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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서 배운 사계절 매력과 세상보기

  • 불서
  • 입력 2020.07.20 13:49
  • 호수 1546
  • 댓글 0

‘스님과의 브런치’ / 반지현 지음 / 나무옆의자

‘스님과의 브런치’

세상 그 무엇보다 먹는 일에 열정적이었다. ‘빵지순례’라는 말이 있기도 전에 손수 빵집 지도를 만들었고, 팥빙수 한 그릇 먹겠다고 8월 땡볕에 두 시간을 줄 서는 것도, 강남에서 평양냉면 먹고 다시 한 시간을 버스 타고 종로로 이동해 후식으로 젤라토를 먹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먹고 싶은 밥을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빡빡한 일상에 지쳐 훌훌털고 벗어나기 위해 신청한 템플스테이에서 맛본 밥이다. 교육에 중점이 맞춰진 템플스테이 4박5일은 마치 450일 같았다. 중간에 탈출(?)을 생각했을 만큼 예상을 벗어난 템플스테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밥’ 때문이었다. 

그 후로 그 밥이 생각났지만, 어디서도 그 맛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어쩌면 내가 찾는 건 그때 그 밥이 아니라, 밥을 받아 들었을 때 백열등 백 개를 동시에 켠 것처럼 주위가 순식간에 환해지던 그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먹겠다는 생각을 했고, 처음으로 돈을 내고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이 책 ‘스님과의 브런치’는 회사를 다니며 마음이 늘 불안했던 저자가 사찰요리를 만나고 배우며 변화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음식에세이다. 저자가 “사찰요리 덕분에 눈앞의 하루를, 다가오고 사라지는 계절을, 내 곁의 사람들을, 내게 주어진 삶을 좀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듯, 그저 사찰요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찰요리를 배우면서 마음 울리던 순간들을 들여다보고 더듬으며 쓴 글이다.
 

회사원이 쓴 사찰음식 이야기에는 세상 모든 일이 반드시 끓어 넘쳐야만 하는 건 아니고, 누군가를 묵묵히 믿고 기다리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채를 썰며 배우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왼쪽부터 연근버섯탕구이, 하얀채소구이, 콩국수.<br>
회사원이 쓴 사찰음식 이야기에는 세상 모든 일이 반드시 끓어 넘쳐야만 하는 건 아니고, 누군가를 묵묵히 믿고 기다리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을 채를 썰며 배우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왼쪽부터 연근버섯탕구이, 하얀채소구이, 콩국수.

사찰음식은 기본적으로 수행을 위한 음식이기에 담백하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으로 꼽힌다. 많은 이들이 사찰요리를 풀떼기, 맛없는 음식으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처음 사찰요리 수업을 들을 때 이제껏 알던 것과는 급이 다른 맛에 반해 “스님, 이 맛을 여태 혼자만 알고 계셨어요?”라고 읊조리기까지 했다.

봄에 두릅을 튀겨 매콤달콤 양념에 버무린 두릅강정, 여름엔 불린 콩을 갈아 오이 고명을 올린 콩국수, 가을이면 간장과 조청에 버무려 깨를 뿌린 쌉싸름한 우엉조림, 겨울엔 개운하기까지 한 사찰 짬뽕이 오감을 깨워주면서 비로소 사계절의 매력을 알게 됐다. 여기에 더해 사찰음식은 시각의 변화까지 가져다주었다. 자연스럽게 채식을 시작했고,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관심 갖고 욕심을 버리면서 고마운 마음으로 한 끼를 마주하게 됐다. 또 요리하면서 먹는 이를 헤아리는 마음을 배웠고, 주위 사람들과 레시피를 공유하면서 나누는 기쁨도 알게 됐다. 사찰요리를 배우면서 요리가 자신이 속한 세상을 넓히는 훌륭한 방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스님과의 브런치’는 레시피 위주의 사찰음식 요리책과 결이 다르다. 사찰요리의 매력에 흠뻑 빠진 회사원이 인생 첫 요리 선생님인 스님에게 맛과 마음을 배운 이야기에는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었는데도 스님이 만든 것이 맛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귀찮아서 무시한 작은 과정들이 결정적인 부분을 좌우했다”는 고백처럼, 삶의 지혜까지 가득 담고 있다. 1만2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46호 / 2020년 7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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