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살은 어떤 경우도 허용될 수 없다

자살에 대해 불교윤리를 논하는 학자들은 다소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처님은 ‘상윳따 니까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고디까 비구가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을 성취했다고 말씀하신다. 일부는 이를 통해 특정한 상황에서는 부처님도 자살을 용인했다고 보기도 한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보통사람들의 자살로까지 보편화 할 수는 없다. 불교가 자살을 일반적으로 용인했다고 보는 관점은 인도문화를 시야에 넣은 서구에서 촉발된 것이다.  

사실 자살에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생명의 절대성, 그리고 종교와 같은 사회적 전통 등의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존엄사 문제에 대해 어느 사회든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는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소위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위한 사회단체 연석회의의 초기 멤버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치열한 논쟁을 벌인 기억이 남아 있다. 우여곡절 끝에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이 공식적으로 제정되었기에 고통의 극한에 이른 사람들의 존엄사에 대한 공론도 곧 제기될 것으로 본다.

한편 존엄사와 자살은 차원이 다르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사회운동의 리더가 예고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추후 조사위원회가 원인을 밝히겠지만, 대부분의 언론이 자살로써 고인이 생전의 잘못을 짊어지고 갔다는 논조를 드러내고 있다. 자기책임론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적절한 언설이 아니다. 자살은 모든 문제의 출구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업을 이생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생으로 이월되기 때문이라고 보는 불교적 관점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찍이 ‘자살론’을 쓴 에밀 뒤르켐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환경과 자살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고인의 자살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강력한 미투 운동의 한 복판에서 일어났다. 몇몇 사회 인사들 또한 이 문제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낡은 시대, 낡은 윤리, 낡은 사회가 가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윤리, 새로운 사회가 대두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때 일본에서 자살로써 개인이나 사회적 문제를 무화(無化)시키고자 했던 관습이 이 땅에도 상륙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교는 어떠한 자살도 용인하지 않는다. 율장에서는 자살 기도, 선동, 방조 등을 금지하고 있다. 때로는 교단으로부터 추방에 해당하는 바라이죄를 내렸다. 초기경전에서 보듯 제자들의 집단 자살이나 개인의 자살이 일어났지만, ‘자살을 할 수도 있다’는 부처님의 법문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집단자살에 대해서는 수행을 더욱 강화하였고, 개인자살에 대해서는 제자의 수행능력에 따라 적절한 법문을 하셨을 뿐이다. 

고 박 시장은 좀 냉철하게 자신을 대했어야 했다. 개혁의 와중에 자신의 행위가 걸림돌이 되리라고 생각했더라도 길게 호흡함으로써 한 순간 멈췄어야 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공적과 지위를 다 내려놓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사회적으로 더욱 큰 자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참회와 용서는 물론 죄의 공성(空性)을 확신하기까지 치열한 자기 세계로의 회귀를 통해 진정한 회복적 정의를 이룰 수 있는 실례를 이 사회에 제공할 수 있었으리라.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도시로 만들고, 그 공덕으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들 사바세계가 철들 때까지는 인간의 삼독오욕에 의한 삶의 시행착오가 지속될 것이다. 자신과 주위에 일시적인 불명예를 안겨줄 수도 있지만, 두 눈 부릅뜨고 자기 자신을 하나의 실험실로 삼아 무명의 인간들에게 전미개오와 이고득락의 길을 보여주었다면, 진정한 인간혁명을 이 사회에 던져 주지 않았을까. 죽음을 탐구해온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교수 wonyosa@naver.com

 

[1546호 / 2020년 7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