 오월왕(吳越王) 전홍숙(錢弘俶)에 의한 대규모 불사리 봉안 불사에 비하면 서곡에 불과했다. 

신대현 능인대학원대학 불교학과 교수 buam0915@hanmail.net

 

[1545호 / 2020년 7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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